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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대한민국 국가대표 라건아가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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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D-31

대회 2연패 노리는 남자농구의 핵

2012년 미주리대 졸업, 올해 초 귀화

“한국은 사랑 … 일본에는 꼭 이길 것”

중앙일보

국내 프로농구에서 6시즌동안 뛰다 올해 초 귀화한 라틀리프. 한국이름이 라건아인 그는 ’아시안게임에서 반드시 금메달을 따내겠다“고 다짐했다. 태극기 앞에서 주먹을 쥐고 각오를 다지는 라틀리프. [양광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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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건아! 라건아!”

한국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센터 리카르도 라틀리프(29·현대모비스)는 최근 특별한 경험을 했다. 지난 4~5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통일 농구경기에서 북측 관중의 큰 환호를 받았다. 처음에 북측 사람들이 피부색이 다른 그를 그저 신기하게 쳐다봤다. 하지만 라틀리프가 호쾌한 덩크슛을 잇달아 꽂아넣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전광판에 적힌 그의 한국 이름 라건아(개명 절차 진행 중)를 연호하는 목소리가 경기장을 채웠다. 충북 진천선수촌을 최근 찾아 대표팀 훈련에 참여 중인 라틀리프를 만났다. 그는 “북한에서 경기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앞으로도 경험하기 힘들 정말 특별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라틀리프는 북에서도 남에서도 특별한 존재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한국 국가대표는 모두 779명. 이 가운데 중국계인 여자탁구의 전지희(26·포스코에너지)와 함께 두 명뿐인 귀화 선수다. 외국인, 특히 중국계의 귀화가 많았던 탁구를 빼면 하계 종목 귀화 선수는 드물다. 농구에선 문태종-문태영 형제 등이 귀화 후 국가대표로 활약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은 어머니가 한국인이어서 ‘한국계 귀화 선수’로 분류됐다. 한국인과 아무런 혈연관계 없이 한국 국적을 받은 농구 선수는 라틀리프가 처음이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라틀리프는 한국을 “제2의 고향”이라고 부른다. 지난 6년간 미국에 머문 건 매년 두 달 남짓. 딸 레아는 2015년 수원에서 태어났다. 레아는 자신을 한국인으로 생각할 정도다. 라틀리프는 지난해 1월 “한국 여권을 갖고 싶다”며 귀화 의사를 표시했다. 한국농구연맹(KBL)과 대한농구협회는 반색했다. 일본·필리핀·카타르 등이 귀화 선수를 통해 전력을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라틀리프는 2012년 미국 미주리대를 졸업하고 곧바로 모비스에 입단했다. 6시즌 동안 울산 현대모비스(2012~15시즌)와 서울 삼성(2015~18시즌)에서 뛰며 평균 18.7점, 10.4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모비스에선 3시즌 내내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2016~17시즌엔 59경기 연속 더블더블을 기록했는데, 이는 미국 프로농구(NBA)를 뛰어넘는 기록이다. ‘골 밑의 지배자’로 명성을 떨친 그는 올 초 체육 인재 특별귀화를 통해 한국 여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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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화가 확정된 뒤 기자회견에 참석한 라틀리프와 부인 휘트니 호지(왼쪽), 딸 레아(오른쪽).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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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름도 만들었다. 성은 라틀리프의 첫 글자를 따서 ‘라(羅)’ 씨로 했고, 이름은 ‘굳셀 건(健)’과 ‘아이 아(兒)’, 건아로 했다. 저돌적이며 파워 넘치는 플레이 스타일과 잘 어울린다. 개명 절차가 끝나지 않아 아직은 유니폼에 라틀리프로 되어 있다. 그는 “아시안게임 전까지 라건아라고 적힌 유니폼을 받고 싶다. 그럼 한국인이 됐다는 게 더 실감 날 것 같다”고 말했다.

개막까지 31일 남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남자농구는 금메달을 노린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 이어 2회 연속 금메달이다. 그는 “금메달을 따면 선수들이 병역 면제를 받는 거로 알고 있다. 선수들이 나에게 여러 차례 말했다”며 웃었다. 이어 “그들을 도와주기 위해 노력하겠다. 무엇보다 팬과 국가를 위해 뛸 것이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일본전에 대한 각오도 남다르다. 라틀리프는 “2012년 첫 전지훈련을 일본으로 갔다. 그때 동료들이 ‘일본은 꼭 이겨야 한다’고 얘기해줬다. 모비스 소속이던 2014년 존스컵에서 일본을 꺾은 뒤 ‘한국을 위해 뛰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아시안게임에서 만나면 꼭 승리하겠다”고 다짐했다.

라틀리프 덕분에 대표팀 공격력은 한층 좋아졌다. 라틀리프는 키 1m99㎝로 아주 큰 편은 아니지만, 육상선수 출신이라 빠르고 탄력이 좋다. 골밑 힘 대결에서도 쉽게 밀리지 않는다. 라틀리프는 대표팀 합류 이후 매 경기 20점 이상 기록하며 해결사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달 농구 월드컵 예선 중국전에선 25득점·11리바운드로 둘 다 팀 내 최다기록을 세우며 승리에 기여했다.

라틀리프한테 공격이 몰리다 보니 공격 루트가 단순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대표팀은 라틀리프가 뛴 홍콩전(농구 월드컵 예선)과 인도네시아전(존스컵)에서 고전했다. 라틀리프가 각각 43점, 22점을 기록했지만, 두 팀이 아시아에서도 약체란 걸 고려하면 만족스럽지 않다. 라틀리프는 “내가 늘 대표팀 공격의 중심일 필요는 없다. 내가 팀에 잘 녹아드는 게 중요하다”며 “나는 센터지만, 키를 뛰어넘는 플레이를 하려고 한다. 이 점을 살린다면 팀에도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라틀리프에게 한국에 관해 물으면 늘 “사랑”이라고 대답한다. 그는 “받았던 사랑을 돌려주기 위해 귀화를 결심했다. 한국을 대표할 수 있어 자랑스럽다”며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꼭 금메달을 따고 싶다. 귀화했을 때가 지금까지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는데,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하면 그때가 최고 순간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진천=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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