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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토)

[평화원정대] “낮은 계급과 결혼했다고 형수 집안서…” 온가족에 총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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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평화원정대-희망에서 널문까지

⑭ 인도-명예살인

시궁창 도랑 옆 낡은 집에 CCTV

가난해 두 남매 생존자 지키려 설치

수라지 “형 부부 결혼 안 알렸지만…”

집 찾아낸 사돈 쏜 총에 부모·형 숨져

임신한 형수 3발 맞고도 기적적 생존

형 죽자 친언니 집으로 가버린 형수

“아빠·동생 감옥 나와야…사건 덮자

진술 번복해 주면 거액 주겠다”

수라지 “죽어도 못한다 버티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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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궁창과 폐회로티브이(CCTV)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시멘트로 거칠게 벽을 바른 집은 낡았고 집안 가구라곤 나무궤짝 위에 매트리스 하나 달랑 얹은 침대와 다 뜯어진 소파가 전부다. 침대 맞은편 벽엔 20인치 정도 크기의 텔레비전이 걸렸다. 4분할 된 화면에는 집 바깥 곳곳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소 예닐곱마리가 내리쬐는 햇볕을 피해 어슬렁거리고 그 옆엔 썩은 내 나는 도랑물이 흐르는 집 밖 풍경을 집 안에서까지 지켜봐야 할 필요는 과연 무엇일까?

지난 2일 낮 인도 북부 하리아나주 로타크시 변두리 집에서 만난 수라지 니나니야(22)는 지난해 12월 경찰이 와서 시시티브이를 달아놓았다고 했다. 훔쳐갈 것 하나 없는 이 가난한 집에 설치된 시시티브이는 오로지 그와 그의 누나 랄리타 니나니야(24)의 생명을 지키는 게 목적이다. 하리아나경찰서도 모니터로 동시에 보고 있다. 심지어 이 집엔 경찰관 1명이 24시간 상주하며 남매를 지킨다. 1년7개월 전 참극이 일어난 그날 밤처럼 언제 또 총을 든 이들이 들이닥쳐 방아쇠를 당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2016년 12월18일 밤 10시께 수라지는 부모와 함께 이 방에서 자고 있었다. 누나 랄리타는 옆집 삼촌네에 있었다. 느닷없는 권총 소리에 잠이 깬 수라지는 소리가 난 옆방으로 달려갔다. 옆방엔 형 프라디프와 형수 수실라, 4살짜리 조카가 자고 있었다. 수라지의 눈에 들어온 장면은 끔찍했다. 형과 형수는 총에 맞아 바닥에 쓰러져 있고, 그 옆엔 형수의 남동생과 외삼촌 아들이 권총을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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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 남동생의 권총이 현장에 들이닥친 수라지를 향하더니 불을 뿜었다. “여길 보세요.” 수라지가 평화원정대에 보여주기 위해 윗도리 오른쪽을 내려 보이자 쇄골 아래쪽에 총알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1발을 맞은 수라지는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6발을 맞은 그의 형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수라지를 뒤따라 옆방으로 달려온 부모도 사돈총각이 쏜 총에 유명을 달리했다. 임신 8개월째이던 형수는 총알을 3발이나 맞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대학 때 눈이 맞은 형과 형수는 2012년 12월 양쪽 집안에 얘기도 하지 않고 결혼했어요. 둘 다 1년 동안 집에 안 오고 찬디가르(하리아나주의 주도)에 가 살았어요. 왜 그랬느냐고요? 형수네 집안은 자트 계급 가운데 가장 높은 다히야이고 우리 집은 가장 낮은 발미키이거든요.”

자트는 흔히 아는 인도 카스트 계급 브라만-크샤트리아-바이샤-수드라 가운데 바이샤와 수드라의 중간 계급으로, 주로 델리나 하리아나 같은 인도 북부 지역에 널리 퍼져 산다. 자트 안에서도 다히야는 상인계급인 바이샤에 가깝고, 발미키는 천민계급인 수드라에 가까운 식이다.

이처럼 인도에선 가족이나 친인척이 청춘남녀의 결혼을 출신 계급이 다르다는 이유로 결사반대하는 일이 여전하다. 수라지는 “형수는 자신의 부모에게 결혼 전 단 한번도 얘기하지 않았어요.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라고 말했다. 그 대가로 돌아온 것이 죽음이었다. 이른바 ‘명예살인’이다. 명예살인은 낮은 계급과 결혼하는 것은 집안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라고 여겨 죽음으로 그 대가를 치르게 하는 전근대적인 범죄다.

사건이 일어난 지 1년7개월이 다 돼가도록 1심 재판은 끝나지 않았다. 사건 달 뒤 친언니 집으로 가버린 형수는 태도가 돌변했다. 요즘 가끔 수라지를 찾아와 “프라디프도 죽고 아버님 어머님도 다 죽었다. 내 동생이랑 아빠랑 감옥에서 나와야 한다”며 이쯤에서 사건을 덮자”고 회유하기 시작했다. “너무 어두운 밤이라서 권총을 쏜 사람들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고 법정 진술을 번복하라는 것이다. 형수 가족들은 수라지 쪽 변호사를 만나 “진술을 번복하면 200만루피(3250만여원)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수라지는 “죽어도 그럴 수는 없다며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성폭행 당했는데…나쁜 소문 휘말렸다고
“공동체 명예 훼손됐다”며 여성 살해하기도


인도에서 명예살인이 꼭 낮은 계급과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저질러지는 것은 아니다. 여성이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성폭행을 당하거나, 때로는 안 좋은 소문에 휩싸이기만 해도 가족과 공동체의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간주해 살해하는 경우도 있다. 인도민주여성연합(AIDWA) 하리아나지부장인 샤쿤 탈라는 “인도에선 여전히 여성을 남성 소유물로 인식하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명예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자신들보다 높은 계급의 상대방과 결혼해도 부모가 사전에 정해준 사람이 아니면 참극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평화원정대는 3일 뉴델리에서 자동차로 3시간30분 걸리는 하리아나주 히사르시까지 갔다가 하마터면 인터뷰를 못하고 허탕 칠 뻔했다. 피해자들이 세들어 사는 집의 주인이 “가가 집안 사람들이 칼 들고 오면 어떡하려고 기자들을 끌이들이냐”며 막아섰다. 결국 1시간 가까운 뙤약볕 대치 끝에 집 외관을 카메라에 담지 않기로 약속한 뒤에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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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계급과 결혼해도 부모가 정해준 남편 아니면 ‘불명예 죄’


상위 계급 남성과 결혼한 가가
“왜 남편감을 네가 직접 찾았느냐”
외삼촌이 휘두른 흉기에 남편 잃어
시어머니 “나도 죽은 거나 마찬가지”


인도 헌법·법률로 차별 금지하지만
현실에선 억압·폭력·죽음 계속돼


두살짜리 아들 둔 ‘몰래 결혼’ 엄마
“조금씩 바뀌고 있어…아들은 자유롭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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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사리 만난 사프나 가가(22)의 방 안엔 1년 전 가가의 외삼촌이 휘두른 흉기에 스러진 전 남편 샴 아로라의 영정사진이 걸려 있었다. 사진 아래엔 아로라의 기일, 2017년 7월19일이 또렷이 새겨져 있다.

그날 외삼촌은 자신의 아들과 친구를 데리고 가가의 집을 방문했다. 가가와 아로라가 3월31일 가가의 식구들을 피해 델리에 있는 힌두교 사원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올리고 50여일 피신생활을 하다 아로라 부모 집으로 돌아온 지 석달쯤 된 때였다.

가가의 외삼촌은 결혼 전에도 두 사람이 사귀는 것을 알고는 아로라가 일하는 부모 식당으로 흉기를 들고 쫓아온 적이 있었다. 그런 삼촌이지만, 가가는 인도식 ‘밀크티’인 짜이를 정성스레 대접하려고 방으로 들어섰다. 삼촌이 흉기를 손에 쥐고 친구와 함께 아로라 위에 올라타 있고, 아로라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삼촌 친구가 총을 꺼내 가가를 겨눴다. 가가가 비명을 지르자 세 사람은 도망갔다. 아로라는 병원 도착 나흘 만에 숨졌다.

가가네 집안의 계급은 수드라에 해당하는 발미키, 아로라네는 그 위 바이샤에 해당하는 펀자비다. 펀자비는 하리아나주 북쪽에 접한 펀자브주와 파키스탄 쪽에 널리 퍼진 상공인 계급이다. 이곳에선 아무리 높은 계급의 남자와 결혼하더라도 부모가 앞서 정해준 경우가 아니면 그 가족에겐 매우 불명예스런 죄가 되는 것이다.

“왜 (가족과 친척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다른 계급의 남자랑 결혼했느냐는 거예요. 부모님이 원하는 남자를 자신들이 찾아주면 제가 결혼할 수 있는데, 왜 제가 직접 찾느냐는 거죠. 인도에선 연애결혼을 하면 안 돼요. 사람들 생각 바꾸기가 어려우니 그냥 연애결혼을 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아로라가 연애 시절 사준 반지를 매만지던 가가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그의 본심은 말과 달랐다. 가가는 이내 “연애를 하지 않으면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없잖아요. 모르는 사람이랑 어떻게 결혼해요. 중매결혼은 좋지 않아요”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명예살인이라는 폭력은 희생자뿐 아니라 많은 이들의 삶을 파괴한다. 아로라는 원래 쌍둥이였다. 형 람 아로라는 5년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4년 새 쌍둥이 아들 둘을 모두 잃은 엄마 찬찰(55)은 세상 모든 것을 잃은 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밥맛도 없고 삶의 의욕도 모두 잃었어요. 나는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찬찰의 주름진 두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끊임없이 굴러 떨어졌다.

인도 헌법은 제15조에서 “국가는 종교, 인종, 카스트, 성, 출생지 등을 이유로 시민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명토박았다. 이를 실행하기 위한 관련 법률도 여럿 만들었다. 하지만 현실에선 카스트와 성을 이유로 한 차별과 배제, 억압, 폭력과 죽음이 멈추지 않는다. 숭고한 이념은 절로 이 땅에 내려와 뿌리 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쿠숨(25)은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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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민집안 출신인 쿠숨은 인구의 25%가량을 차지함에도 이른바 불가촉천민(달리트)이라 불리우며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계급 출신의 남편 하와 싱(27)과 지난 2013년 ‘몰래 결혼’을 했다. 쿠숨 부모는 계급을 이유로 반대했다. 싱의 부모와 같은 마을에 사는 쿠숨의 친척들은 싱을 볼 때마다 계속 때렸다. 지금도 명절 때 싱의 부모를 만나기 위해 부부가 마을에 들어가면 싱에게 “죽여버리겠다. 우리 마을에 들어오지 말라”고 내놓고 협박한다.

“계급 문제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야 하는 문제라 금방 해결될 순 없을 거예요. 앞으로도 오래 걸리겠죠. 하지만 조금씩은 바뀌고 있어요. 시민단체들이 시골 마을을 찾아다니며 교육할 때 저도 함께 가서 얘기해요. 다른 계급 사람이랑 결혼해도 문제없다고, 누구든 계급 생각하지 않고 일할 수 있다고 하죠. 우리 안시는 나중에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키울 거예요.”

큰 눈망울의 두 살짜리 아들 안시가 엄마 쿠숨의 손을 꼭 움켜쥐었다.

뉴델리·하리아나/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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