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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사라져가는 조선어, 나라도 남기려고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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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만에 장편 ‘국수’ 완간 소설가 김성동씨

임오군변~동학운동 배경으로 각 분야 예인·영웅의 삶 그려

양반·아전·평민·천민의 ‘말’ 기억 속 단어 확인 거쳐 사용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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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초 홍명희 선생은 일본 식민지배가 100년 이상 가리라고 생각하고 기록이라도 남기지 않으면 사라질 것이란 심정으로 <임꺽정>을 썼다고 합니다. 저도 똑같아요. 사라져가는 조선어를 나라도 써서 남기기 위해 <국수>를 썼습니다.”

종교적 구도를 담은 소설 <만다라>로 유명한 김성동 작가(71·사진)가 27년 만에 장편소설 <국수>(전 5권·솔)를 펴냈다. 1991년 집필을 시작한 지 27년 만이다. 17일 서울 중구 정동 달개비에서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국수>는 임오군변(1882)과 갑신정변(1884) 무렵부터 동학농민운동(1894) 전야까지 바둑·소리·서화 등 각 분야의 예인과 영웅들을 통해 쇠락해가는 조선왕조 말기 민중들의 삶을 생생히 그려냈다. 국수는 흔히 ‘바둑의 일인자’를 칭하는 말이지만 사실은 모든 분야의 최고를 가리키는 말이다. 김 작가는 “국수는 ‘솜씨가 뛰어난 민중예술가’들에게 인민 대중이 바치던 꽃다발 같은 헌사”라고 말했다.

<국수>는 130년 전 조선시대의 언어를 되살려냈다.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이 일본 번역투에 오염되지 않은 우리말을 복원해냈다는 평을 받는다면 <국수>는 한발 나아가 계급별로 다르게 쓰이던 언어를 풍부하게 복원해냈다. 양반·아전·평민·천민 등 4개로 나눠진 계급별 언어를 구분해 썼다. 김 작가는 “말은 계급의 산물이다. 조선시대 지배계급인 양반의 언어, 농민 중심의 평민 언어는 아직 살아있지만 아전과 천민의 언어는 거의 사라지고 없다”며 “<임꺽정>이 우리말을 잘 살렸지만 양반과 천민이 모두 같은 양반계급의 언어를 쓰고 있는 점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국수>는 충청도 서천·서산 등지를 포함한 내포지역을 배경으로 한다. 우리말을 가장 잘 지키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김 작가는 “우리 문화와 말의 중심을 잘 지켜낸 지역”이라고 평했다.

<국수>를 완간하는 데 27년이 걸린 데는 조선시대 하층민 언어 복원의 어려움도 영향을 미쳤다. 작가는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삼촌, 어머니에게서 배운 말들을 살려내며 실제 쓰인 말인지 확인하는 작업을 거쳤다.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기 전의 책을 참고했다. 김 작가는 “박정희가 제일 먼저 한 것이 단군 연호를 없애고 서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5·16 이후 책은 언어적 측면에서 취할 게 없다. 지금 나오는 글들은 모두 번역체의 어투”라고 말했다. 그는 “국어사전 역시 일본 사전을 베껴온 것들로 참고할 만한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사라져가는 옛 조선말을 복원한 만큼 책을 읽어나가는 것이 수월하지는 않다. 김 작가는 <국수사전-아름다운 조선말>을 함께 펴냈다.

임우기 문학평론가는 “통일문학을 생각할 때 <국수>는 우리 문학의 뿌리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며 남북 교류사업인 <겨레말 큰사전>을 펴낼 때도 결정적 참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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