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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사설] 최저임금 결정시스템 이대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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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한 14일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는 전체 27명 재적위원 중 14명만이 참석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근로자, 사용자, 공익을 대표하는 각각 9명씩의 위원으로 구성되는데 사용자위원 9명은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적용안이 무산된 것에 반발해 전원 불참했다. 근로자위원 9명 중 민주노총 추천 위원 4명은 처음부터 논의에 참가하지 않았다. 사용자위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최저임금이 결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노사 위원들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와중에 공익위원들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구도 자체는 최저임금위원회가 출범한 1987년 이후 거의 매년 되풀이돼왔다. 이게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사회적 대화기구 현주소다.

최저임금은 국가경제에 매우 즉각적으로, 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경제에 미치는 효과로만 따지자면 금리 결정 이상으로 엄격한 과학적 분석에 기초해야 할 작업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이만큼 정치적인 결정이 드물다. 노사는 끝까지 각자 주장을 되풀이할 뿐이고 공익위원들은 경제적 타당성이 아니라 정부 정책 방향성을 최우선 고려 요소로 삼는다. 임금 인상은 그 나라 경제 상황을 따라가는 것이 정상인데 주요국 중에서 경기가 가장 안 좋은 한국이 2년간 최저임금을 29% 올리는 현상은 바로 이 구조에서 나온다. 이해당사자를 논의에 참가시킨다는 명분을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이 너무 크다. 더구나 근로자위원 9명 중 최저임금 직접 대상자인 비정규직·저임금 근로자 대표는 2명뿐이고, 사용자위원 9명 중 소상공인 대표 역시 2명에 그친다. 최저임금 논의가 구체성을 잃고 노사 간 명분 싸움으로 흐르는 이유다.

유럽과 일본 등 사회적 대화기구를 통한 최저임금 결정이 무리 없이 굴러가는 나라도 있다. 그러나 제도는 각 사회의 이해 조정 역량과 문화 토양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지금 최저임금 결정 방식이 우리 실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면 다른 방법을 검토하는 게 맞는다. 최저임금을 의회가 결정하는 미국·뉴질랜드 방식, 정치색이 배제된 순수 전문가 기구를 두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 좌우지간 지금 방식으로 안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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