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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몸무게 302g·키 21㎝… 사랑이가 쏘아올린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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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삭둥이로 국내서 가장 작았던 아기… 169일만에 건강하게 퇴원

조선일보

이랬던 사랑이가… - 태어난 지 이틀 된 올 1월 26일, 사랑이가 서울아산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치료받고 있다.


'사랑이'가 엄마 배 속에 자리 잡은 지 24주 5일째. 임신중독증 진단이 나왔다. 의료진은 사랑이 부모에게 "수술하지 않으면 엄마와 아기 모두 위험하다"고 통보했다. 마흔두 살의 나이에 인공수정을 통해 어렵게 얻은 아기였다. 산모도 아기도 준비 안 된 출산이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사랑이 아빠 이충구(41)씨는 "제발 살려달라고 하늘에 기도드리는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사랑이는 지난 1월 25일 키 21.5㎝, 몸무게 302g으로 태어났다. 어른 손 한 뼘에도 못 미쳤다. 보통 신생아 몸무게(3~4㎏)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연약하기 그지없는 몸이었다. 수많은 미숙아를 봐온 주치의 정의석 교수(서울아산병원)는 "사랑이를 처음 마주했을 때 내 몸이 굳었다"고 했다. 이 병원에서 여태껏 300g 미만으로 태어난 아이가 살아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랑이는 이보다 고작 2g 많았다. 4개월 일찍 태어난 사랑이는 폐포가 완벽하게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너무 작은 몸이라 심폐보조기도 쓸 수 없었다. 출생 직후 소생술로 겨우 심장이 뛰었고, 기관지로 폐표면활성제를 투여받으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정 교수는 "포기하지 말라는 듯 팔다리를 끊임없이 바둥대는 사랑이를 당연히 살려야 했다"고 했다.

갑작스레 세상에 나온 '이른둥이'들은 장기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다. 먹지 않으면 살 수 없지만 먹으면 장이 썩어 잘라내야 한다. 이런 '괴사성 장염'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 모유 수유다. 사랑이 엄마 이인선(42)씨는 출산 당일부터 모유를 유축했다. 2~3cc씩 겨우 나오는 초유를 사랑이는 1cc씩 나눠 먹었다. 보통 아이들은 수유를 할 때마다 30㏄씩 먹는다. 엄마 품에 안길 수도, 젖을 빨 수도 없어 입에서 위까지 관을 연결했다. 사랑이는 장기가 온전히 제 역할을 할 때까지 단 한 차례의 수술도 없이 견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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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컸어요 - 사랑이는 태어난 지 169일 만인 지난 12일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다. 엄마 이인선(42)씨와 아빠 이충구(41)씨가 사랑이를 품에 안고 활짝 웃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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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도 있었다.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몸에 머금고 있던 양수가 빠지면서 체중이 295g까지 떨어졌다. 어른으로 치면 '탈수' 현상이다. 엄마 배 속과 똑같은 환경을 위해 인큐베이터 습도를 99%까지 높였다. 엄마·아빠는 하루 두 번 사랑이를 찾아왔지만 뿌옇게 김이 서린 인큐베이터만 잠시 들여다보다 발길을 돌려야 했다.

사랑이가 세상에 나온 지 두 달 무렵, 엄마는 처음으로 인큐베이터 안에 손가락을 넣었다. 사랑이 몸무게가 1㎏이 넘어 안정기에 접어들 때였다. 차마 손을 잡을 수 없어 의료용 장갑 너머로 발만 겨우 만졌다. 사랑이를 처음으로 품에 안은 건 그 이후로도 한 달여가 더 지나서였다. 사랑이가 태어난 지 100일째다. 의료진이 인큐베이터 아래 작은 플래카드를 걸고, 조촐한 백일잔치를 열어줬다. 엄마는 처음으로 사랑이를 가슴에 안고서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고 의료진은 전했다.

사랑이는 전 세계에서 26번째로 작게 태어났다. 국내에서는 가장 작은 아이로 기록됐다. 그러나 지난 12일, 태어난 지 169일 만에 건강하게 퇴원했다. 몸무게도 태어났을 때의 열 배인 3㎏까지 늘었다. 사랑이 부모는 "한순간도 희망을 놓은 적 없다. 중환자실 의료진 모두가 사랑이의 엄마·아빠가 되어 헌신적으로 보살펴준 덕분"이라고 했다.

[손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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