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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김경준의 리더십 탐구] 스웨덴 명문가는 왜 후계자를 海士에 입학시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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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리더는 批評家 아니라 냉혹한 현실을 다루는 실천가

'깜짝 발탁'으로 수직 상승하면 조직에는 惡夢·혼란 일으킬 뿐

철저한 현장 경험과 숙성 거쳐 人材 양성하는 조직만이 번영

조선일보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시대는 리더를 탄생시킨다. 혼란기에 영웅(英雄)이 출현하고, 안정기는 현군(賢君)이 개막한다. 하지만 탁월한 리더도 인간인 이상 죽어야 하는 운명이다. 그러기에 우수한 후계자로 이어지는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공동체는 지속된다.

인간사에 당대에 불꽃처럼 일어났다가, 리더의 죽음과 동시에 사그러든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차세대 리더의 육성 구조가 빈약한 조직의 리더십 교체는 '도박'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오랜 기간 번영을 이룬 조직은 공통적으로 체계적인 리더 발굴과 육성, 검증 시스템이 확립돼 있었다. 유능한 리더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고, 자질을 갖춘 인재는 현장 경험을 통해 숙성되면서 만들어진다. 이런 과정이 구조적으로 확립되어야 조직은 세대를 이어서 영속(永續)한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격언처럼 천년 제국 로마의 리더들이 그러했다. 미래 로마를 책임질 리더는 군사·재무·행정 분야에서 단계별로 경험을 쌓으면서 능력을 시험받았다. 로마공화정은 농민이 유사시 병사가 되는 시민군 체제를 유지했다. 따라서 지도자의 사회 경력은 군대에서 시작됐다.

20대 초반에 로마군에 입대해 최소한 3~4년 이상 장교로 근무했다.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백전노장인 동료 장교와 부하 병사들에게 인정받는 도전적 상황을 이겨내 살아남은 리더 후보들은 재정을 관리하는 회계감사관(Quaestor)을 맡았다. 여기서 효율적 재정 운영 실무와 중요성을 배웠다. 다음 단계는 법무관(Praetor)으로 도시의 치안·사법절차를 담당하며 법치의 최일선 실무를 익힌다. 이후 단위 조직 책임자인 지방관이나 군 간부 역할을 수행한 후 대개 40세가 넘어야 최고위 관직인 집정관(Consul)에 출마할 자격이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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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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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락쿠스 형제와 카이사르, 키케로 등 대부분의 지도층이 이런 단계별 인재 양성 시스템을 거쳐 성장하고 배출됐다. 이런 실무 위주 방식 덕분에 로마는 현실과 유리(遊離)된 관념론과 이상론에 경도된 리더들로 말미암아 공동체가 혼란에 빠지거나 쇠락하는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자작농을 기반으로 병농일치(兵農一致) 국가였던 로마와 달리, 르네상스 시기 지중해를 제패하고 천 년을 지속했던 이탈리아 도시국가 베네치아는 병상일치(兵商一致) 구조였다. 유사시 상인(商人)이 해군이 되고, 무역선단은 해군함대로 재편되는 시스템이었다. 당시의 무역은 해적이나 적대국 선박과의 전투가 다반사였다.

엔리코 단돌로, 안드레아 그리티 등 베네치아의 대표적인 국가원수들은 모두 청년 시절 배를 타고 바다를 오가며 상거래를 통해 세상 물정을 깨우쳤다. 동시에 해상 전투 경험을 쌓으며 단련되고 역량을 인정받아 리더가 됐다.

조직의 리더는 비평가나 학자가 아닌 실천가이다. 비평가와 학자는 매력적 개념과 화려한 언변으로 무장하고 남에게 '감 놔라, 배 놔라'하고 논평만 하면 된다. 하지만 조직의 리더는 현실에서 살아있는 사람들을 이끌어 구체적인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기본적인 자질을 갖춘 인재가 풍부한 현장 경험으로 숙성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

지식만으로는 허황되고 경험만으로는 협소해지기 때문이다. 이력서는 화려하지만 실질적 경험이 부족한 사람의 깜짝 발탁에 따른 수직 상승은 개인에게는 행운일지라도 조직에는 악몽의 시작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조직 운영 경험이 일천한 범인(凡人)들이 갑자기 조직의 리더가 되었을 때 보여주는 혼란과 무능은 인간사에서 익숙한 광경이다.

로마와 베네치아는 뚜렷한 실적이 없고 역량을 확인받지 않은 사람이 행운에 힘입어 지도자로 등장하기 어렵도록 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처럼 지속적으로 번영하는 조직이 되려면 높은 이상을 추구하되 냉혹한 현실을 다룰 줄 아는 역량 있는 리더를 양성하는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현대 기업에서는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家門)이 차세대에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 전문 기술과 리더십을 연마하게 하고, 일본의 도요타 가문은 후손에게 철저한 현장 경험을 의무화해 리더를 양성하고 있다. 조직은 곧 사람이다. 우수한 자질의 인재들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길러지고, 단계별로 검증된 인적자원이 분야별로 풍부하게 활용되는 조직은 번영할 수밖에 없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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