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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제돌이 고향 간 지 5년…돌고래 한 마리가 바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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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애니멀피플] 노정래의 동물원탐험

돌고래쇼 하다가 제주 바다 돌아간 제돌이

돌고래 한 마리가 한국사회 태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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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먼지 같은 이물질이 눈에 들어갔을 때 눈물을 흘려 씻어 내 눈을 보호한다. 슬프거나 기쁠 때도 눈물을 흘린다. 동물도 눈물을 흘릴까? 오늘로부터 5년 전인 2013년 7월18일 고향인 제주도로 돌아가던 제돌이의 눈물을 봤다. 제돌이가 흘린 그 눈물은 무슨 의미일까?

‘제돌이’ 오랜만에 듣는 익숙한 이름이다. 제돌이는 불법포획 되어 제주도 돌고래 공연 업체에서 돌고래쇼를 하다 서울동물원으로 옮겨 온 돌고래 중 한 마리다. 바다에서 잡혀 온 제돌이 친구 춘삼이, 삼팔이 등 돌고래도 사람처럼 이름이 있다. 그물을 쳐 일부러 이 친구들을 잡아들이진 않았다. 물고기를 잡으려고 쳐 놓은 그물에 들어온 돌고래를 놔 주지 않고 잡아들여 훈련시켜 공연에 쓴 것이다. 지금은 어림없는 얘기지만 예전엔 그게 통하던 시대였다.

2013년 7월18일 ‘제돌이 방류’는 돌고래 몇 마리를 바다로 돌려보낸 것을 뛰어넘어 동물복지의 아이콘이 됐다. 해양동물을 보호하는 신호탄 역할도 했다. 돌고래가 그물에 걸려들면 돈벌이가 돼 ‘로또’로 통했으나 제돌이 방류 이후엔 놔준다. 어부들 생각을 변하게 했다. 제돌이가 친구들을 살린 셈이다. 관련된 법을 제정해서 해양생태계의 보전과 관리를 촉진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가축에서까지 ‘동물복지’라는 개념이 싹 트게 했다. 그전에는 가축동물의 복지 개념이 어렴풋했었다. 최근에는 가축의 사육환경 개선을 요구할 정도로 동물복지의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실험동물이건 가축이건 동물을 다루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동물을 다룰 때 동물복지를 먼저 떠올린다. 제돌이 효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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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도 못한 일을 해냈다


수차례 거듭된 제돌이 방류 시민위원회 회의에서 ‘불법포획 된 돌고래’를 제주도로 돌려보내자는 공통된 생각이 모였다. 불법포획된 아이들이라 법적 절차를 밟아 압수해서 원래 살던 곳으로 돌려보내자는 얘기다. 아무도 관심 두지 않던 일에 동물보호단체인 핫핑크돌핀스에서 제돌이를 고향으로 보내자는 불씨를 붙였다. 생명다양성재단, 동물자유연대,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시민위원회, 현대그린푸드, 아시아나항공 등의 역할이 컸다. 도움이 없었더라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촛불집회 못지않은 시민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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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돌이를 데리고 있던 서울동물원도 한동안 죄인 취급 받았으나 사실은 불법포획된 개체인 줄 모르고 동물교환으로 들여왔다. ‘제돌이를 방류’하자는 서울시의 결단과 제주도 바닷가 뙤약볕에서 묵묵히 적응 훈련을 시킨 서울동물원 직원이 없었더라면 돌고래들은 지금도 좁은 수족관을 뱅뱅 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처음엔 제돌이 방류가 정치적 이슈로 비치기도 했으나, 동물원의 원래 기능인 멸종위기종 보전을 위해 해야 할 일이었다. 동물복지 차원에서 방류한 것이 아니다. 외국에서는 돌고래를 사육하지 말라고 권고하는 종이다. 행동반경이 워낙 넓어 좁은 사육 상태가 적합하지 않아서다. 그 일을 우리도 해냈다. 제돌이는 서울동물원에서 돌고래 사육 중단 선언을 이끌기도 했다. ‘돌고래쇼 중단’ 선언을 한 디즈니랜드보다 먼저 터트렸다. 남은 돌고래들도 친구 따라 바다로 돌아갔고 지금은 서울동물원에 돌고래가 한 마리도 없다. 국내 실내 풀장에 남아 있는 다른 돌고래들도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갈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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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보는 패러다임의 전환


제돌이 방류를 정치적 이슈로 여겨 흠집을 내기도 했었다. 방류 예산이 너무 많이 들어 그 돈이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몇 명을 돌볼 수 있다며 발목도 잡았다. 지금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제돌이 방류 예산보다 몇십 배의 효과가 나타났다.

올해 봄에 문화인류학자인 브래들리 타타르(Bradley Tatar) 울산과학 기술원 교수가 학생과 함께 국제 사회학회지 ‘연안 관리’에 논문 ‘돌고래 방류의 사회적 파급효과’를 써서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이 논문에서 ‘돌고래 방류 이후 시민사회의 생태계 보호 운동은 예전보다 활발해졌다’며 예를 들어 밝혔다. 말하자면 생물다양성에 눈을 돌리게 했다. ‘그깟 동물과 식물 몇 종쯤 사라져봤자 별일 있겠어?’ 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사람들도 생명 존중과 자연보호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인간은 생존에 필요한 것을 스스로 합성할 수 없어서 자연에서 얻는다. 음식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의약품은 다양한 동식물과 광물에서 얻는다. 3000여종에 달하는 항생제도 미생물에서 왔다. 좀 이기적이지만 생물다양성은 인간을 이롭게 한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다른 종이 인간에게 어떤 이득을 줄지 아무도 모른다. 작고 하찮은 종일지라도 허투루 대할 수 없다. 인간과 공존해야 한다. 다른 종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제돌이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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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돌고래를 보자


최근에 생명다양성재단에서는 ‘동물축제 반대축제’라는 축제도 열었다. 돌이켜 보면 동물축제랍시고 동물을 잡아 죽이고 먹는 일이 축제였다.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호주 여행에서 돌고래 투어를 다녀온 적 있다. 배 타고 돌고래들이 많이 노는 곳에 가서 멀찌감치 떨어져 보는 정도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너무 좋아한다. 어쩌다 점프라도 하면 곳곳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우리나라 돌고래쇼장에서 봤던 것보다 더 감동적이었다. 야생 돌고래에게 먹이 주는 프로그램도 있다. 정해진 시간에 한정된 관람객만 참여할 수 있다. 정해진 먹이만 줘 배가 부르지 않게 하려는 운영지침이다. 배고픈 만큼 스스로 잡아먹게 해서 사냥할 능력을 잃지 않게 하려는 계산이 깔렸다. 다른 것은 흉내를 잘 내면서 우린 왜 이런 것은 본받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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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돌이가 바다로 돌아가던 날 눈물을 흘렸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어 좋아서 흘렸을까? 고향으로 보내줘 고마워서? 사실 돌고래는 슬픔의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 눈물로 보이는 점액질은 눈에 이물질이 끼었을 때 눈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럴지라도 그 날은 ‘제돌이의 눈물’로 보였다. 우리나라 해양생태계 보전과 동물복지 향상을 위한 전환점이 된 제돌이의 눈물은 헛되지 않았다. 방류 5주년을 계기로 되새기면 좋겠다. 아울러 개인적으로는 작지만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일을 실천할 때다. 모이면 큰 힘이 된다. 돌고래 방류는 다시 생각해도 잘한 일이다.

노정래 전 서울동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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