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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단 1명의 민원 무시했다가..미지급금 1兆 다 돌려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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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생명 즉시연금 가입 강씨

'최저보장이율보나 낮다' 민원

금감원 분쟁위 강씨 손 들어줘

생보사에 "민원 업무 참고하라"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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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한 명이 제기한 민원이 수천억 원대 보험금 추가 지급 사태로 이어질 줄이야….”

국내 생명 보험사들이 최대 1조원 규모의 ‘만기 환급형 즉시연금’ 미지급금을 보험 계약자에게 추가로 내줄 처지에 몰려 불안에 떨고 있다.

이번 사태는 삼성생명의 만기 환급형 즉시연금 상품에 가입한 강모씨가 금융감독원 산하 금융분쟁조정위원회에 중재를 신청하면서 비롯했다. 강씨는 지난 2012년 9월 삼성생명의 즉시연금 상품에 가입하면서 보험료로 10억원을 한꺼번에 냈다. 보험 기간인 10년 동안 보험사가 그가 낸 보험료를 굴려 얻은 이자를 매달 연금으로 돌려받고 보험 만기 시점인 2022년에 최초 보험료 10억원을 환급받는 내용의 계약을 맺은 것이다.

문제는 강씨가 매달 손에 쥐는 연금이 최초 월 305만원에서 259만원, 250만원, 184만원, 136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는 점이다. 이는 보험사가 처음에 받은 보험료 10억원에서 사업비·위험 보험료 등을 뺀 순보험료를 굴려 이자 수익이 발생하면 이를 그대로 강씨에게 연금으로 지급하지 않고 만기 때 보험료를 돌려줄 재원을 미리 제외한 나머지 금액만 연금으로 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강씨가 보험에 가입하며 한꺼번에 납입한 10억원에서 보험사가 사업비 등으로 6000만원을 뗐다면 나중에 이 6000만원을 다시 채워 넣을 돈을 매달 이자에서 빼고 강씨에게 연금으로 지급했다는 얘기다. 삼성생명이 이처럼 매달 떼는 만기 보험금 지급 재원은 시중 이자율 하락으로 금액이 점점 커졌다. 그러나 강씨는 이런 공제가 있는지 몰랐고 보험사가 최초에 약속한 최저 보장 이율인 연 2.5% 수준의 이자인 월 208만원 이상의 연금을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금감원 분쟁조정위도 작년 11월 강씨 손을 들어줬다. 삼성생명이 상품 약관에 만기 환급 보험금을 위한 재원을 매달 공제하고 연금을 준다고 제대로 명시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삼성생명이 올해 초 분쟁조정위 결정을 받아들이며 강씨는 상법상 보험금 청구권 소멸 시효인 3년을 반영해 과거 3년 치 연금 미지급금 1430만원과 지연 지급에 따른 이자 65만원 등 1495만원을 돌려받았다.

이번 결정이 보험업계 전반의 문제로 확산한 것은 금감원이 지난 3월 모든 생명보험사에 삼성생명의 분쟁 조정 결정 내용을 전달하며 업무에 참고하라고 통보해서다. 금감원은 지난달에도 한화생명이 판매한 즉시연금 상품 분쟁 조정 민원에 같은 결론을 내리며 다른 생명보험사에 재차 결정 내용을 알렸다. 금감원은 삼성·한화생명을 포함한 약 20개 생명보험사가 만기 환급형 즉시연금 상품을 부실한 약관에 기초해 소비자에게 판매했다고 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분쟁조정위 결정은 개별 건별로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즉시연금은 약관 부실이라는 문제의 핵심이 회사마다 비슷해 민원이 들어오면 어차피 같은 결론이 날 수밖에 없다”며 “따라서 다른 회사에도 같은 내용의 민원이 있다면 즉시 처리하라고 전달한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삼성생명이 보험 계약자 한 명의 민원을 무시한 것이 보험업계 전체를 휘청이게 하는 초유의 미지급금 지급 사태를 부른 것이다.

금감원은 보험사들이 만기 환급형 즉시연금 미지급금 지급에 소극적일 경우 ‘다수 피해자 일괄 구제 제도’를 적용해 해결에 나설 방침이다. 일괄 구제 제도는 다수 소비자에게 같거나 비슷한 피해가 발생할 경우 금감원이 인터넷 홈페이지 공지 등을 통해 분쟁 조정 신청을 일괄해서 받고 분쟁조정위에 한꺼번에 상정해 피해를 구제하는 제도다. 작년 말 금융 소비자 권익 제고 자문위원회 권고를 받아 금감원이 올해 하반기부터 제도 시행에 들어갈 예정인데, 그 첫 사례로 즉시연금 문제를 다루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업계 불만도 만만치 않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외국에도 없는 초법적인 방식으로 당국이 결정한 내용을 강제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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