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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삶을 위한 임금](2)붕괴 위기 자영업, 노동시장 양극화···최저임금은 '만능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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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이 높아지면 힘들긴 하죠. 지금도 이미 최저임금보다 더 드리는데 아마 내년엔 더 올려드려야 할 것 같아요.” 서울 종로구에서 3년째 프랜차이즈 빵집을 운영하는 박모씨(49)는 “인건비가 늘어나긴 했지만 사실 진짜 부담이 큰 고정비용은 임대료와 재료비이고, 인건비는 그다음”이라고 말했다.

주휴수당을 포함해 월급 기준으로 계산한 내년 최저임금은 174만5150원이다. 주 40시간 일하는 풀타임 노동자를 고용해 최저임금을 주던 사업주는 내년에 1인당 매달 약 17만원씩의 임금부담을 더 감당해야 한다. 박씨의 지출내역을 보면 월매출 4500만원 중 임대료로 430만원, 재료비로 약 1000만원, 아르바이트 2명과 제빵기사 1명의 인건비로 500만원 정도가 나간다. 각종 공과금을 내고, 사업 초기 가맹비와 인테리어 때문에 생긴 대출금을 갚으면 그의 손에 떨어지는 돈은 다달이 400만~500만원 정도다.

■ 줄일 수 있는 게 인건비뿐

내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된 후 소상공인들이 “감당할 수 없다”고 아우성치는 것은 월 지출 중 인건비 말고는 자력으로 줄일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임대료는 떨어질 기미 없이 계속해서 오르기만 한다. 식재료도 발품을 팔면 싸게 살 수 있지만 대부분 본사에서 비싸게 파는 재료를 구입하게 돼 있다. 현금을 쓰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카드수수료도 매출의 2~3%는 된다. 그는 “카드수수료 부담이 1%만 줄어도 월 45만원이 생기는데, 이 정도면 인건비 인상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며 “시급이 문제가 아니라 임대료를 고정시킨다든지 카드수수료, 프랜차이즈 가맹비를 조절해주는 근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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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최저임금이 정해질 때마다 한쪽에서는 임금이 올라 영세 자영업자들과 소기업들이 생존을 위협받는다고 아우성친다. 반면 한쪽에서는 최저임금이 소득주도성장을 이루는 만능키인 듯 여긴다. 하지만 통계를 들여다보면 자영업자 비율이 지나치게 높아 영세업자들끼리 과당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경제구조, 과도한 임대료와 프랜차이즈 출점경쟁 문제 등이 층층이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 기준 자영업자는 568만명으로 전체 취업자 중 21.3%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7위다. ‘사장님’ 소리를 듣지만 임금노동자보다 사정이 나쁜 게 보통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자영업자 문제와 사회적 보호’ 보고서를 보면 2015년 기준 자영업 소득이 임금소득보다 많은 ‘사업소득가구’는 임금소득이 더 많은 ‘근로소득가구’가 버는 돈의 81.5%밖에 벌지 못한다. 임금노동자 중위임금의 3분의 2에도 못 미치는 돈을 버는 저소득 자영업자가 2014년 기준 27.6%나 된다.

■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점주’들

자영업자의 72%는 직원을 두지 않고 혼자 일한다. 통계청 자료를 봐도 2016년 기준 자영업자 연평균 소득은 6244만원이었지만 하위 20%의 소득은 890만원에 불과했다. 사정이 조금 나은 2분위(하위 20~40%)의 평균소득도 2409만원이었다. 10명 중 4명이 연 2500만원도 못 번다는 뜻이다. 3년 동안 폐업하지 않고 살아남은 ‘3년 생존율’도 37% 선이다.

그런데 2015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최근 4년간 서울지역 소규모 상가 평균임대료는 13.1% 올랐다. 최저임금 인상에 가장 크게 반발하고 있는 편의점 등 가맹업주들은 본사에 내는 로열티 부담이 크다고 아우성친다. 편의점은 같은 브랜드끼리는 250m 이내 거리에 점포를 낼 수 없지만, 브랜드가 다르면 그런 제한이 없어 출혈경쟁이 크다. 국내 5대 프랜차이즈 점포 수는 4만개에 달한다.

임금 상승을 감당할 수 없는 자영업자들의 폐업을 유도하고 좋은 일자리를 찾도록 이끌 대책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 얘기다. 이들이 갈 만한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2013년 저소득 자영업자 중 점포를 접고 임금노동자로 취업한 사람은 5.1%뿐이었다. 이보다 많은 10.1%는 비임금노동자가 되거나 일자리를 잃었다. 나머지 84.7%는 한계상황에 몰렸음에도 자영업 일자리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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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들이 많아진 것 자체가 일자리 부족 때문이다. 빚을 내서라도 프랜차이즈 매장을 여는 것은 그동안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임금노동자들의 ‘최후의 보루’였다. 전성유 한신대 교수는 “한국에서 자영업은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안전망 역할을 해왔다”며 “이미 자영업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속도를 조절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노동시장 양극화도 풀어야

임대료 문제, 프랜차이즈 갑질, 비정규직들의 열악한 노동 같은 구조적인 문제들을 놔두고 마치 깔때기처럼 ‘최저임금 논란’만 계속해서는 아무것도 풀리지 않는다. 자영업자들이 많은 것도, 최저임금으로 을들의 갈등이 빚어지는 것도 결국 한국의 노동시장이 일자리 창출에서나 임금구조에서나 모두 열악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저임금 노동자의 비중이 높다. 최저임금의 영향권에 있는 사람들도 많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내년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을 받아 임금이 오를 수 있는 사람을 전체 노동자의 18.3~25.0%인 290만~501만명으로 보고 있다. 최저임금도 안되는 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전체 임금노동자의 13.3%나 된다. 미국(2.7%), 독일(1.8%), 일본(2.7%), 네덜란드(6.6%) 등보다 훨씬 비중이 높다. 영세한 소기업에서 일하거나 비정규직으로 고용된 사람들의 임금이 워낙 낮아서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 격차, 영세·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격차가 갈수록 커지면서 최저임금은 너무 많은 이들의 삶이 걸린 동아줄이 돼버렸다.

전문가들은 ‘소득주도성장’을 위해서는 최저임금뿐 아니라 사회안전망을 마련하는 등 다양한 정책이 상호보완을 해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의료·교육·주거복지나 다양한 현금성 수당을 늘려 저소득층의 지불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김종진 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유럽국들이 최저임금을 아주 많이 올리지 않고도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사회안전망 때문”이라며 “임금 자체가 적고 사회안전망이 없는 상태에서 임금만 올리면 영세 사업자들이 부담을 짊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영세 사업자들을 한계상황으로 몰아붙이는 원인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만일 임금이 문제라면 영세기업들이 부담을 갖지 않는 선에서 최저임금을 정한 뒤 복지정책으로 보완하는 제도를 마련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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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원·허진무·김찬호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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