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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욱의 서양 사람] 어둠의 딸, 미네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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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그리스 신화의 아테나에 해당하는 로마의 미네르바는 지혜의 여신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를 항상 따라다니는 영물인 부엉이도 지혜의 상징인 것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기인, 잠바티스타 비코는 그런 해석을 결연히 부정한다. 그것은 사람들의 값싼 관심을 얻기 위한 행동이 결코 아니었다. 그에게는 신화가 감춰진 인류 초기의 역사를 담고 있는 인간의 역사였다. 그 태곳적 역사의 신비를 찾는 것은 초기의 인류가 생각하던 방식과 표현하던 양태를 찾아 신화를 읽어내면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었지만 후대의 철학자들은 훗날의 화려한 사고방식을 도입하여 신화를 윤색했던 것이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도 미네르바를 지혜와 연결시키는 문구는 없다. 오히려 미네르바는 호전적인 약탈자였을 뿐이다. 부엉이가 그에게 봉헌된 것은 미네르바가 밤에 명상을 하고 등불 아래 글을 읽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부엉이는 단지 어두운 밤을 뜻했다. 그 어두운 밤에 아테네의 귀족들로 구성된 원로원에서는 비밀리에 법을 제정했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법을 만들까 경계하는 평민들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행여 있을지 모르는 충돌에 대비해 그들은 무장을 하고 회의에 참석했다. 미네르바는 그들의 신이었다. 그런 이유에서 동상이나 메달에서 보이는 미네르바는 언제나 무장을 하고 있다. 미네르바는 결코 지혜의 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로마의 역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 로마 최초의 귀족회의인 코미티아 쿠리아타도 무장을 한 귀족들이 비밀리에 소집한 것이었다.

법을 만드는 입법부와 그것을 집행하는 사법부 모두가 미네르바를 받드는 것일까? 낮에는 다른 듯하지만,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밤에 회동하는 어둠의 자식들이 아닐까? 압도적인 다수의 민의에 반하는 행동, 또는 무행동에 이런 자조적 의심까지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여명이라는 정복될 수 없는 거대한 세력 앞에 어둠은 무기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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