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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월드컵, 프랑스보다 중국이 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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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부동산 기업 '완다' 등 광고판 점령… 골 터질 때마다 천문학적 마케팅 효과

16일 새벽 열린 러시아월드컵 결승전. 프랑스와 크로아티아가 여섯 골을 주고받은 경기에서 국내 기업인들의 눈길을 끈 것은 중국 기업의 광고판이었다. 전반 초반 두 골이 터지던 순간 양측 골대 주변에서는 중국 부동산 기업 완다의 광고판이 노출됐고, 다섯 번째 골 때는 중국 TV 업체 하이센스 광고가 보였기 때문이다. 경기장 주변 광고판에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공식 파트너와 월드컵 스폰서 12기업의 광고가 돌아가며 나오는데, 운 좋게도 골이 터질 때마다 중국 기업의 광고가 TV 중계에 노출된 것이다. 한 전자 기업 임원은 "경기장 주변이 온통 중국 기업 광고로 뒤덮인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6월부터 33일간 진행된 러시아월드컵의 최종 승자는 대회 우승국 프랑스도, 개최국 러시아도 아닌 중국이라는 말이 마케팅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이번 월드컵의 공식 후원사로 대거 참가하면서 한 달간 전 세계 시청자 32억명에게 브랜드를 확실하게 각인했다는 것이다. 20여 년 전 삼성전자·현대차 등 국내 대표 기업들이 올림픽·월드컵 공식 파트너로 활동을 시작하며 전 세계 시장으로 뻗어 나갔던 한국의 성공 방정식을 중국 기업들이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러시아월드컵 비즈니스 승자는 中 기업

이번 월드컵에서 중국 기업들은 상위 스폰서(피파 파트너·월드컵 스폰서) 12기업 중 4곳을 차지했다. 완다·하이센스를 비롯해 중국 3위 스마트폰 업체 비보와 2위 유제품 업체 멍뉴가 참여했다. 아시아 국가 경기에서 홍보가 가능한 '내셔널 서포터'까지 합하면 총 7곳으로 늘어난다. 중국 정장 브랜드 디파이, 전기 스쿠터 업체 야디, 가상현실(VR) 기기 업체 즈뎬이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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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성규


영국 시장조사 업체 제니스는 러시아월드컵 광고비 24억달러(약 2조7000억원) 중 중국 기업이 8억3500만달러(약 9400억원)로 전체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했다고 분석했다. 미국(4억달러)의 2배, 개최국 러시아(6400만달러)의 13배가 넘는 '큰손'이었던 셈이다. 지난달 러시아월드컵 개막식에서 중국 구이저우(貴州)성 출신의 청소년 6명이 국제축구연맹 깃발을 들고 입장한 것도 월드컵 주요 스폰서인 완다의 힘이 작용한 결과다.

중국 업체들은 2015년 불거진 국제축구연맹의 뇌물·부패 스캔들로 소니·존슨앤드존슨 등 글로벌 스폰서들이 빠져나간 빈자리를 채우며 월드컵 마케팅의 전면에 나섰다. 여기에는 '월드컵 본선 진출과 월드컵 개최'를 목표로 천명한 '축구광'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책에 부응하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들은 이번 월드컵에서 협찬금 이상의 홍보 효과를 거둔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도 지난 2005년부터 10년간 영국 축구 클럽 첼시를 후원하면서 후원 이듬해 유럽 내 매출과 브랜드 인지도가 각각 111%, 68% 상승했다.

인도 등 신흥 시장에서도 스포츠 마케팅 치열

삼성전자가 최근 스마트폰 신공장을 완공한 인도에서도 중국의 스포츠 굴기가 한창이다.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인 BBK의 양대 브랜드 비보와 오포는 인도의 국민 스포츠 '크리켓'을 중심으로 스포츠 마케팅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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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오포는 향후 5년간 인도 크리켓 국가대표팀 스폰서가 되는 조건으로 총 107억9000만루피(약 1780억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전 스폰서였던 인도 미디어 기업 스타 인디아가 냈던 협찬액의 5배가 넘는 돈을 베팅한 것이다. 인도 현지 언론이 '눈이 튀어나올 만큼 엄청난(eye-popping) 금액'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심지어 오포와 맞붙었다 고배를 마신 경쟁 브랜드는 76억8000만루피를 베팅한 비보였다.

국가대표팀 스폰서를 놓친 비보는 인도 크리켓 프리미어 리그 5년치 스폰서십을 따냈다. 역시 이전 협찬금보다 4.5배 높인 금액(약 3600억원)을 걸어 경쟁사들이 엄두도 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인도 현지 언론은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중국 기업이 인도 전체 스포츠 스폰서십 금액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며 경악하는 분위기다.

현재 인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오포와 비보는 점유율이 3·4위다. 삼성전자가 작년 4분기부터 중국 샤오미에 1위 자리를 뺏겨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에서 '제2의 샤오미'가 스포츠 마케팅을 앞세워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중국 통신장비·스마트폰 업체인 화웨이도 유럽의 유명 축구 클럽인 AC밀란, 아스날, 파리 생제르맹 등과 스폰서십 계약을 맺으며 유럽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상명대 오일영 교수(스포츠산업학)는 "중국 기업들이 정부의 전폭적 후원을 받으면서 지속적으로 글로벌 스포츠 이벤트를 활용하고 있는 만큼 머지않아 선진 시장에서도 한국 기업에 상당한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순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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