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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사태 전말-오너 욕심·무능이 빚은 참사…‘갑질’로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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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지난 7월 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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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과 승객들께 큰 실망을 드려 죄송하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기내식 서비스에 차질이 생겨 고객 여러분께 불편을 끼쳐 드린 점 깊이 사과드린다.” (김수천 아시아나항공 사장)

아시아나항공이 기내식 파동으로 시끌시끌하다. 기내식 생산 차질로 기내식 없이 비행기가 출발하는 ‘노밀(no meal)’ 사태가 벌어지는가 하면 기내식 서비스를 공급하던 하도급 업체 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는 모습이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직접 기자회견을 하면서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아시아나항공 기내식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지난 7월 2일 오전 9시 인천공항을 출발해 일본 나리타로 갈 예정이었던 아시아나항공 OZ102편은 승객이 먹을 식사가 제때 실리지 않아 출발이 1시간40분 늦어졌다. 이날 저녁에도 일본 삿포로, 중국 시안, 태국 푸껫 등으로 향하는 아시아나 항공기 18편이 기내식을 포기한 채 ‘노밀’ 운항을 했다. 전날에도 아시아나항공 국제선 80편 중 51편이 기내식 때문에 지연 출발했고 중국 다롄행 등 36편은 아예 기내식을 싣지 못한 채 목적지로 향했다.

심지어 아시아나항공에 기내식 서비스를 공급하던 하도급 업체 대표는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7월 2일 오전 9시 30분경 기내식 납품업체 화인CS 대표 A씨가 인천 서구 한 아파트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화인CS는 아시아나항공에 기내식을 공급하는 샤프도앤코코리아의 재하도급 업체. 기내식을 용기에 담는 일을 하는 곳이다. A씨는 숨지기 전 주변 사람들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내식 납품에 차질이 생기면 납품 단가를 낮추거나 손해배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불공정한 하청, 재하청 계약이 맺어졌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한다.

매경이코노미

▶하청업체 대표 자살로 시끌

납품업체 대표 자살까지 부른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사태의 전말은 뭘까. 직접적인 원인은 아시아나항공과 기내식 공급 계약을 맺은 샤프도앤코코리아가 제때 음식을 배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배경은 이렇다. 아시아나항공은 IMF 외환위기 이후 자금 사정이 어려워지자 자체 운영하던 기내식 사업을 떼어내기로 했다. 기내식 사업 지분 20%만 남기고 나머지를 독일 루프트한자 계열사인 LSG스카이셰프에 넘겼다. 2003년부터 LSG스카이셰프코리아와 5년 계약을 맺었고 이후 계약을 연장해 납품 관계를 이어갔다.

2016년 들어 아시아나항공은 계약 기간을 연장하지 않기로 하고 새 업체를 물색했다. 그해 말 중국 하이난항공그룹 계열인 게이트고메스위스와 합작해 ‘게이트고메코리아’라는 법인을 세웠다. 올 7월부터 30년간 이 회사로부터 기내식을 공급받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지난 3월 게이트고메코리아가 신축한 공장에 불이 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화재로 공장 가동 시기가 7월에서 10월로 늦춰졌다. 공급 일정이 삐걱대자 아시아나항공은 부랴부랴 중소업체 샤프도앤코코리아와 3개월짜리 단기 공급계약을 맺었다.

문제는 샤프도앤코코리아가 영세업체라 대형사인 아시아나항공 물량을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점. 주로 외국 항공사에 하루 3000인분 기내식을 공급해왔는데 아시아나항공이 요구한 물량은 무려 2만5000인분에 달했다. 기내식을 운반·탑재하는 과정에는 특수 수송 차량과 장비, 숙련된 인력이 필요한데 수만 명 규모 기내식을 납품한 경험이 없는 이 업체로서는 도저히 시기를 맞추기 어려웠다. 납품업체 대표가 압박을 견디지 못해 목숨을 끊은 것도 이 때문이라는 관측이 많다. 항공업계에서는 “새 공급업체의 조달 능력을 검증했어야 하는데 전혀 검증이 없었다. 기내식 대란이 뻔한 상황이었다”고 수군댈 정도다. 이에 대해 아시아나항공은 “생산설비나 공급 능력에는 문제가 없었고 업무 미숙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은 샤프도앤코와 계약을 맺기 전 대한항공 등에 도움을 요청했다. 샤프도앤코 생산 능력이 미흡하다는 점을 익히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아시아나항공이 기내식 공급업체를 바꾸는 과정과 관련한 뒷말도 무성하다.

기존 공급업체인 LSG스카이셰프코리아는 전체 매출의 70%가량이 아시아나항공에서 나왔는데 계약 해지로 어려움을 겪게 됐다. 계약 연장이 불발되자 LSG는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했다. “아시아나항공이 계약 연장 조건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 지주사 금호홀딩스(현 금호고속)에 투자할 것을 요구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자 계약을 끝냈다”는 주장이다.

공교롭게도 아시아나항공과 새로 계약을 맺은 게이트고메코리아의 모기업 하이난항공그룹은 지난 3월 금호홀딩스가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1600억원에 취득했다. 박삼구 회장은 현재 금호홀딩스 주식 28.1%를 소유한 대주주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중국 투자 유치를 위해 알짜 사업으로 꼽히는 기내식 업체를 바꾼 것 아니냐”며 수군댄다. 경영진의 무리한 자금 조달 시도가 결과적으로 기내식 대란을 불러왔다는 분석이다.

“박삼구 회장의 경영권 확보를 도와준 중국 업체에 혜택을 주려고 무리하게 기내식 공급업체를 바꾼 게 화근이 된 것 같다. 지금까지는 5년마다 계약을 갱신했는데 게이트고메코리아에 무려 30년간 기내식 공급 권리를 준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기내식 업체 교체 과정에서 각종 변수에 대비하지 않았던 점도 문제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 귀띔이다.

논란이 커지자 박삼구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각종 의혹을 반박하고 나섰다. 박 회장은 “LSG 지분을 20%밖에 갖지 못해 경영에 참여할 수 없었다. LSG는 공개하기로 했던 원가를 수차례 요청해도 공개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계약 만료 시점에 원가 공개를 해주고 합작 지분을 높일 수 있게 된 게이트고메코리아와 계약을 맺게 됐다. 유리한 파트너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건 비즈니스에서 당연한 일”이라고 반박했다. 어디까지나 전략적 제휴, 협력을 위한 투자 유치였다는 의미다.

기내식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면서 아시아나항공 대외 이미지 악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겨우 회복세를 보이던 실적에도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매출 6조2321억원, 영업이익 2736억원을 올렸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2011년 이후 6년 만에 최대 실적으로 한숨을 돌린 분위기다. 유동성 확보를 위한 비핵심 자산 매각에도 속도를 내는 중이다. 서울 광화문 사옥을 매각하는가 하면 보유하던 CJ대한통운 주식을 모두 팔았다. 재무구조 개선을 통해 ‘2020년 신용등급을 투자안정등급인 A등급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까지 세웠다.

그럼에도 아직 갈 길은 멀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의 총 차입금은 4조원가량으로 이 중 절반인 2조원의 만기가 연내 도래할 예정이다. 중국 사드 보복 여파로 중국인 여행객이 급감하면서 중국 노선 수요 회복도 쉽지 않은 모습이다. 이런 비상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기내식 사태까지 불거지며 아시아나항공은 당분간 더욱 심화된 경영난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 사태로 내심 반사이익을 기대했는데 오히려 ‘제 발등을 찍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시아나항공 노동조합이 경영진 규탄 촛불집회를 열기로 하는 등 모양새가 대한항공 사태를 닮아가는 분위기다.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은 최근 ‘침묵하지 말자’는 이름의 SNS 채팅방을 열고 ‘박삼구 회장 갑질·비리 폭로’ 집회를 예고했다. 기내식 대란으로 촉발된 이번 사태가 총수에 대한 폭로 양상으로 확산할 조짐이다. 공정거래위원회도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 간 부당 지원 의혹을 조사하기로 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로 아시아나항공 대외 신뢰가 추락한 데다 내부 직원 반발까지 커지면서 대한항공의 ‘물컵 갑질’ 못지않은 사회적 이슈가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66호 (2018.07.11~07.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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