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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유령입자’ 중성미자 근원 첫 규명...중력파 이어 입자 천문학 시대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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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한국 등 12개국 300여명의 과학자들로 이뤄진 국제 공동연구진 ‘아이스큐브(IceCube)’가 대규모 우주 천체 현상으로 생긴 고에너지 ‘중성미자’의 근원을 처음으로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 2년 전 중력파 첫 관측에 따른 ‘중력파 천문학’에 이어 우주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되는 이벤트를 알아낼 수 있는 ‘입자 천문학’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미국국립과학재단(NSF)은 12일(현지시각) 기자회견을 열고 아이스큐브 중성미자 관측소에서 검출된 고에너지 중성미자가 ‘활동성 은하 핵’의 일종인 ‘블레이자(blazar)’에서 왔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입증했다고 발표했다. 아이스큐브 국제공동연구진이 참여한 연구결과는 두 편의 논문에 담겨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공개됐다.

우주를 이루는 기본 입자 중 하나인 중성미자는 태양의 핵융합 반응이나 원자력발전소의 핵분열 반응에서도 나온다. 다른 입자와 반응을 거의 하지 않고 대부분의 물질을 그냥 통과해서 ‘유령 입자’로 불린다. 중성미자는 태양이나 핵반응에서도 나오기 때문에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한다. 그러나 먼 우주에 존재하는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무거운 블랙홀 등 천체 현상에서 나오는 중성미자는 태양이나 핵반응에서 나오는 중성미자에 비해 에너지가 수백만 배에 달한다.

조선비즈

/조선DB



남극점 기지에 위치한 아이스큐브 중성미자 관측소는 이같은 고에너지 중성미자를 식별하고 추적하기 위한 거대한 입자 검출기다. 아이스큐브가 검출하는 대부분의 중성미자들은 지구 대기에서 우주선(Cosmic Ray)이 원자핵에 충돌하면서 나오는 아원자 입자들이 지구로 쏟아져 내려오는 것과 같은 낮은 에너지의 중성미자이다.

연구진은 2013년과 2015년 우주에서 온 초고에너지의 중성미자를 검출하는 데 성공하고 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감마선과 같은 고에너지와 함께 방출되는 중성미자는 지구로 날아오는 동안 우주를 채우는 자기장에 의해 휘어지기 때문에 어디서 왔는지 근원을 찾아내는 게 지금까지 불가능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에서 2017년 9월 22일 아이스큐브 중성미자 관측소에 검출된 고에너지 중성미자의 근원이 ‘블레이자’라는 증거를 세계 최초로 제시하는 데 성공했다. 천문학자들이 ‘TXS 0506+056’이라고 이름붙인 이 블레이자는 지구에서 약 40억 광년 떨어진 것으로 비교적 지구와 가까운 블레이자로 분석됐다.

블레이자란 블랙홀이 주변 물질을 집어삼키는 에너지로 형성되는 거대 발광체인 ‘퀘이사’처럼 활동성 은하 핵의 일종이다. 중심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무거운 블랙홀이 존재하는 거대한 타원형 은하다. 중심에 있는 블랙홀의 회전축에 따라 빛(광자)과 기본 입자들로 구성된 ‘제트 분출류’가 굉장히 강한 에너지와 함께 두 갈래로 나오는데, 이 중 한 갈래가 지구 방향으로 향하는 천체를 ‘블레이자’라고 부른다.

아이스큐브 중성미자 관측소는 초고에너지를 지닌 중성미자가 검출될 때 실시간 알림 시스템을 통해 전세계에 있는 망원경들에게 검출된 중성미자 신호의 좌표를 전송한다. 2017년 9월 22일 포착된 신호가 지구 궤도를 돌고 있는 미 항공우주국(NASA)의 ‘페르미(Fermi) 감마선 우주 망원경’과 카나리아제도에 위치한 ‘MAGIC(Major Atmospheric Gamma Imaging Cherenkov Telescope)’에 전달됐고 이 2개의 감마선 관측 장비가 이 때 관측한 감마선을 분석한 결과 ‘TXS 0506+056’ 블레이자와 관련된 고에너지 감마선 방출인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또 2017년 이전에 기록된 데이터를 분석하고 2014년 말과 2015년 초에 검출된 12건 이상의 중성미자가 동일한 TXS 0506+056 블레이자와 일치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정태현 한국천문연구원 박사는 “강한 에너지인 감마선을 방출하는 블레이자로부터 중성미자가 지구로 온다는 이론적 가설을 실제로 입증했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는 굉장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아이스큐브 연구진에 몸을 담은 적 있었던 하창현 기초과학연구원(IBS) 지하실험연구단 박사는 “지금까지 천문학은 가시광선(빛) 망원경이나 전파 망원경을 이용해서 연구할 수 있었는데 중력파에 이어 고에너지 중성미자 천문학도 가능해질 수 있다는 의미”라며 “감마선과 중성미자가 함께 검출됐다는 점에서 대규모 우주 이벤트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보다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NSF의 프랑스 코르도바 이사는 “여러 관측 방법을 이용해 우주의 물리현상을 연구하는 다중 메신저 천체물리학 시대가 도래했다”며 “빛, 전파, 중력파에 이어 중성미자까지 각 메신저들은 우주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가능케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이스큐브 국제공동연구단은 전세계 12개국 49개 기관에서 300명이 넘는 과학자들로 구성됐다. 호주, 벨기에, 캐나다, 덴마크, 독일, 일본, 뉴질랜드, 한국, 스웨덴, 스위스, 영국 및 미국의 연구 기금 지원 기관서 지원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성균관대 물리학과 카르스텐 로트 교수 연구팀이 아이스큐브 국제공동연구단에 참여하고 있다. 로트 교수가 이끄는 8명의 연구팀은 현재까지 검출된 가장 높은 에너지를 지닌 우주기원 중성미자에 대한 이해부터 태양에서 나오는 고에너지 중성미자 탐색, 간접적인 방법을 통한 암흑물질의 탐색까지 넓은 범위의 주제를 연구하고 있다.

김민수 기자(rebor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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