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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무왕→선화공주→무왕… 쌍릉 주인 누굴까, 반전의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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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대왕릉 속 人骨 분석 결과 7세기 사망한 큰 키의 노년 남성

문화재청 "무왕의 뼈로 보인다"

"무왕의 인골(人骨)일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1300여년 만에 역사 속 한 백제의 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동요'를 지어 신라 진평왕의 딸과 결혼했다는 서동, 백제 30대 임금이자 의자왕의 아버지인 무왕이다.

조선일보

서동과 선화공주가 여기에? - 동쪽에서 바라본 익산 쌍릉의 항공 사진. 오른쪽 아래 원 속의 봉분이 무왕 추정 인골이 나온 대왕릉이고, 왼쪽 위 180m 떨어진 곳에 소왕릉이 보인다. /익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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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 3월 백제 왕릉급 무덤인 전북 익산 쌍릉(사적 87호)에서 발견된 사람 뼈를 분석한 결과를 18일 발표했다. 인골의 주인공은 '7세기 사망한 큰 키의 노년기 남성'. 그렇다면 서기 600년부터 641년까지 왕위에 있었던 인물, 바로 무왕에 가까워진다.

준왕 또는 무왕→선화공주 또는 사택비→다시 무왕

쌍릉 주인공에 대한 추적은 반전(反轉)의 연속이었다. 대왕릉과 소왕릉으로 이뤄진 쌍릉의 주인공에 대해 두 가지 설이 있었다. 우선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긴 뒤 남쪽으로 내려와 마한을 건국했다는 고조선 준왕(무강왕)이라는 설. 그러나 굴식 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인 쌍릉은 백제 말기 양식이라 '고려사' '동국여지승람' 등에 기록된 '백제 무왕의 무덤'이란 것이 정설에 가까웠다. 익산이 고향인 무왕은 쌍릉 부근에 미륵사를 창건하는 등 익산 천도의 의지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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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된 쌍릉 출토 인골. 맨 위는 유골이 담겼던 상자. /장련성 객원기자


그런데 대왕릉에서 출토된 치아에 대해 2016년 국립전주박물관이 "20~40세 여성일 가능성이 크다"고 발표했다. 왕이 아니라 왕비의 무덤이란 뜻이다. 유물 중 신라계 토기가 있다는 점을 들어 "신라 출신 선화공주의 무덤일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2009년 발굴된 미륵사지 석탑 사리봉안기에는 무왕의 왕비가 선화공주가 아닌 백제 귀족 사택씨의 딸로 기록돼 있었다. 무덤 주인공이 사택비일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반전은 올해 3월 또 일어났다. 쌍릉 발굴 조사에서 인골이 담긴 나무 상자가 발견됐다. 1917년 조선총독부의 첫 조사 때 발굴했다가 다시 묻은 것으로 보이지만 당시 13줄짜리 보고서엔 언급이 없었다. 재발굴된 뼈가 크고 굵어 남성으로 보인다는 말이 나오면서 다시 무왕일 가능성이 제기됐다〈본지 4월 3일자 A21면〉.

"낙상한 적 있는 키 161~170㎝의 남성"

모두 102조각의 인골에 대해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고고학·법의인류학·유전학·생화학·암석학·임산공학·물리학 전문가를 참여시켜 정밀 분석했다. 팔꿈치 뼈 각도, 목말뼈 크기, 넙다리뼈 무릎 부위의 너비를 볼 때 남성일 확률이 컸다. 키는 최소 161㎝에서 최대 170.1㎝로 19세기 조선 성인 남성의 평균 키 161.1㎝와 비교하면 큰 키다. '삼국사기'는 무왕이 '풍채가 훌륭하고 뜻이 호방하며 기상이 걸출하다'고 기록했다.

목의 울대뼈가 있는 갑상연골에 뼈가 굳어지는 골화(骨化)가 상당히 진행됐고 골반뼈 결합 면이 거친 것 등으로 보아 나이는 최소 50대 이상 60~70대로 추정됐다. 무왕의 출생 연도 기록은 없지만 20세에 즉위했을 경우 61세, 30세에 즉위했다면 71세에 별세했을 것이다. 가속 질량분석기를 이용한 정강뼈의 방사성 탄소 연대를 측정한 결과 유골 주인공의 사망 연도는 서기 620~659년, 무왕의 사망 연도는 641년이다.

의학적 분석은 계속됐다. 허리가 굳는 광범위특발성뼈과다증, 정강뼈와 무릎뼈의 척추외골화로 인한 다리와 무릎 통증이 있었을 것으로 보였다. 옆구리 아래 골반뼈는 숫자 '1' 모양으로 골절됐다가 치유된 흔적이 있는데 어긋나지 않아 타격보다는 낙상 등으로 인한 것으로 판단되며, 치료 기간이 3개월 정도라 직접 사인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조사단은 밝혔다.

그렇다면 2년 전 '여성 치아'라는 분석은 어떻게 된 걸까? 이우영 가톨릭대 의대 교수는 "전주박물관 조사는 논리적 접근 방식은 합당했으나 치아만으로 성별·연령을 추정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인골이 왕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일 수도 있다는 의문에 대해 이병호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장은 "백제엔 순장 풍습이 없었기 때문에 왕의 유골로 봐야 한다"고 했다. 아직 문화재청이 발굴하지 않은 소왕릉이 왕비의 무덤일 가능성도 커졌다.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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