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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스타일+] 홍학 복면에 침구 드레스…이게 패션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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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정신과 상상력의 산물, 오트 쿠튀르
고정 고객 4천여 명에 불과하지만, 파급력 높아

조선일보

스키아파렐리의 홍학 복면과 빅터앤롤프의 일체형 침대 드레스./각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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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패션이라고요?” 얼굴에 홍학 복면이 씌워지고, 어깨엔 둘둘 말린 요가 매트가 걸쳐졌다. 어떤 모델은 잠자리에서 막 빠져나온 듯 침구 드레스를 입은 채 걸어 나왔다.

지난 1일부터 5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18년 가을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 패션쇼 풍경이다. 오트 쿠튀르란 프랑스어로 고급 주문복 의상점을 의미하는데, 보통 고급 맞춤복을 칭하는 용어로 사용한다.

언젠가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개그맨이 허름한 옷을 입고 “이거 오트 쿠튀르야”라며 너스레를 떠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오트 쿠튀르가 고급스러운 옷을 뜻하는 말이라는 건 알았지만, 홍학 머리와 베개 장식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저게 럭셔리라니... 과연 저걸 입는 사람이 있을까? 오트 쿠튀르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봤다.

① 왜 이상한 옷을 만드나?

오트 쿠튀르는 디자이너의 예술관과 장인의 손기술이 만나 완성된 고급 맞춤복이다. 그래서 대개 호사스럽고 장식적이다. 그런 탓에 패션계에서는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옷을 두고 ‘쿠튀르’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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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에 스마트폰 거치대를 달아 영상을 찍고(왼쪽) 요가 매트를 연상시키는 모자를 쓴(오른쪽) 메종 마르지엘라 오트 쿠튀르 패션쇼의 모델들./메종 마르지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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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이해하기 어려운 옷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번 패션쇼에서 스키아파렐리는 홍학 모양의 탈과 토끼 귀가 달린 의상으로 개성을 드러냈고, 메종 마르지엘라는 요가 매트로 만든 모자와 스마트폰 거치기를 발목에 달아 현대 유목민의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그런가 하면 빅터앤롤프는 베개와 이불이 달린 일체형 침대 드레스를 선보였다. 얼핏 보기엔 우스꽝스러울 수 있지만, 이는 디자이너의 혁신과 장인정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상업적인 이유도 있다. 오트 쿠튀르는 원래 상류층 고객의 개인 맞춤복을 기본으로 했지만, 최근에는 향수, 가방, 액세서리 등 상품 사용권을 판매하는 로열티 수입이 커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패션쇼도 실험적이고 환상적인 작품으로 브랜드의 예술적 가치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② 오트 쿠튀르, 언제 시작됐나?

오트 쿠튀르가 시작된 것은 1858년 영국 디자이너 찰스 프레드릭 워스가 파리에 개인 의상실을 열면서다. 그는 나폴레옹 3세의 아내 유제니 황후의 옷을 만들면서 명성을 얻었다. 또 1년에 두 번 직접 디자인한 옷을 모델에게 입혀 고객들에게 선보였는데, 오늘날의 패션쇼로 발전했다.

오트 쿠튀르는 아무나 만들 수 없다. 파리의상조합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만 공식 무대에 오를 자격을 얻을 수 있다. 현재 오트 쿠튀르로 인정받은 패션 하우스는 샤넬, 크리스찬 디올, 장 폴 고티에 등 14곳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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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적 조형미가 돋보이는 이리스 반 헤르펜 2018 가을/겨울 오트 쿠튀르 패션쇼./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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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가격은 얼마인가?

오트 쿠튀르는 최고급 원자재를 사용해 장인이 한 땀 한 땀 손으로 만들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다. 단순해 보이는 옷도 한 벌에 1500만원이 넘는다. 제작 시간은 디자인과 장식 여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150시간에서 많게는 6000시간이 걸린다. 가격도 이에 맞춰 올라간다.

최근 영국 해리 왕자와 결혼한 메건 마클의 웨딩드레스는 지방시 쿠튀르가 제작했는데, 5m에 달하는 면사포의 꽃 자수 작업에만 수백 시간이 소요됐다. 제작에 참여한 장인들은 베일과 실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30분마다 손을 씻어야 했다. 이 드레스의 가격은 60만 달러(약 6억8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④ 누가 입나?

크리스찬 디올이 ‘뉴룩’을 선보였던 1947년 오트 쿠튀르 고객 수는 2만여 명에 달했지만, 지금은 4천여 명의 고객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예전엔 프랑스의 부유한 여성들이 주로 입었지만, 이젠 미국, 러시아, 중국, 중동의 상류층 여성이 주 고객이다. 이는 세계 경제 권력의 이동을 보여준다.

오트 쿠튀르는 배우들의 레드카펫 드레스와 유명인의 웨딩드레스로 입혀지며 화제를 모으기도 한다. K-팝 스타 지드래곤은 군입대 전까지 샤넬 오트 쿠틔르 패션쇼의 단골 게스트로 초대됐다. 유명인들이 근사하게 소화한 오트 쿠튀르는 향수, 스카프, 핸드백, 화장품 등에 자연스럽게 투사된다.
⑤ 오트 쿠튀르의 미래는?

오트 쿠튀르는 돈이 안 된다. 제작 기간도 오래 걸리고, 고정 고객도 몇천 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패션은 판타지’라는 명제를 충실히 실천한다. 오트 쿠튀르는 디자이너의 독창성과 혁신적인 기술을 제시하는 기회로 브랜드의 명성을 높인다.

실제로 장 폴 고티에와 빅터앤롤프는 기성복을 중단하고 오트 쿠튀르에 주력하고 있다. 고급 의상 창작에 집중해 브랜드의 환상적인 이미지를 높인다는 전략이다. 이들은 향수와 안경 등의 판매에서 이익을 남긴다.

오트 쿠튀르는 밀레니얼 세대에 의해 부활할 조짐이다. 기존의 드레스 코드를 파괴하고, 하이엔드와 길거리 패션을 영리하게 섞는 밀레니얼 세대는 럭셔리 패션 업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들은 새롭고, 재미있고, 현실적인 옷을 추구하면서도 맞춤복에 관심이 많다. 미국 컨설팅 업체 베인앤컴퍼니는 2015년까지 전 세계 럭셔리 용품 시장에서 밀레니얼과 Z세대의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45%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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