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한복 느낌 담아낸 옷, 뉴요커도 즐겨 입어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형 김인태 씨(왼쪽)와 동생 인규 씨. [한주형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의 스타 힙합 뮤지션 켄드릭 러마가 한옥 창문 무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공연하는 모습을 기대합니다."

남성 캐주얼 브랜드 '이세(IISE)'를 이끌고 있는 김인태(33)·인규(31)씨 형제는 한국 전통 디자인과 '늦깎이 사랑'에 빠져 있다. 미국 뉴저지에서 나고 자란 형제는 20대 후반에 처음 접한 한국의 궁궐, 한옥, 그리고 문화에 매료돼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의류를 만들고 있다. 그 독특함을 인정받아 이달 초 신진 디자이너 육성 프로그램인 '삼성패션디자인펀드(sfdf)' 1위 수상자로 선정됐다. 지난 12일 평창동의 '힙한 느낌' 가득한 쇼룸에서 형제를 만났다.

형 인태 씨는 "어머니가 세라믹 도자기, 가구 등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 직접 제작하고 수집도 하셨다"며 "이런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부친 역시 패션산업에 몸담고 있었지만 형제는 정작 패션이나 디자인과 관련된 일을 해본 적이 없다. 평범한 초·중·고교를 졸업한 뒤 인태 씨는 뉴욕주립대에서 영문학을, 동생 인규 씨는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재정학을 전공했다. 인규 씨는 "부모님은 패션디자인 일은 매우 어려운 분야라고 말씀하셨다"며 "늘 우리에게 그 일만은 직업으로 삼지 말라고 하셨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형제는 숨겨진 끼를 억누를 수 없었다. 대학 재학 시절 온라인으로 의류와 신발을 판매한 것. 그들이 직접 구입하고 수집해 온 '스니커 컬렉션'과 미국에선 구할 수 없는 하이엔드(high-end) 청바지를 프랑스나 일본에서 들여와 팔기 시작했다. 인태 씨는 "귀하게 간직했던 물건들을 파는 건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 경험이 지금 사업을 하는 데 굉장히 큰 자산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것은 '운명'과 같았다. 대학 졸업 후 잠시 중국에서 머물렀던 형제는 여행차 한국을 종종 들렀는데 이때 한국 전통의상과 궁궐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긴 것. 인규 씨는 "한국에서 접한 모든 것이 흥미롭고 신선하게 다가왔다"며 "서울은 물론 전북 익산, 전남 나주, 제주도 등을 여행하며 한국 전통의 미를 찾아다녔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감, 숯, 쪽 등을 이용한 천연염색을 보며 디자인 영감을 많이 얻는다"고 덧붙였다.

그 길로 형제는 2013년 '이세'라는 브랜드로 가방을 만들어 판매했고 2015년 6월 법인을 만들어 남성 캐주얼을 론칭했다. 이세는 '이전 세대에게 받은 영감으로 우리 세대가 다시 만든다'는 뜻으로 디자인을 전담하고 있는 인규 씨가 지었다.

초기엔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벤처투자사를 찾아다녔다. 수차례 미팅과 끈질긴 프레젠테이션 끝에 한 벤처캐피털에서 투자금을 받는 데 성공했다. 인태 씨는 "당시 우리 매출 중 80% 이상이 해외에서 나오고 있었다"며 "국내 시장을 발판 삼는 다른 디자이너들과 확실한 차별화를 이룬 게 효과를 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금도 이세 매출 대부분을 해외 시장에서 올리고 있다. 마케팅과 세일즈를 담당하는 인태 씨가 발로 뛰며 뉴욕, LA, 워싱턴DC, 도쿄, 베트남 편집숍 등에 판로를 개척했다. 그는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하다 보니 아무래도 서양인이 많은 관심을 보인다"면서 "뉴욕커들이 한복 스타일을 적용한 셔츠에 청바지를 맞춰 입는 걸 보면 뿌듯함을 느낀다"며 웃어 보였다.

형제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브랜드는 일본 '비즈빔(Vis Vim)'이다. 일본 전통 무늬들을 모티브로 의류와 생활용품 등을 만들고 있는데 글로벌 패션 디자인 업계에서도 영향력이 꽤 크다. 인태 씨는 "궁극적으로는 이세를 의류를 넘어 가구, 주방용품, 문구류 등을 포함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확장하고 싶다"며 "분야는 넓히되 대량생산을 목표로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모든 제품에 한국 전통의 미가 묻어나게 해 초기 콘셉트를 절대 잃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눈앞의 과제는 내년 3월 열리는 서울패션위크. sfdf 1위를 차지하며 출품 자격을 얻게 됐다. "당연히 한국의 전통을 주제로 삼을 겁니다. 지금 아이디어를 알려드릴 순 없지만 내년 봄 또 한번 디자인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기는 형제가 되겠습니다."

[심상대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