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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암행어사는 3D 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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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욱 교수, 어사 구강 일기 분석 "문전박대, 추위와 빈대로 개고생"

장거리 여행과 추위에 지친 암행어사가 간신히 관에서 제공한 숙소에 들어가려 하니 마룻대와 들보가 모두 허물어져 있었다. "할 수 없지… 건물이 무너져 압사하는 것도 운명이니 들어가자!" 반찬은 신 김치뿐이어서 목구멍을 넘기기 힘들었다. 밤에 자리에 눕자 뭔가 벽을 타고 내달려 이불을 뚫고 들어오더니 온몸을 깨물었고, 빈대 수십 마리가 내는 비린내는 코를 찔렀다. 어사는 "내가 태어난 이래로 고생이 이날 밤과 같은 경우는 없었다"고 한탄한다.

조선시대의 암행어사는 때론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3D' 업종이었음을 절절히 기록한 자료가 소개됐다. 1812년(순조 12년) 함경도 암행어사로 파견된 휴휴자 구강(具康·1757~1832)의 일기 '휴휴자자주행로편일기(休休子自註行路編日記)'다. 박동욱 한양대 교수(국문학)는 최근 발간된 한국고전번역원 학술지 '민족문화' 51집의 논문 '휴휴자 구강의 암행어사 일기'에서 성균관대 존경각에 소장된 이 일기를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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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가운데)가 신분을 숨긴 채 남루한 행색으로 마을 농민들 사이에 끼어 밥을 얻어먹는 모습. 신상옥 감독 영화 ‘성춘향’(1961)의 한 장면이다. /영화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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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세 나이에 다릿병까지 앓던 구강이 오지 암행어사로 174일 동안 5595리를 다니며 임무를 수행하기란 무척 힘든 일이었다. 경비 대부분을 직접 조달해야 했고, 신분 노출을 피하면서 의식주를 해결하다 보니 곳곳에서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다. 주인집 아내가 역병으로 신음하는 소리를 듣고 황급히 뛰쳐나오기도 하고, 구멍이 뚫려 바람조차 막을 수 없고 하늘의 별까지 보이는 집에서 묵기도 했다. 강도로 오해받는가 하면, 괄시를 참다못해 역졸을 시켜 인정머리 없는 집주인을 포박하는 일까지 있었다.

무책임한 공무원들의 모습도 보인다. 삼수에선 관아에 들어간 어사가 "하룻밤 묵을 수 있겠느냐"고 하자, 아전들은 "흉년이 들었어요" "방이 냉골인데…" "자물쇠를 채워 놓았수"라며 핑계를 대더니 하나둘씩 자리를 피했다. 어사는 험한 노정, 추위, 산짐승의 위험에 맞서 사투를 벌여야 했다. "얼굴이 검푸른 빛이 되고 살쩍에는 싸라기눈이 맺혔으며 수염에는 얼음이 매달렸고, 배가 굳고 입이 떡 벌어져 죽을 밖에는 다른 계책이 없었다."

하지만 암행어사 구강은 그렇듯 험난한 여정 속에서도 여유와 위트를 잊지 않는 인물이었다고 박 교수는 평가했다. 여자가 귀해 딸을 낳으면 서른 살이 가까워진 뒤에야 시집을 보냈고, 아들을 낳으면 3일 안에 찬물에 목욕을 시킨다는 등 당시 함경도의 풍속도 세세히 기록했다. 박 교수는 "구강의 일기는 암행어사의 경비 조달 방식, 각종 공문서와 치죄(治罪) 내용 역시 소상하게 기록해 조선시대 어사의 실제 공무 수행을 파악할 수 있게 하는 귀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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