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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압도적인 피지컬과 탄탄한 벨팅, 차세대 디바 예약한 손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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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 오브 락-64] 앞서 하현우를 다룬 편에서 2011년 진행됐던 '톱밴드 시즌1' 프로그램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슈퍼스타K'를 비롯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록큰롤' 버전이었던 이 프로그램은 당시만 해도 무명밴드에 가까웠던 국카스텐이 '거울'이란 곡으로 축하무대를 펼쳤었다. 게이트 플라워즈, 톡식, POE를 비롯한 창의적이고 독특한 밴드가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뽐냈다. 심야시간에 방영되었던 편성의 불리함과 록밴드에 한정된 장르 특성상 엄청나게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록팬 입장에서는 가뭄의 단비와 같은 코너로 기억될 만하다.

매일경제

/사진=mbc '복면가왕' 캡처


당시 기대를 모았던, 쉽게 얘기해 치열한 예선을 뚫고 올라와 공중파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팀 중에 'WMA'라는 학생밴드가 있었다. 이 팀은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보컬을 영입해 무대 전면에 세웠는데, 당시만 해도 앳된 학생이었던 이 여자보컬은 이제 록음악계를 넘어 가요계 전반을 전율시키는 무시무시한 존재로 거듭났다. 얼떨결에 '톱밴드 시즌1'에 합류한 지 불과 7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이 보컬의 이름은 손승연. 최근 복면가왕에서 장기집권에 성공해 한껏 유명세를 떨친 바로 그 인물이다.

손승연은 유독 오디션 프로그램과 인연이 깊었다. 그는 '톱밴드 시즌1' 종료 이후 곧바로 팀을 탈퇴해 솔로로 전향했다. 톱밴드 당시만 하더라도 장래가 촉망되는 잠재력 풍부한 보컬에 머물렀던 그는 '보이스 코리아'를 통해 만개한 기량을 뽐낸다. 2012년 방영된 '보이스 코리아'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한다(그런데 보이스 코리아에 참가하기 전 위대한 탄생, 슈퍼스타K 등 프로그램에서는 예선 탈락을 하는 아픔을 겪었다고 하니, 한국에 노래 잘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은 것인지 아니면 그 당시 손승연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것인지 의문스러울 뿐이다).

이후 손승연은 활발한 음원 활동을 하며 불후의 명곡을 비롯한 경연 프로그램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그러다가 2018년 복면가왕에서 8회 연속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우며 본인의 이름을 가요계 판에 확실히 아로새겼다. 사실 손승연을 '록보컬'이란 범주에 가두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지만, 그가 처음 자신의 이름을 알린 무대가 '록밴드 경연장'이었기에, 그리고 그의 창법과 발성 자체가 록과 매우 친숙하기에 그를 '광의의 록보컬' 중 하나로 소개하는 것은 크게 이치에 어긋나는 것 같지는 않다.

손승연 하면 떠오르는 것은 노래 부를 때 입이 엄청나게 크게 벌어진다는 점과, 중저음부터 차곡차곡 쌓아올린 에너지를 고음에서도 안정되게 유지할 수 있는 역량이라 할 것이다. 무시무시한 벨팅 창법으로 고음역을 소화하는 그는 목소리 자체가 '단판 승부'를 겨뤄야 하는 경연 무대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 폐가 몇 개인지 의심스러운 호흡을 기반으로 풀톤(full tone)으로 고음까지 밀어붙여 관객 혼을 빼놓는다.

이는 그가 노래하기에 딱 맞는 완벽한 피지컬을 타고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래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가수가 들려주는 스토리에 청자를 매혹시키는 것이다. 사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데는 엄청나게 많은 길이 있다. 단 하나의 길만 맞는 길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청자를 매혹시키기 위해 반드시 피지컬이 무시무시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축구스타 필리포 인차기(Filippo Inzaghi)는 깡마른 몸과 '축구선수가 맞느냐'는 의심이 들 정도로 별 볼 일 없는 테크닉을 지녔지만 세계 3대 무대 중 하나인 '세리에 A'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엄청난 성과를 냈다. 축구 천재가 득실거리는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다수의 월드컵 경기를 뛰었다. 그는 '오프사이드 선에서 태어났다'는 별명처럼 순간적인 판단으로 교묘하게 오프사이드 라인을 돌파해 골키퍼와 일대일 찬스를 만드는 식으로 본인만의 득점 루트를 개발해냈다. 주력이 빠르지 않았고 몸싸움이 뛰어나지 않았으며 드리블이 톱클래스이지도 않았지만 그만의 장기 하나를 살려 최고의 선수 반열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같은 값이라면 피지컬이 뛰어나서 손해 볼 것은 없을 것이다. 이탈리아 축구대표를 지낸 크리스티안 비에리(Christian Vieri)는 엄청난 피지컬로 축구계를 평정했던 케이스다. 황소 같은 몸으로 몸싸움을 즐겨하며 페널티 박스 안에서 골대를 찢어버릴 만한 슈팅을 날렸다. 그 역시 프리메라리가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당대를 풍미한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날렸다. 최고의 무대인 월드컵에서 9경기 9골을 기록할 정도였다(그중 한 골이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한국을 상대로 넣은 헤딩골이다. 이 당시 경기를 본 사람들은 전방에서 복싱 선수를 방불케 하는 건장한 떡대가 한국 수비수와 몸싸움을 하던 광경을 기억할 것이다. 그가 비에리다).

거의 동시대에 활동한 인차기와 비에리는 전혀 다른 성향의 선수였지만 국가대표 무대 기준 인차기가 57경기 25골, 비에리는 49경기 23골을 넣을 정도로 우열을 가리기 힘든 경쟁을 펼쳤다. 손승연을 굳이 분류하자면 비에리와 같은 선수라 할 수 있다. 그는 강력한 소리를 낼 수 있게 신이 선물한 몸을 타고 났다. 얼굴을 울려 소리를 낼 수 있게 도드라진 광대뼈, 그리고 풀톤으로 벨팅을 질러댈 때 진동판 노릇을 할 수 있는 튼튼한 몸, 축적된 에너지가 손실 없이 바깥으로 퍼져나갈 수 있게 턱이 벌어지는 각도도 엄청나다.

손승연의 노래를 들어보면 알 수 있지만, 그의 목소리는 중저음대나 고음대나 톤이 크게 변하지 않고 일정하다. 파워풀한 흉성이 고음역에서도 터져나올 수 있게 벨팅으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고음역에서 성대 끝만 살짝 접촉시키는 가성과 비슷한 두성으로 음을 훑고 내려오는 스타일과는 전혀 다르다. 벨팅의 특성인 말하는 톤으로 노래하기를 고음역까지 이어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벨팅이라는 창법은 뮤지컬 배우들이 선호하는 창법인데, 이는 마이크가 발달되지 않은 시절 악기 소리를 뚫고 목소리를 멀리 앉아 있는 관객에게까지 보낼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몸 전체를 울림통으로 쓰면서 에너지를 폭발시켜 고음까지 끌고가야 하는 까닭에 힘이 달리면 좋은 벨팅 소리를 내기 힘든 제약이 분명 있다. 벨팅을 밀어붙이면 성대가 너덜너덜해지는 식으로 숙련되는데, 타고난 성대가 튼튼하지 않거나 성대를 혹사시키는 잘못된 방향으로 벨팅에 접근하면 성대결절의 위험이 올라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손승연은 몸 전체를 강력한 벨팅 소리를 증폭시키는 울림통으로 활용하면서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한다. 따라서 손승연의 고음은 매우 높은 성대 접촉을 기반으로 꽉찬 풀톤 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거듭된 고음에 타고난 손승연의 성대에도 어느 정도 과부하가 걸렸다고 한다. 이는 복면가왕 연승을 끝내고 그가 한 인터뷰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는 몇 년 전부터 성대에 폴립이 생겨 고생하고 있다고 했다. 성대에 무리가 갔지만 스케줄을 강행해 왔다며, 성대에 직접 항생제를 투여하는 시술을 받는다고도 했다.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음역대 제한도 느꼈다고 하니, 손승연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운 순간을 겪은 셈이다.

하지만 그는 성대를 치료하는 과정을 겪으면서도 복면가왕에서 성대가 아픈 걸 거의 들키지 않고 역량을 과시하는 놀라운 순간을 선사했다. 성대가 이대로만 버텨준다면 그리고 노래를 바라보는 손승연의 자세가 변하지 않는다면 보컬 손승연의 앞날 역시 매우 탄탄할 것으로 예측된다(성대폴립은 손승연이 잘못된 발성을 냈거나, 컨디션 조절에 실패해서가 아니다. 아무리 강철 성대를 타고났더라도 성대를 꽉 붙여 풀톤의 소리를 내는 발성 특성상 어느 정도 성대에 부하가 걸리지 않을 수는 없다. 이건 마치 코트 좌우를 누벼가며 공을 넘기는 테니스 선수에게 뛰지 말고 공을 치라든가, 현란한 드리블로 수비를 제치고 골밑 돌파를 시도하는 가드를 상대로 무릎 부상이 염려되니 점프하지 말고 슛을 하라는 것과 같다).

게다가 1993년생인 손승연은 이제 2018년 기준 한국 나이로 26세가 되었는데, 서른을 전후한 기점으로 감정 표현력 역시 극상의 레벨로 올라갈 거란 평가가 높다. 타고난 피지컬과 강력한 벨팅, 섬세한 감정 표현까지 곁들여지면 손승연은 한국이 자랑할 만한 디바급 보컬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손승연은 '첫눈이 온다구요' '그대라서' '널 위한 거야' 등 다양한 음원을 발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많은 대중들은 '경연의 끝판왕' 모습으로 손승연을 바라보는 게 사실이다. 이건 손승연 스스로가 넘어서야 할 한계다. 워낙 좋은 피지컬에 탁월한 발성을 가지고 있으니, 그의 퍼텐셜을 한번에 터트려 줄 명곡을 만나면 솔로가수로서의 손승연 입지가 더 탄탄해질 게 분명하다.

손승연이 부른 노래 중 듣는 사람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곡이 많다. 김범수가 부른 '보고싶다', 김경호의 '금지된 사랑', 김종서의 '플라스틱 신드롬' 등을 경연무대에서 소화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딱 하나만 추천하자면 그가 아직 아마추어였던 시절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부른 BMK의 '물들어'를 꼽고 싶다. 이제 막 스물이 넘은 그가 들려주는 놀라운 성대의 마법을 목격할 수 있다.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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