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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학생부 항목 줄지만 사실상 ‘현행대로’…“무늬만 숙의” 뒷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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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숙의서 내놓은 ‘학생부 신뢰도 제고 권고안’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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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부 개선 4대조건 중

3가지 모두 채택 안돼

“정책 목표 상실한 방안”

교육단체들 한목소리로

“숙려제 개선책 나와야”


12일 교육부의 정책숙려제를 통해 시민 100명이 머리를 맞대 내놓은 ‘학교생활기록부 신뢰도 제고방안’은 소논문을 적지 않도록 하는 것 외에는 현행 유지에 가깝다. 다만 수상경력·자율동아리 항목이 사교육이나 부모의 재력에 좌우되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거나 동아리 개수 제한 등의 장치를 두도록 했다. 이번 숙의 결과를 두고 교육단체는 “짧은 기간에 복잡한 항목과 행정절차·용어에 대해 학습하고 토론해 숙의에 한계가 있었다”며 “신뢰도 제고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학생부 신뢰도 제고를 위한 시민 숙의는 지난달 23~24일, 이달 7~8일 두 차례 이뤄졌다. 교육부에 따르면 시민참여단은 수상경력, 자율동아리, 소논문, 봉사활동 특기사항,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확대 등의 주요 쟁점을 스스로 선택해 집중토론했다. 그 결과 모든 교과의 소논문은 기재하지 않도록 하고, 수상경력은 기재하게 하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따르게 하고, 자율동아리는 개수 제한 등을 두는 데 합의했다.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항목은 재능·특기가 관찰되는 경우에만 기재하도록 돼 있는 현행안을 유지하기로 했다. 전반적으로 지금의 학생부 항목을 존치하되 부작용을 막을 장치를 두는 ‘절충’에 가깝다.

나머지 일반쟁점 가운데 인적사항과 학적사항을 통합하고 ‘부모 정보 및 특기사항’을 삭제하는 안은 찬성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진로희망’ 항목을 삭제한 후 창의적 체험활동의 진로활동 특기사항에 기재하되 대입자료로 제공하지 않는 안 역시 합의가 이뤄졌다. 이에 따라 고등학교 학생부 항목은 10개에서 8개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제목과 저자만 입력하는 독서활동상황과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기재분량 축소(1000자→500자)에 대해서는 찬반이 갈려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교육부는 시민참여단이 내린 결론을 존중하겠다는 뜻을 밝혀왔기 때문에 숙의 결과가 이달 말 발표될 교육부 안으로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

교육부의 발표를 전후해 교육계 안팎에서는 충분한 숙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숙의에 참여했던 실천교육교사모임의 신동하 정책팀장은 “개인봉사활동의 경우 부모가 인맥이 없으면 공공기관 청소를 하는 데 그치지만 상위계층의 학생들은 번역봉사, 연구조사원 활동 등을 적는 등 내용 측면에서 레벨이 달라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개인봉사활동 실적 문제에 대해 충분한 논의를 했어야 했는데 교육부가 학교 현장에서는 사문화된 ‘봉사활동 특기사항’을 안건으로 넣었다. ‘개인봉사활동 실적’과 ‘봉사활동 특기사항’은 다른 항목임에도 두 항목이 뒤섞인 채 토론이 진행됐고 투표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학생부 숙려 자문에 참여했던 교육단체들은 교육부가 지난 4월 자체적으로 마련한 학생부 개선 시안을 중심으로 논의하게끔 유도했다고 지적한다. 교육부 담당자는 최종투표 직전 자문위원들이 반발하는데도 정부 시안을 ‘안내’했다가, 시민참여단이 “선거법에서도 금지하는 행위”라고 비판하자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숙려 자문에 참여한 4개 교육단체는 지난 11일 교육부의 외압과 투표 결과에 대한 자의적 해석을 막을 장치 마련 등을 요구하는 공동입장문을 내기도 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 역시 12일 보도자료를 내고 “전문가에게도 쉽지 않은 주제를 짧은 기간에 숙려단에게 결정하도록 함으로써 정책 목표와 방향을 상실한 권고안 도출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숙의 결과에 대해서도 “학생부 개선을 위한 4대 조건은 수상경력·자율동아리·소논문을 기재하지 않도록 하고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의 기재 양식을 개선하는 것이었다”면서 “그중 (소논문 미기재를 제외한) 세 가지가 모두 채택되지 않음으로써 학생부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게 됐다”고 주장했다.

사실상의 현행 유지에 환영하는 입장을 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도 운영과정엔 우려를 표했다. 교총은 “근본 개선보다는 교육부의 개선안을 중심으로 항목 변경에만 치우친 점은 아쉽다”면서 “숙려과정이 타당하고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개선·보완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올 하반기 정책숙려제 적용 대상으로 유치원 방과후 영어교육, 학교폭력 관련 제도 개선 방안 등을 선정한 상태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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