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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월드컵 돋보기]크로아티아가 부럽다면, 축구를 ‘진학’에서 해방시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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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수 하드웨어 손색없지만 창의력 넘치는 선수를 배출 못해

좋은 고등학교·명문대 가기 위해 기본기보다 ‘이기는 축구’가 득세

성적보다 개인 능력 종합 평가해야

러시아 월드컵을 좌우한 것은 창의성이었다. 킬리안 음바페와 폴 포그바, 앙투안 그리에즈만 등을 앞세운 프랑스가 정상에 오른 것은 창의성의 측면에서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루카 모드리치와 이반 라키티치의 크로아티아, 에덴 아자르와 케빈 더브라위너 등이 있는 벨기에가 좋은 성적을 거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크로아티아의 선전은 사실 미스터리다. 인구 416만명의 작은 나라인 데다 부족한 인프라, 경쟁력 없는 국내리그, 좁은 시장성, 부패 스캔들 등 한국보다 나은 게 하나도 없다. 크로아티아는 딱 하나를 잘했다. 유소년 때부터 연령별 단계별 기술 교육을 확실히 시킨 뒤 가능성 있는 유망주들을 유럽 각국에 내보내 경쟁력을 꽃피우게 한 것이다.

한국 역시 선수들의 잠재력은 충분하다. 거스 히딩크 전 한국대표팀 감독이 칭찬했듯이 한국 선수들의 하드웨어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 아직도 세계에 내놓을 만한 창의력 넘치는 선수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게 오히려 불가사의할 정도다.

이는 한국 축구의 선수 발굴·육성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잘못돼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가장 큰 문제는 한국에선 축구가 좋은 고등학교, 명문대를 가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있다는 점이다. 기본기나 창의성보다는 이기는 축구가 득세한다. 이기기 위해 3학년들이 뛰고 1~2학년들은 벤치를 지켜야 한다. 이런 풍토에서는 뭔가 남들과 다른 발상을 하고,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려 하는 선수들은 억압을 당하고 배척되기 쉽다. 창의성의 싹이 일찍부터 꺾여버리는 것이다. 손흥민이 한국의 전통적인 시스템에서 벗어나 프리미어리거로 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전국대회 성적·진학이 지배하는 학원축구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음바페나 모드리치 같은 창의성 있는 선수를 배출할 수 없다. 한 고교팀 감독은 “주말리그도 반영되는 등 입시제도가 변하고 있지만 최소 전국대회 8강에 들지 못하면 지원서류도 내기 힘든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학원축구를 진학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전국대회 팀 성적으로 특기생을 선발하는 게 아니라 개개인의 능력과 성과, 잠재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

한 축구인은 “진학과 상관 없이 축구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려면 축구협회가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협회 수뇌부도, 학부모도, 고교·대학연맹도, 시·도협회장도, 지도자들도 가진 걸 다 내려놔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진학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축구의 본질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 그래야 한국 축구도 한 발자국 전진할 수 있다.

<류형열 선임기자 r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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