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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홍콩 ELS 원금 손실 공포 … 금감원 “불완전 판매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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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 48조 발행 역대 최대

홍콩 H지수 등 위험자산 쏠림

지수 하락으로 대거 손실 가능성

고령자·신규 투자자 비중 높아

A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시로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SCEI, 일명 H지수)를 확인하는 게 일과였다. 3년 전 주가연계증권(ELS)에 3000만원을 투자했는데 H지수가 손실과 수익을 가르는 기준점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H지수가 1만2000선을 넘어야 원금과 약정 수익을 돌려받을 수 있는 상품이었는데 H지수가 계속 경계선에서 움직이는 바람에 가슴을 졸였다”며 “다행히도 만기였던 지난 4월 말 H지수가 1만2300으로 마감한 덕에 원금 손실을 간신히 피했다”고 말했다.

A씨는 굉장히 운이 좋은 경우다. 5월이 되면서 H지수 1만2000선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달 들어선 더 떨어져 1만선 붕괴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만기가 한 달만 늦었어도 A씨는 손실을 피할 수 없었다.

H지수가 크게 하락하면서 H지수 연계 ELS를 둘러싸고 ‘원금 손실 공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올해 상반기 ELS 발행 규모가 역대 최대 수준으로 늘어나면서 금융 당국도 경고 수위를 높였다. 금융감독원은 18일 은행과 증권사를 대상으로 특정 지수 연계 ELS 쏠림 현상과 불완전 판매 여부를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ELS는 특정 종목이나 주가지수의 상승과 하락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파생금융상품이다. 보통 1~3년인 가입 기간 주가가 일정 구간을 벗어나지 않으면 미리 약정한 만큼의 수익률을 원금에 더해 받을 수 있다. 은행이나 증권사에선 주가지수가 반 토막 나지 않으면 연 4~8% 정도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중위험 중수익’ 상품이라고 홍보하면서 ELS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앙일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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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주가가 급락했을 때다. 대부분의 ELS엔 처음 가입했을 때(최초 기준가격)보다 주가가 일정 폭 넘게 떨어지면 원금 손실이 발생하는 ‘녹인(Knock-in)’ 조건이 걸려있다. 이상헌 금감원 파생상품감독팀장은 “ELS 등 주가지수와 연계한 파생결합상품은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고위험 상품”이라며 “ELS에 대해 증권사와 은행이 수수료 수입 극대화를 위해 변동성이 높은 H지수 등 연계 ELS를 판매하고 있어 과도한 쏠림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예탁결제원과 금감원 집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발행된 ELS는 48조944억원어치에 이른다. 반기 기준 역대 최대 액수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나 늘었다. ELS 발행액은 2016년 상반기 20조4299억원, 지난해 상반기 35조6326억원 등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금감원 집계를 보면 올 상반기 발행된 ELS 중 91.3%가 녹인 조건이 걸려있는 원금 비보장형 상품이다. 원금 보장형 비중은 8.7%에 불과했다.

특정 지수 쏠림 현상도 여전했다. 올 상반기에 발행된 ELS 중 유로스톡스 50지수가 기초자산으로 포함된 ELS가 78.6%, H지수가 기초자산으로 포함된 ELS가 71.1%에 달했다. 10중 7, 8은 두 지수가 기초자산인 ELS였다는 얘기다.

특히 H지수 연계 ELS는 34조2021억원 어치가 발행됐는데 이는 지난해 하반기와 견줘 304.3% 급증한 금액이다. 최근의 H지수 하락이 ‘녹인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이유다.

18일 H지수는 1만578.46로 거래를 마감했다. 지난 1월 26일의 고점(1만3723.96) 대비 30% 가까이 추락한 수준이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 전쟁이 고조되면서 H지수가 유탄을 제대로 맞고 있다. 선진국 중앙은행의 잇따른 긴축 결정이 홍콩을 비롯한 신흥국의 자금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도 지수 하락의 원인이다.

상당수 ELS의 녹인 조건이 지수 50% 이상 하락 시 발동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직은 다소 여유가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한국의 ELS 투자자에게는 ‘H지수 트라우마’가 있다. 2015년 H지수 급락으로 H지수 연계 ELS 가입자들이 대거 녹인 구간에 진입하면서 손실을 봤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투자자들은 ‘2015년 ELS 파동’이 재연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금감원이 일찌감치 ELS 투자를 경고하고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금감원은 쏠림 현상과 함께 불완전 판매 여부도 눈여겨보고 있다. 금융사들이 ELS의 위험성과 상품 특징을 제대로 투자자에게 고지하지 않고 판매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금감원의 생각이다.

ELS는 크게 은행 신탁과 증권사 공모의 두 가지 형태로 판매된다. 금감원에 따르면 은행 신탁으로 판매된 ELS가 전체 판매액 가운데 58.4%로 비중이 절반을 넘었다. 은행 신탁으로 판매된 ELS 중 신규 투자자 비중은 32.6%, 60대 이상 투자자 비중은 39.7%로 증권사 공모(신규 20.0%, 60대 이상 35.7%) 방식보다 높았다.

금감원 측은 “ELS를 편입한 은행 신탁 상품의 경우 예·적금 등의 금융상품을 취급하는 창구에서 투자 권유가 쉽게 이뤄지고 있다”며 "고위험 상품인 파생결합증권을 원리금 보장 상품으로 오인할 수 있는 등 불완전 판매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오는 9월 은행을 대상으로 ELS 불완전 판매 여부 등에 대한 현장 점검을 시행할 예정이다.

다만 아직 2015년 ELS 파동의 재연 가능성은 작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설태현 DB금융투자 연구원은 “2015년 이후 ELS 시장이 안정을 찾기도 했고, 주가가 하락했다고는 하지만 녹인까지 걱정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주가 수준이 낮으니 지금 ELS에 가입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엔 의문을 표시했다. 설 연구원은 “미·중 무역 분쟁 변수가 완전히 가라앉은 것도 아니고 미국의 ‘자동차 관세 폭탄’ 움직임과 관련해 시장에 충격이 더 발생할 수 있다”며 “ELS 추가 투자에 대해선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주가연계증권(ELS, Equity Linked Securities)
특정 주가지수를 기초 자산으로 하는 파생결합 금융상품. 주가지수의 등락에 따라 투자 수익률이 결정된다. 보통 ELS는 주가지수가 최초 가입시점 대비 일정 구간 밑으로 내려가지 않으면 만기 시점에 원금과 약정 수익을 지급한다. 예금자 보호 대상 상품이 아니다.

◆녹인(Knock-in)
ELS에서 원금 손실이 발생하는 구간을 의미한다. 가입 단계에서 녹인 조건이 정해진다. 일반적으로 최초 가입 시점의 지수와 비교해 만기 시 50~60% 이상 지수가 하락하면 원금 손실을 볼 수 있다.



조현숙·이현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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