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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토)

[앵커브리핑] '원미동…멀고도 아름다운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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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쌀과 연탄만을 취급하던 김포슈퍼는 점포를 확장하면서 다른 물품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른 물품이라는 것들은 공교롭게도 근처에 있던 형제슈퍼가 주로 팔던 것들이었지요.

화가 난 형제슈퍼는 그동안 취급하지 않았던 쌀과 연탄을 맞불 놓는 식으로 들여다 놓으면서 사달은 시작됐습니다.

두 가게 사이에는 이른바 출혈경쟁이 시작되었던 것이지요.

먹고사는 일이 힘들어서 강퍅해진 동네에서 빤한 손님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상점들의 애환…

같은 골목길에서 벌어진 을들의 전쟁…

사실 따지고 보면 최저임금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지금의 골목길 전쟁도 힘없는 을들의 전쟁…

그것도 가게끼리의 경쟁이 아닌, 역시 빤한 수입을 놓고 가게 주인과 점원 사이에 벌어져야 하는 이 안쓰러운 을들의 전쟁…

최저임금 1만 원.

그것이 가져다줄 것이 꼭 장밋빛 미래만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최소한 그 근처로 가게 할 줄은 알았던, 좁고 멀고 험한 길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그래도 너무 성급한 것이었을까.

"이번 최저임금 인상, 하반기 경제 운용에 부담될 수 있어" - 김동연 경제부총리

"최저임금 1만원을 이룬다는 목표는 사실상 어려워…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을 사과드립니다."


주무장관은 그 공약에 못 미치는 액수로 내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된 지금도 여전히 무리인 것 같다면서 난감한 표정이고 대통령은 결국 사과했습니다.

우리에게 최저 임금 1만 원은 그토록 멀고도 아름다운 목표였을까…

정부는 목표의 아름다움에 가려서 짐짓 골목길에서 들려오는 외침소리는 듣지 못한 것일까…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

골목길 을들의 전쟁 뒤에서 안도하고 있는 갑들…

그러니까 이 모든 상황이 남의 일처럼 돼버린 대기업들이 관전자로 남는 한, 을들의 전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

앞서 말씀드린 김포슈퍼와 형제슈퍼는 양귀자의 소설 '일용할 양식'에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일용할 양식'은 그의 연작 소설 '원미동 사람들'의 일부이지요.

부천의 원미동은 7~80년대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동네…

성장과 소외, 풍족과 빈곤이 치열하게 갈등하면서 공존했던 곳이었습니다.

그 원미동.

한자로 풀이 하면 '멀고 아름다운 동네'입니다.

위안이라면 원미동은 지금은 번화한 동네로 바뀌었다는 것.

물론 오랜 세월이 흐른 뒤였습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손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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