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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사설] 최저임금 공약 불이행 아니라 고용 쇼크에 사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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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면서 "사과드린다"고 했다. 2년 뒤 1만원이 되려면 내년 인상률이 15%는 돼야 했지만 10.9%에 그쳐 공약을 못 지키게 됐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가능한 한 조기에 1만원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들은 최저임금이 지킬 수 없을 만큼 급속하게 올랐다고 비명인데 대통령은 거꾸로 인상 폭이 작아 죄송하다고 한다. 공약을 이행할 수 없게 된 데 사과할 수 있으나 대통령의 인식이 고용 현장 현실과 동떨어진 것은 아닌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년도 최저임금 두 자릿수 인상이 결정된 후 350만 소상공인을 대표하는 소상공인연합회는 서울 광화문에서 천막 농성을 벌이고 최저임금 불복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해결해달라"고도 했다.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는 일제 휴업 등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중소기업인들과 가진 간담회는 정부 성토장이 됐다. "현실을 알고 싶으면 장관이 직접 현장에 와서 3개월만 일해봐라" "장관직을 걸고 대통령에게 직언하라"는 발언이 쏟아졌다.

문 대통령은 이날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상 폭을 우리 경제가 감당해 내는 것"이라고 했다. 감당할 수 있는 최저임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의미로도 들린다. 하지만 이미 우리 최저임금은 OECD 최고 수준이다. 다른 나라엔 거의 없는 주휴(週休) 수당을 포함하면 현재 최저임금은 사실상 9045원에 달하고 내년엔 1만원을 넘어선다. 미국(8051원) 일본(8497원)보다 높다. 내수가 위축되고 경기 하락 조짐이 본격화하면서 서민 경제가 급속히 식어가고 있다. 전체 고용의 25%를 담당하는 자영업 경기가 무너지고 있다. 그런데도 감당 못 할 최저임금 폭탄까지 터지면 자영업자들은 갈 곳이 없어진다.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이 내수를 살리고 일자리 증가로 이어진다"며 선순환 효과를 강조했다. 그러나 현장에선 정반대의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최저임금의 급속한 인상이 저소득층 일자리를 빼앗고 이들의 수입을 줄여 소득 분배를 악화시키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 모든 통계와 대부분의 전문가, 국제기구까지 급속한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말하고 있다. 경제 부총리조차 "최저임금 인상이 하반기 경제 운용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그래도 대통령은 이런 진짜 문제에 대해선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최저임금 두 자릿수 인상 결정 이후 소상공인 등이 격렬하게 반발하자 정부와 여당은 화살을 대기업 등에게 돌리고 있다. 여당 대표는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갑질 횡포와 불공정 계약, 높은 상가 임대료"가 문제라고 했고, 공정거래위원장은 "프랜차이즈 가맹본부의 불공정 행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대기업의 납품 단가 인상을 요구했고,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는 카드 수수료 인하와 임대료 인상 억제를 추진하겠다고 한다. 작년에 했던 그대로다. 그 결과가 지금의 고용 쇼크다.

청와대 경제수석이 올해'3% 성장, 일자리 32만개 창출'이라는 정부 목표 달성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결국 인정했다. 검증도 안 된 소득 주도 성장 실험을 계속하더니 결국 이런 결과를 낳았다. 일자리 줄이고 서민 경제 죽이는 자해(自害) 정책을 펼 때부터 예상됐던 일이다. 미국, 일본 등 세계경제는 호황인데 우리만 침체를 겪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정부가 정책 역주행만 멈추면 된다. 대통령은 최저임금 공약 불이행이 아니라 고용 쇼크와 어려운 서민 경제 현실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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