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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유사시 대비? 노무현 때는 왜 가만히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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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세월호 사찰과 계엄령 검토 문건으로

기무사 개혁 이끌어낸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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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을 “누나”라고 부르는 사람은 세상에 몇 되지 않는다. 군인 이재수씨는 그 자격을 10대 때 얻었다. 박지만씨와 서울 중앙고등학교 동기동창이다. 37기로 나란히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고 인연은 이어졌다. 이씨는 2013년 10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누나’와 독대할 수 있는 국군기무사령관으로 지냈다. 그가 만든 ‘세월호 태스크포스(TF)’에 군 안팎의 평가는 갈린다. 군 외부에서는 경악하지만, 내부에서는 그 시절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씨의 뒤를 이은 기무사령관 조현천씨도 이씨 못지않은 서사가 있다. 조씨는 다름 아닌 ‘알자회’(육사 34~44기 기수별로 10명씩 ‘알고 지내자’고 모인 사조직이지만, 실제는 ‘알짜’ 보직을 주고받아 알자회다) 출신이다. 알자회는 김영삼 정부 시절 하나회와 함께 숙청됐다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되살아났다. 부활은 알자회를 더욱 끈끈하게 만들었다. 최순실씨의 국가정보원 인맥으로 알려진 추명호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도 알자회 일원이다. 추 전 국장의 추천으로 조씨가 기무사령관에 발탁됐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는 최순실씨가 국정원과 군을 실질적으로 장악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씨가 계엄령 문건을 검토한 것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재판을 앞두고서다. 청와대는 탄핵재판 직전까지 기각을 믿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이 꿈꿨던 대로 탄핵이 기각됐다면 우리는 지금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씨와 조씨는 그들이 남긴 ‘세월호 사찰 문건’과 ‘계엄령 검토 문건’ 등을 이유로 단박에 수사 대상에 올랐다. 문재인 대통령, 즉 군 통수권자가 직접 기무사 개혁의 최전선에 섰다. 선봉에 선 그가 에두르지 않고 핵심을 파고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개혁 작업이 지지부진하자 육사 출신 중심으로 대오를 정비했던 군 기득권 세력은 일거에 주저앉은 분위기다.

기무사에 남은 박근혜의 그림자

반민주적, 시대착오적 ‘세월호 사찰 문건’과 ‘계엄령 검토 문건’을 작성한 기무사는 군 기득권의 상징이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두 문건을 세상에 알려 그 상징을 정밀 타격했다. <한겨레21>이 7월9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이 의원을 만났다.

“군 쪽에서는 ‘국정원 위에 기무사’라는 말을 많이 해요. 정보위원회의 직접적 통제를 받는 국정원과 달리 기무사는 국방부 뒤로 숨어 통제되지 않은 채 정치적으로 훈련을 받아요. 국정원에서 댓글 작전을 펼친 ‘사이버 외곽팀’도 처음에 기무사가 기획한 거예요.”

사실상 정권의 호위무사를 자처했던 기무사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위기 국면마다 등장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직후는 댓글로, 박근혜 정부에서는 세월호 사건 사찰과 계엄령 검토 문건 작성으로 기민하게 움직였다.

“한국 정치는 군이 이렇게 만들어놨어요. 군이 쿠데타를 두 번이나 일으킨 것 아닙니까. 총칼을 들고 나와서 기무사 같은 군 정보기관을 앞세워 정권을 잡은 것 아닙니까.”

이 의원은 단호했다.

“정치 개입 디엔에이(DNA)가 있다고 봐요. 어떻게 개혁할 것이냐가 문제죠. 국정원 개혁을 과감하게 벤치마킹해야 합니다. 정치에 관여하는 조직을 아예 없애야 합니다.”

하지만 강도 높은 조직개편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게 군 내부의 시각이다. 댓글을 달고 세월호 사찰 문건을 작성하던 요원 1천여 명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들을 포함한 4200명은 단일한 대오였다.

수장 등의 내용을 담은 세월호 사찰 문건이 공개된 7월18일 기무사에 근무했던 한 군인에게 “알면서도 가만있었던 게 쪽팔리지 않느냐. 어떻게 그걸 감추고 살았냐”고 물었다. 뼛속까지 기무사 요원이던 그의 반응은 평소와 달랐다. “너도 직장생활을 하지 않느냐”고 되받았다. 이 의원은 세월호를 사찰한 티에프 요원 60명을 “국가적 재난을 지원한다며 모집한 최정예 요원”이라고 했다. 계엄령 검토 문건 작성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원래 군인들이 저항했어야 하는 게 맞죠. 왜 우리가 하느냐고.”

군인 신분으로 세월호 가족들의 통곡을 성실히 기록해 동향 보고를 하면서도 감히 누구도 반기를 들지 못했다. 2014년은 국방부 사이버사령부 댓글조작 사건 등으로 군의 정치 관여 금지 여론이 비등했지만 그건 다른 부대 얘기였을 뿐이다. 겨우 “이건 아닌데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는 정도다.

기무사엔 정치 개입 DNA가 있다

여당 간사인 이 의원에 의해 문건이 공개되기까지는 3년이 걸렸다. 세월호 티에프는 동향 보고만 한 게 아니다. 정권 보위를 위해 지지율 관리에도 나섰다. “대통령 지지율 하락을 막기 위해 대국민 담화시 감성적인 모습 시현”이 필요하다는 건의도 올렸다. 군 간첩을 잡으라고, 행여 모를 보안사고 막으라고 모아놓은 군인들이 대통령만 바라보고 있었다. 실제 문건 제출 닷새 만인 2014년 5월19일 박 전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눈물을 흘리며 세월호 희생자들의 이름을 불렀다.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섰지만 물밑 저항도 만만치 않다. 집회 참가자의 염원에 탄핵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아는 상황에서 탄핵 기각 뒤 촛불집회의 대규모 군중이 어떻게 변화할지 누군가 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현재 자유한국당과 일부 보수 진영에서 주장하는 논리다.

“진짜 의문이 있습니까? 진짜 의문이에요? 아니죠? 평화로운 집회가 몇 달째 전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이어지지 않았나요? ‘명박산성’을 쌓아서 막는 경찰력이 있는데 군이 왜 나옵니까? 전방에 있는 탱크를 빼서 평화집회를 막자는 것은 군이 안보 위기를 자초하는 것 아닙니까? 이건 위기를 해소하려는 게 아니라 조장하려는 것 아닙니까?”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시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을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라고 생각하는 것은 유신의 잔재예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에게 정치를 배울 때 위수령, 계엄령은 일상이었을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그랬고 최순실씨도 그 시절 사람이죠. 김기춘씨도 마찬가지고. 군이 유사시를 대비해야 한다는 게 전가의 보도처럼 얘기되는 시절은 지나가야 합니다.”

탄핵 국면은 박 전 대통령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자꾸 유사시라고 하는데, 그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 탄핵 국면이 있었는데 당시 군이 계엄 계획을 짰느냐고 군에 묻기도 했어요. 어디에도 그런 흔적은 없어요. 게다가 노 전 대통령은 억울하게 그런 상황에 몰린 것 아닙니까? 그때 만약 군을 움직일 계획을 짰다면 지금 보수 진영에선 뭐라고 할 겁니까? 이건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군이 본분을 잊고 그냥 나쁜 짓을 한 겁니다. 단호한 입장을 가져야 합니다.”

양심의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볼멘소리는 여기저기서 나온다. 기무사의 한 현직 간부는 “문건 작성이 법령에 근거한 것이라고 누구도 말하지 못하는 기무사 지휘부가 더 한심해 보인다. 법령에 정해진 대(정부)전복 기능에 따라 문건을 만들었다는 것을 모르는 기무사 요원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 간부가 말한 대정부전복(저지) 기능은 기무사가 존재하는 근간이었다. 이를 명분으로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정보를 수집해 12·12 사태를 일으키고 정권을 찬탈했다. 이 기능은 1977년 기무사의 전신인 보안사령부가 생긴 이래 군을 감시하고 민간을 사찰하는 명분을 줬다.

사이버사, 레드펜, 기무사까지 ‘3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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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원이 기여한 것은 기무사 문건 공개만이 아니다. 이 의원은 2013년 당시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 사건의 의혹을 사실로 확정한 문건을 폭로했다.

“사이버사 댓글 공작은 지난 정부 때 논란이 됐습니다. 국회에 들어오고 국방위원이 된 뒤 책임자 문책 없이 개인 일탈로 덮고 넘어간 부분을 추궁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여당 간사라는) 권한이 주어지니 더 수월해졌죠. 보좌진이 많이 고생했어요. 그 과정에서 사이버사를 포함해 국방부 조직 전체가 움직였다는 사실이 조금씩 드러났어요. 결정적인 것은 당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서명한 문건이었죠. 멈추지 않고 계속 팠어요. 이번에는 예상치 못했던 더 큰 집이 드러났습니다. 그게 기무사였고요.”

사이버사에서 시작해 기무사를 발견했고 결국 ‘계엄령 검토’와 ‘세월호 사찰’이라는 대어를 낚았다. 어느덧 잊힌 온라인 블랙리스트 ‘블랙펜(레드펜)’과 경찰 댓글도 이 의원이 <한겨레21>과 함께 작업한 것이다.

“사이버사에서 기무사로 넘어갔다가 이번에는 경찰이 협업한 게 나오더라고요. 경찰 쪽에 곧바로 문의했고, 경찰 스스로 뭔가를 발견했는데 그게 경찰이 기무사·사이버사와 공조해 댓글을 달았다는 겁니다. 감당이 안 되니 경찰은 끙끙 앓고 있었고요.”

결국 온라인 블랙리스트(제1199호 ‘경찰, 군 댓글 작전 관여했나’ 등)와 경찰 댓글(<한겨레> 3월12일치 1면 ‘국정원·군 이어 경찰도… 2011~12년 댓글 공작 드러나’ 등)로 확인되면서 국정원-군-경찰로 이어지는 ‘온라인 여론조작 삼각동맹’이 완성되기도 했다. 이들이 경쟁하듯 지난 정부에서 충성 경쟁을 한 이유가 뭘까.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작전을 편 거죠. 여론 동향을 통계 내서 보고하다가 통수권자의 인정을 받자 7 대 3 여론을 3 대 7로 바꾸는 댓글 공작을 해서 이를 성과라고 다시 보고하고, 이것을 본 위에서는 포상하고 격려하고 이러다 경쟁이 붙고….”

대한민국이 한 재벌그룹 내의 각 사업 부문처럼 경쟁하고 그 안에서 인센티브를 받는 기형적인 구조였던 셈이다.

“21세기 대명천지에 대한민국 민주정부가 이 정도까지 망가졌는지 기가 차더라고요.”

대한민국이 재벌인가

남은 것은 기무사를 시작으로 하는 군 개혁이다. 방법론을 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해체하고 싶죠. 어쨌든 분단국가라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본업을 잘하려면 구조개혁도 하고 인력 감축도 하고, 법령도 정비해야 하겠죠.”

구체적인 방법론보다 그가 강조한 것은 따로 있다. “‘세상이 바뀔 수 있다, 권력이 돌고 돈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만들어서 군 스스로 ‘나쁜 짓’을 할 엄두가 안 나도록 만드는 것이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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