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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사설] 오죽하면 소상공인들이 “나를 잡아가라”고 나서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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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위반 업체는 급증하고/비명과 절규 날로 커지는 현실/정부는 엄중히 여기고 대응해야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가 어제 기자회견을 열어 “영세 소상공인들을 범법자와 빈곤층으로 내몰고 있는 현재의 정책 기조를 전면 재검토하라”고 촉구했다. 전국 7만여 편의점 운영자들을 대표해 회견에 나선 협회 관계자들은 “나를 잡아가라”고 했다. 이들이 울분을 터뜨린 것은 최저임금 인상 정책 때문이다. 협회 대표들은 노동계 편만 드는 최저임금위원회의 공익위원들을 향해 “이들이 일방적으로 최저임금을 정하는 것을 개탄한다”고 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어제 경제 현안 간담회를 가진 뒤 “도소매·음식·숙박업 등 일부 업종과 55∼64세 등 일부 연령층의 고용부진에 최저임금 영향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 부총리가 구체적 업종이나 연령층의 고용부진에 최저임금 영향이 있다고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2020년까지 1만원을 목표로 가기보다 최근 경제 상황과 고용여건, 취약계층에 미치는 영향, 시장에서의 수용 능력을 감안해 신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면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합리적 결정을 기대한다”고 했다.

수술을 하든 처방을 하든 먼저 제대로 된 진단이 나와야 하는 법이다. 김 부총리의 인식 전환은 여간 반갑지 않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주변의 정책 실세들은 여전히 다른 진단, 다른 생각을 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부터 그렇다. 그는 얼마 전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최저임금위의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권을 사실상 장악한 친노동 성향의 공익위원 9명은 최근 몰표를 던져 업종별 차등 적용안을 부결시켰다. 수백만 자영업자들의 염원을 산산조각낸 것이다. 현실이 이렇게 돌아가니 최저임금 협상 테이블의 사용자위원들이 의자를 박차고 나가는 것이다.

“나를 잡아가라”는 절규는 편의점 업계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전국 350만 소상공인의 이해를 대변하는 소상공인연합회는 어제 긴급회의에서 불복종 투쟁을 전개하기로 했다. 그만큼 심정은 절박하고 체감 고통은 크다는 뜻이다. 편의점 알바생이 가져가는 인건비가 점주의 수입을 이미 웃돌고 있다고 한다. 5인 미만 서비스업, 10인 미만 제조업을 운영하는 소상공인은 한 달에 209만원을 벌고, 동종업계 근로자는 임금 329만원을 챙긴다는 통계도 있다. 빚더미에 허덕이는 자영업자들이 수두룩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문을 닫는 가계가 속출한다.

올 상반기 고용노동부에 적발된 최저임금 위반 업체가 43.7% 급증했다. 자영업계의 생계 터전이 뒤흔들리는 것은 물론이고 범법자 신세로 몰리는 사업자마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는 자영업자 문제를 전담할 비서관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청와대 내부에 따뜻한 일자리를 만들기에 앞서 업계 비명과 절규를 새겨들어야 한다. 전국 자영업자들이 다 망하고 난 뒤에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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