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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서지문의 뉴스로 책읽기] [109] 중국의 엘리베이터 레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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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조선일보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2004년에 중국에서 친구가 살던 대학교 사택을 몇 번 방문했는데, 15층의 아파트에 엘리베이터 운전자가 있었다. 늘 시무룩한 표정의 그 여성은 주민이 엘리베이터에 타면 끝에 솜과 헝겊을 감은 한 자가량의 막대로 숫자판 위의 해당 층을 눌렀다. 주민과 그 여성의 사이에는 미미한 눈인사도, 미소의 교환도 없었다. '사회주의식 완전 고용'의 민망한 얼굴이었다.

우리나라 일자리가 태풍에 날아가듯 사라져가니까 어느 날 정부가 모든 고층 건물 소유주에게 엘리베이터마다 3교대로 엘리베이터 운전사를 고용하라고 명령하는 것 아닌가, 하는 실없는 걱정도 해본다. 정부는 일자리를 쓸어가는 경제정책을 수정하거나 되돌릴 생각은 하지 않고 복지 지원금으로, 그리고 정부의 직접 고용으로 해결하려고 하니 재앙으로 돌진하는 꼴이다.

요즘 우리 정부의 고용 계획을 보면 정말 그 많은 신규 채용자에게 주어질 일감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우리나라는 규제를 혁파하면 규제를 담당한 공무원들이 할 일이 없어져서 규제 혁파를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허탈한 생각도 해보게 된다. 정부는 고속도로 통행료 징수를 전부 무인(無人) 징수 시스템으로 전환해서 연 2000억원의 사회 편익 효과를 낼 계획을 세웠으나 현재의 징수원 수천 명이 실직하게 되는 문제 때문에 백지화했다고 한다.

현 경제 상황에서는 무인 시스템 도입이 톨게이트 징수원들에게 현재보다 양호한 직장으로 갈아타는 전기(轉機)가 될 가망은 없다. 지금처럼 최저임금 인상으로 무수한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긴축, 폐업하고 업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일률적 근로시간 단축으로 수많은 업체의 생산성이 추락하면 우리나라는 다시 신용 불량 사회, 불신 사회로 후퇴하지 않겠는가.

미국의 1930년대 대공황기를 배경으로 하는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보면 미국 중서부 지역의 농민들이 가뭄과 은행 차압에 쫓겨서 고물차에 몸을 싣고 정든 땅을 떠나 일자리가 있다는 캘리포니아로 물결처럼 몰려간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일자리는 과일 수확철의 며칠간 과일 따기가 전부였다. 이 서럽던 오키들(okies·오클라호마 촌뜨기)은 정부의 적극적인 시책과 자신들의 노력으로 이제 모두 캘리포니아의 중·상류층이 되었다. 이 정권은 우리 중산층의 하락을 방관하는 것인가, 조장하는 것인가.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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