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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함께 만드는 세상] “합창 봉사 함께 했더니 부부싸움 사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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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으로 사회 기여한 기분

후원받은 아동이 커서 후원자 돼

함께 그린 합창단 … 7월에 공연도

공연 본 뒤 “엄마가 제일 예뻐”

중앙일보

7월 12일 서울 무교동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사무실에서 후원자로 구성된 ‘함께 그린 합창단’ 단원들이 해바라기의 노래 ‘행복을 주는 사람’을 연습하고 있다. ‘함께 그린 합창단’은 함께 나눔을 그려가는 후원자 모임이라는 뜻으로 단원들이 직접 지었다. [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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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지난 12일 오후 8시, 서울 무교동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사무실에서 해바라기의 노래 ‘행복을 주는 사람’이 흘러나왔다. 완벽하진 않지만 화음도 섞였다. 노랫소리의 주인공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후원자로 이뤄진 ‘함께 그린 합창단’이다.

이날 어린이재단 사무실 한편에 마련된 연습실에는 24명의 합창단원이 지휘자의 구호와 반주에 맞춰 연습을 이어갔다. 턱수염을 기른 20대 남성부터 머리가 희끗희끗한 50대 부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이 모여있었다. 회사를 마치고 바로 달려온 듯 정장 차림인 이도 보였다. 합창단 인원은 총 42명이지만 이날 연습에는 24명이 참석했다. 모두 손에 악보를 쥐고 눈은 지휘자에게 고정했다. 박자를 놓칠까 봐 손뼉을 치며 노래를 연습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함께 그린 합창단’은 함께 나눔을 그려가는 후원자 모임이라는 뜻으로 단원들이 직접 만든 이름이다. 나눔을 통해 어린이들이 초록빛처럼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함께 그린(green)’이라는 의미도 있다. 올해 어린이재단이 70주년을 맞이하며 ‘후원자와 의미 있는 활동을 해보자’라는 취지로 시작했다. 지난 4월 합창단 1기 모집에는 주부, 회사원 등 70여 명이 넘는 인원이 몰렸다.

지원자 중에는 후원을 받는 아동에서 기부자가 된 이도 있었다. 소프라노로 지원한 유모씨는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며 가정폭력에 시달렸다. 폭력과 가난을 겪을 때 손을 내밀어 준건 어린이재단의 후원자들이었다. 유씨는 18살까지 한 달에 5만원의 후원금을 받았다. 친구들과 시내에 나갈 때 차비가 없어서 고민하고 문제집도 사지 못하던 그에겐 큰돈이었다. 유씨는 “여유가 생긴다면 옷을 사는 것보다 먼저 내가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 싶었다”고 지원 동기를 밝혔다.

한 차례의 오디션을 거쳐 소프라노 17명, 알토 14명, 테너 6명, 베이스 5명 등 총 42명이 뽑혔다. 송영재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후원자 서비스본부 담당자는 “남성 단원이 모자라 아직 더 뽑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어린이재단의 후원자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합창을 이끌 지휘자는 한국메세나협회에 자문해 구했다. 부천오페라단을 이끄는 채관석 단장이 지휘를 맡았다. 단원들은 4월 19일 첫 연습을 시작으로 매주 목요일마다 모여 두 시간씩 합창 호흡을 맞췄다. 저마다 회사일, 집안일 등 바쁜 사정이 있어 매주 연습마다 전원이 모일 순 없었지만 누구보다 진지한 태도로 연습에 임했다.

그 결과 지난 7일에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2030 정기 후원자를 위해 마련한 나눔 토크 콘서트 ‘초록우산 소행성’에서 특별 공연도 가졌다. ‘별’ ‘스와니 강’ ‘뭉게구름’ ‘우리는’ 등 총 4곡을 불렀다. 100여명이 모인 곳에서 가장 큰 박수갈채를 받고 성공적으로 합창을 마쳤다.

중앙일보

합창단원들이 12일 오후 지휘자의 지도를 받아 연습을 하고 있다. 연습은 매주 목요일에 진행된다.


이들은 단순히 합창만 하는 합창단은 아니다. 지난달 경기도 광주시 한사랑 장애영아원에 다녀간 봉사를 시작으로 공연 중간중간 봉사활동도 계획돼 있다. 1기는 8월 봉사활동과 소규모 공연을 가진 뒤 11월에 정기공연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마칠 예정이다.

연습 장소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사무실을 이용하기 때문에 비용이 들지 않지만 그 밖의 모든 경비는 합창단원의 회비로 충당한다. 42명의 단원은 매달 1만원을 회비로 낸다. 공연 의상을 대여하는 등의 비용도 모두 개인 부담이다. 그런데도 아무도 불만이 없다. 오히려 주변에 적극적으로 권한다. 합창단원들은 전문적인 음악 실력이 없어도 연습에 꾸준히 참여할 의지가 있다면 합창단 활동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주부 박현희(43)씨의 경우 매주 목요일마다 남편에게 ‘일찍 들어오라’고 전화를 건다. 오후 7시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되는 합창 연습에 달려가기 위해서다. 박씨는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과 초등학교 6학년 딸, 초등학교 1학년 막내 세 명을 키우는 다둥이 엄마다. 세 아이를 챙기다 보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끝나던 일상이었지만 합창단 활동을 시작한 뒤 삶이 바뀌었다. 그는 “누구 엄마가 아닌 ‘나’로서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느낌이 보람차다”고 말했다.

지난 7일 공연에는 아이들 모두 시험 기간이라 바쁜 때였음에도 첫째 아이가 동생 두 명을 데리고 왔다. “엄마가 합창단 하는데 궁금하지 않니?”라는 엄마의 은근한 압박도 있었다. 박 씨는 “공연 후 받은 박수갈채도 기분 좋았지만 ‘엄마가 제일 예뻤어’라며 안기는 아이들 모습에 뭉클했다. 늘 집에서 정신없는 엄마 모습만 보여주다가 아이들한테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부부가 함께 참여하고 있는 김중규(62)씨도 합창 전도사가 됐다. 김씨는 자신을 ‘부정입학자’라고 했다. 그는 합창단 오디션을 준비하던 아내가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부터 흥미가 생겼다. 연습을 다녀온 뒤 행복해하는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나도 한번 해보면 어떨까?”라고 물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의견을 묻자 흔쾌히 함께하자는 답변이 돌아왔다. 엉겁결에 들어온 합창단이지만 지금은 부부생활의 활력소다. 그는 “합창단을 한 뒤로 부부싸움이 줄었다”며 웃었다.

연습은 1주일에 하루뿐이지만 공연을 위해서는 매일 개인 연습이 필요했다. 부부가 함께하니 화음을 맞추며 연습할 수 있었다. “여보, 우리 ‘별’ 한 번 불러볼까?”라며 같이 노래를 부르고 나서 부부싸움을 할 순 없었다. 일상적인 대화만 오갔던 부부 사이 공통 화제가 생기자 대화도 늘고 싸울 여지가 확 줄었다. 그는 “요새는 삶의 설렘이 생겼고, 합창을 통해 내 목소리만 크게 내면 안 된다는 삶의 이치를 다시 배운다. 우리 부부는 매주 목요일 저녁은 무조건 시간을 비워둔다”며 웃었다.

‘ 봉사에 인색한 우리나라’
지난해 독일 시장조사기관 GfK가 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 등 17개국의 15세 이상 2만2000여 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를 벌인 결과, 한국인의 52%는 봉사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다. 조사대상 17개국 가운데 가장 낮은 참여도다. 특히 30대의 봉사활동 참여율은 38%, 40대는 42%로 가장 낮았다. 반대로 10대는 64%가 봉사활동 경험이 있다고 답해 가장 높은 참여율을 보였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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