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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세포 분열 장면과 `Hello, World!`...상상 너머 실제를 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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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령의 뇌과학 에세이-15] 중학교 과학 시간에 처음으로 세포 분열 과정에 대해서 배웠다. 유전자의 양이 두 배로 늘어나고, 양쪽으로 유전자와 물질들이 나뉘면서 한 개의 모세포에서 두 개의 딸세포가 생긴다고 배웠다. 세포 분열의 각 단계를 그린 그림들을 올바른 순서대로 정렬하는 문제가 시험에 출제되곤 했었다.

교과서에 있는 대로 이해하고 외우기는 했지만, 솔직히 별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세포랍시고 그려둔 동그라미로는 세포가 진짜로 무엇이고 어떤 의미인지 거의 실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포 분열에 대한 지식은 시험 성적으로든 무엇으로든 내 인생에 도움이 되기는 했을 테지만,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바꿔주고 삶을 풍부하게 하지는 못했다.

◆세포 분열의 현장

그런데 그렇게 지루했던 세포 분열 과정을 보며 돌고래 비명을 지르게 될 줄이야! 아래 링크한 동영상의 1분30초쯤부터는 세포들이 분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둥그런 초록색 덩어리들이 하나하나의 세포이다. 동영상에서 하얀 글씨로 'dividing cell'이라고 표시된 부분을 눈여겨보다 보면 하나의 덩어리(하나의 모세포)가 양쪽으로 쭉 벌어지면서 두 개의 덩어리 (두 개의 딸세포)가 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동영상 바로가기]

동영상의 3분30초쯤부터는 세포(회색)가 분열할 때 세포 내 소기관인 골지체(초록색)과 소포체(진분홍)와 미토콘드리아(파랑)의 분포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도 볼 수 있다. 소포체에서는 RNA로부터 단백질이 만들어진 뒤, 골지체를 비롯한 세포 여러 부위로 보내진다. 골지체에서는 주로 분비되는 단백질이 가공된 뒤 필요한 곳으로 보내진다.

한편 미토콘드리아는 생명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발전소 역할을 한다. 생명이 자라고 유지되려면 물이 아래로 내려오는 것처럼 저절로 되는 활동뿐만 아니라, 물을 위로 퍼올리는 것처럼 에너지가 필요한 활동이 있다. 이런 활동을 할 때 마치 돈처럼 사용되는 물질이 ATP인데, 미토콘드리아는 ATP 합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위 영상은 얼룩말 물고기(zebra fish)라는 물고기의 배아에서, 나중에 물고기의 뇌가 될 선구 세포들이 분열하는 장면을 44초 간격으로 200회 촬영한 것이다. 교과서의 그림이나 상상 속에서만 있던 골지체, 소포체, 미토콘드리아가 실제로 분열하는 장면을 보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그것도 세포 몇 개를 떼어낸 뒤에 현미경 아래에 놓고 보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 안에서 일어나는 생명 현상을!

심장이 두근거렸다. 내가 이럴 정도인데 이 연구를 직접 진행한 연구자라면 어땠겠는가. 심지어 보스보다 먼저, 세계 최초로, 살아 있는 세포 안에서 면역 세포가 다른 물질을 먹는 장면을 보았을 때는 피부의 털이 서는 느낌이었다고 한다(아래 영상).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자신들이 만든 컴퓨터에서 처음으로 'Hello, World!'를 출력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아니었을까.

[동영상 바로가기]

◆살아 있는 생명체 내부의 생명 현상을 촬영하는 기술

위 영상은 격자 시트광 현미경(lattice light sheet microscopy)이라는 기술과 적응광학(adaptive optics)이라는 기술을 결합해서 만든 것이다. 시료에서 반사되는 빛 에너지를 검출하려면 시료에 빛을 쏘여 주어야 하는데 이러면 빛이 너무 강해서 시료가 손상되곤 한다. 격자 시트광 현미경은 시료 전체에 강한 빛을 한 번에 쏘아주는 것이 아니라 얇은 단면에 약한 빛을 여러 번 쏘아서 시료의 한 끝에서 다른 끝을 순차적으로 쏘는 방식이어서 빛에 의한 시료의 손상을 줄일 수 있는 기술이다. 또 이전 기술에 비해 훨씬 더 짧은 간격으로(초당 300프레임까지) 촬영할 수 있다.

적응광학은 천문대에서 별을 관측할 때 쓰이는 기술이다. 별에서 오는 빛이 대기를 통과하면서 생기는 광학적인 왜곡을 줄여서 별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게 한다. 격자 시트광 현미경을 사용하면 생체 조직들 때문에 빛이 왜곡되어서 표면에서 멀리 떨어진, 깊은 부분을 볼 수가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격자 시트광 현미경 기술과 적응광학 기술을 결합하면서 생명체 내부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현상도 볼 수 있게 되었다.

◆과학과 보도 사진

AP통신의 사진 기자 닉 우트는 네이팜탄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며 도망치는 소녀의 사진을 찍었다. '네이팜탄 소녀 사진'이라고 알려진 이 사진은 많은 사람에게 베트남전의 참상을 전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닉 우트는 이 상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논란거리가 되는 사회 주제에서는 늘 그렇듯, 사진을 보기 전까지 사람들은 베트남 전쟁에 대한 의견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자신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분명히 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진을 본 뒤에야, 무언가가 자신의 상상과는 달랐음을 깨달았고, 말이든 생각이든 행동이든 조금쯤은 변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과학과 기술이 보여주는 세계도 마치 보도 사진이나 문화 예술 작품과 비슷한 작용을 하는 것 같다. 갈릴레오의 망원경으로 처음으로 울퉁불퉁한 달의 표면을 보았을 때, 세상에 대한 서양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기 시작했고, 현미경으로 미생물을 보고 이해하면서 질병에 대한 생각이 변하기 시작했고, 우주에서 촬영한 한 장의 지구 사진이 환경 운동을 가속했고, 저 멀리 우주에 대한 관측이 우주의 탄생과 역사에 대한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으니까.

뇌와 마음을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이 '나쁘다'고 여겨지는 불편한 감정을 줄이고 나쁜 품성을 억제하는 방법, '좋다'고 여겨지는 지능을 개선하는 방법을 궁금해한다. 네이팜탄 소녀 사진을 보기 전에 베트남전에 대해 이야기하던 사람들과 비슷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번쯤은 보고 싶다. 날카로운 선을 가진 보도 사진처럼, 뇌 속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좋다거나 나쁘다는 가치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 그 모습을 본 뒤에 우리는, 마음에 대해 어떤 말을 하게 될까.

출처

http://blogs.nature.com/naturejobs/2018/05/07/lattice-light-sheet-microscopy-gets-an-ao-upgrade/

http://science.sciencemag.org/content/360/6386/eaaq1392.full

<= 이 논문은 누구나 무료로 접속해서 볼 수 있으니 관심이 있는 분들은 찾아가서 보시기 바란다. 다른 동영상들이 더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Adaptive_optics

[송민령 작가(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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