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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공부 부담 완화정책 10년… ‘수포자’만 양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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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숙 대한수학회 회장 “선진국은 수학공부 강화하는 추세”

동아일보

수학동아 제공


“수학 공부의 부담을 줄여주는 정책이 시행된 지 10년이 지나면서 한국의 수학 학업성취도는 하락했고 학생들의 흥미도는 여전히 낮습니다. 사교육도 못 잡았습니다.”

이향숙 대한수학회 회장(이화여대 수학과 교수·사진)이 한국의 수학 교육 정책에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이 교수는 4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연구실에서 가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대로라면 수학계 노벨상인 ‘필즈상’은커녕 현재 세계 36위인 수학·과학 교육의 질을 2040년까지 15위로 끌어올린다는 ‘제4차 과학기술기본계획’ 달성은 계획에 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2007년부터 교육과정을 개정할 때마다 학생들의 학습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난도를 하향 조정하고 학습량을 줄여왔다. 중고교 수학 교과서의 첫 단원이었던 ‘집합’은 중학교에서 퇴출당했고, 많은 수의 계산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인 ‘행렬’도 고등학교에서 사라졌다. 교육부가 올해 내놓은 계획에 따르면 기하와 벡터가 추가로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자취를 감출 예정이다. 지난달에는 2022학년도 수능에서 문·이과를 통합해 수학 시험을 치르자는 방안도 교육부에서 나왔다.

이 교수는 “10년에 걸쳐 추진해온 수학 학습부담 경감 정책은 한국 수학 실력의 저하만 부추겼다”고 꼬집었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결과를 보면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학생)라고 불리는 수준 1 이하의 기초학력 미달자 수가 2012년 9.1%에서 2015년 15.4%로 크게 늘었다. 하위 그룹으로 분류되는 수준 3 이하의 비율도 45.2%에서 56.3%로 증가한 반면 최상위권 그룹인 수준 6은 12.1%에서 6.6%로 반 토막 났다.

우리나라가 수학 공부의 부담을 줄여줘야 할 만큼 수학을 많이 배우는 것일까. 이 교수는 “핀란드와 중국은 우리 선택과목인 기하와 벡터까지 필수고, 특히 중국은 대학에서 배우는 정수론과 구면기하학, 암호학이 선택과목”이라고 설명했다. 또 미국과 영국, 일본, 싱가포르, 호주는 수학 학습을 심화하고 강화하는 추세다. 그는 “미국은 2016년 3월부터 수능시험(SAT)의 수학 출제범위는 물론 응용문제 수도 늘렸고, 고교 심화학습 과정인 AP코스를 이수하는 학생이 늘고 있다”고 강조했다. AP코스 미적분 수업에는 우리나라의 기하 단원에서 배우는 내용이 나온다.

한국의 수학 교육 정책이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위기감도 나온다.

이 교수는 “일본은 2002년부터 우리나라와 비슷한 학습부담 완화 정책을 폈지만, 일본 학생들의 기초학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성적 우수자와 그렇지 못한 학생의 격차가 더 심해져 2009년부터 학력 강화 교육으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현재는 이과 대입시험에 기하와 벡터뿐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과정에는 없는 복소평면과 극좌표도 포함하고 있다.

이 교수는 “학습부담 완화 정책을 계속 추진하다가는 학생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잃을까 우려된다”며 “지금이라도 지난 10여 년간 이뤄진 수학 교육 정책의 문제점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학생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가현 동아사이언스 기자 gahy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