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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팩트체크] 울릉 앞바다 '150조 보물선' 5가지가 수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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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조 금괴” 주장에 “현실적으로 불가능”
인양 전문업체는 “탐사 용역만 맡았을 뿐’
‘보물선’ 전력 동아건설 인사들 개입 가능성도

'150조원의 금괴가 실린 보물선을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
17일 신일그룹은 "울릉도 인근 해저에서 러시아 철갑순양함 돈스코이호를 발견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함께 공개한 사진에는 'DONSKOII(돈스코이)'라는 함명이 적힌 함미가 찍혀 있었다. 돈스코이호는 1905년 러일전쟁에 참전했다가 울릉도 앞바다에서 금괴와 금화를 실은 채 침몰한 것으로 알려진 '전설의 보물선'이다. 주식시장은 출렁였고, 신일그룹이 이달 초 인수하겠다고 밝힌 제일제강은 상한가까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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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울릉도 앞바다에서 발견됐다는 돈스코이호 선체. 함명 ‘DONSKOII(돈스코이)’가 보인다. 아래 사진은 침몰 전 돈스코이호의 모습. /신일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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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각종 자료들과 현장의 목소리는 의혹을 제기한다. 우선, 해외 전문가는 ‘배에 150조원 어치 금괴가 있었다면, 그 무게 때문에 침몰했을 것”이라고 한다. 해저에 잠긴 돈스코이호를 인양하기로 계약을 맺었다는 회사는 "계약을 한 사실이 없다"고 한다.
신일그룹의 주요 계열사라는 가상화폐 거래소의 싱가포르 주소지는 다른 창업 컨설팅 업체의 사무실이다.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신일산업은 반박하는 형국이다. 돈스코이호에 얽힌 진실과 거짓이 무엇인지를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이 살펴봤다.

① “150조 어치 실렸다” vs. “터무니 없는 과장”
돈스코이호는 이미 2000년에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파산한 동아건설이 "150조원 금괴가 실린 돈스코이호를 인양 중"이라고 밝혀 17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지만,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당시 러시아 해양전문가 세르게이 크리모브스키(Sergei Klimovsky)는 블룸버그와 인터뷰하며 이를 반박했다. 그는 당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중앙해양박물관 수석연구원이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돈스코이호에 있던 금화는 당시 해군 장교들의 월급을 지급하기 위한 수준 정도였을 것”이라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배로 그만큼(150조원 어치)의 금을 옮긴다는 건 웃기는 일이다. 철도로 운반하는 게 훨씬 안전했을 것"이라고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2000년 12월 “돈스코이호가 150조원 금덩이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NYT는 "현 시세(2000년 12월)로 따졌을 때 150조원 어치 금괴의 무게는 1만4000미터톤(1미터톤=1000kg)에 이르렀을 것이다. 이는 전 세계에서 지금까지 채굴된 모든 금의 10분의 1 수준으로, 돈스코이호로는 운반이 불가능한 무게"라고 전했다. 돈스코이호의 무게는 6200톤이다.

② “인양 주관업체 선정” vs. “인양과는 무관하다”
신일그룹은 지난달 13일 보도자료를 통해 "돈스코이호 정밀 식별, 잔해 인양 주관업체로 JDE(제이디엔지니어링)가 선정되고 계약이 체결됐다"고 밝혔다. JDE엔지니어링은 중량물 이송·설치를 전문적으로 하는 중소기업이다.

그러나 JDE측 관계자는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의 전화통화에서 "탐사 용역만을 체결한 것"이라면서 "인양 작업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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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그룹의 돈스코이호 탐사팀이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신일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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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양이 실제로 가능할지도 미지수다. 돈스코이호 인양을 위해서는 포항지방해양수산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현재까지 돈스코이호와 관련한 인양 신청은 없었다"며 "지난해 7월 인양을 위해 어떤 절차가 필요한지를 묻는 문의만 한 번 있었다"고 말했다.

③ “가상화폐로 보증금 모으겠다” vs. “가상화폐 마케팅”
신일그룹이 배를 인양하려면, ‘국유재산에 매장된 물건의 발굴에 관한 규정'에 따라 매장물 추정가액의 10분의 1 이상에 해당하는 발굴보증금을 납부해야 한다. 돈스코이호의 경우 ‘150조 상당’이라는 신일 측 주장을 근거로 하면, 발굴보증금이 15조원이다. 신일그룹은 인양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가상 화폐를 판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상화폐의 이름은 '신일골드코인'이다.

신일그룹은 이 가상화폐를 거래할 '세계 최초 실물경제 국제거래소'를 세웠다며 운영사로 '싱가포르 신일그룹 유한회사'를 내세웠다.

그러나 홈페이지에 적힌 싱가포르 주소지는 싱가포르 법인 설립 컨설팅 업체의 사무실이었다. 이 업체는 싱가포르에 법인 설립을 돕는 것은 물론, 사무실 주소지를 빌려주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기자가 싱가포르 업체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신일그룹이 고객사인가” 물었다. 대표는 "신일그룹과 관계에 대해서는 설명할 의무가 없다"고 말했다. ‘인양보증금을 코인으로 발행해 충당한다’는 신일 측의 계획에 대해 일부에서는 ‘보물선을 이용해 비트코인 사업을 확대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④ “신일이 최초 발견” vs. “2003년 이미 발견”
신일그룹은 홈페이지에 돈스코이를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대 러시아연구소의 2015년 논문 '러시아 순양함 드미트리 돈스코이호와 고종'에 따르면, 100년 동안 바다 속에서 잠자고 있던 돈스코이호는 2003년 한국해양연구소에 의해 침몰위치가 확인됐다.
한국해양탐사연구소는 1999년 ‘밀레니엄 2000 프로젝트’로 돈스코이호 탐사작업을 시작, 약 4년 간의 탐사 끝에 2003년 5월 20일 울릉도 저동 앞바다 수심 400m 지점에서 돈스코이호를 발견했다. 이 때 15cm 함포, 속사포 지지대, 조타기, 전신기, 돛대 지지대, 후갑판 발코니와 선체 측면 등의 촬영에 성공했으며 이들 촬영사진이 기존의 돈스코이호의 설계도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

⑤ 설립 50일, 과거 동아건설과 관련 있나?
신일그룹은 홈페이지를 통해 “1979년 설립된 신일건업을 모태로 한 글로벌 건설·해운·바이오·블록체인그룹”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최소한 외부에 공식적으로 드러난 회사는 신일그룹, 신일돈스코이호거래소 2개 회사로, 이 둘은 모두 올해 설립됐다. 신일건업의 아파트 브랜드인 신일유토빌을 딴 신일유토빌그룹(현 신일광채그룹)이란 곳이 있다. 신일광채그룹이 신일그룹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라는 설이 있지만, 지분관계 등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이 회사는 앞서 2000년에 돈스코이 발굴에 나섰다가 상장폐지된 동아건설 출신들이 모여 설립했다. 신일광채그룹 전 회장인 A(57)씨가 동아건설 회생본부장 출신이다. A씨측 관계자는 “신일광채그룹은 신일그룹의 돈스코이호 인양 사업과 무관한 회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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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그룹 홈페이지에 올라온 제일제강 인수 계약 보도자료. /신일그룹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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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도 모두 올해 계약됐다. 신일그룹은 현재 서울 강서구 공항동과 여의도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부동산 중개업체에 따르면, 신일그룹은 지난 1월에 공항동 사무실 5층 임대계약을 맺었다. 이후 5월에는 6층까지 빌려 객장으로 개조했다. 여의도 사무실도 최근에서야 계약을 했다. 여의도 건물 관리자는 "임대 계약을 맺은 지 얼마 안됐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동아건설 때와 마찬가지로 단기 주가부양을 위한 홍보수단으로 돈스코이호를 내세웠을 수 있다"며 "아직 석연치 않은 점이 많기 때문에 섣불리 투자에 나서면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은 해명을 듣기 위해 신일그룹 사무실 중개인과 회사 대표번호를 통해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한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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