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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우리] 北·美 실무회담 이후를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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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비핵화 협상 지지부진한데/한·미·일 정책 조율조차 잘 안돼/하루빨리 北의 의도 파악 나서/한·미, 압박 수단 등 사전조율을

2000년대 베스트셀러였던 허브 코헨의 ‘협상의 법칙’에는 구(舊)소련의 협상전략이 나오는데, ‘상대방의 양보는 약함의 표시로 본다’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북한의 협상전략도 비슷한 듯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조치를 약함의 표시로 보았는지, 방북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푸대접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지 못했고, 합의문도 없었으며,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로 뒤통수까지 얻어맞은 이번 방북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은 차갑다. 비핵화의 기본인 신고와 검증조차도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요구’라고 비난을 해대니 ‘북한은 비핵화 의지가 있는가’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친(親)트럼프 성향의 언론조차도 고개를 돌리고 있는 모습이다.

문제는 이대로 비핵화 협상이 좌초된다면 득보다 실이 더 많다는 데 있다. 이미 작년 12월 수준의 대북제재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세 번의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은 고립에서 벗어났고, 9월 초에는 러시아를 방문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관세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은 북한을 활용하며 미국의 애를 타게 할 전망이다. 비핵화 협상의 좌초가 자칫 비핵화의 좌초로 연계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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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

이에 비핵화 대화의 판을 유지하면서 북한의 변화를 견인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고, 이를 위해 남아 있는 유일한 카드가 바로 실무회담이다. 폼페이오 장관에 의하면 북한 비핵화 문제를 논의할 실무회담 개최에 양측이 합의했고, 머지않은 시기에 이 같은 회담이 개최될 가능성이 높다. 고위급에서도 타협에 실패했는데 실무급에서 중요한 진전을 이루어 낼 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맞는 말이다. 과거 협상을 돌아보면 북한의 실무진은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권한이 없다고 하며 의사결정을 뒤로 미루는 데 능숙하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실무회담이 개최된다 하더라도 북한이 기존의 입장에서 양보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럼에도 실무회담은 두 가지 측면에서 미국과 한국에 기회를 가져다줄 수 있다. 먼저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감으로써 상황의 악화를 방지할 수 있다. 현 상황에서 대화가 단절될 경우 미국은 북한의 기만행위를 응징하기 위한 강도 높은 수단을 강구할 것이다. 자연스럽게 군사적 옵션이 검토될 것이다. 하지만 실무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군사적 옵션을 자제할 것이다. 실무회담은 정책 조율을 위한 시간을 가져다줄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직후 개최된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에서 드러났듯, 각국은 비핵화의 개념도 통일하지 못하고 있다.‘ 완전한 비핵화’(CD), ‘완전하고 최종적이며 검증된 비핵화’(FFVD),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가 그것이다. 개념부터 이럴진대 그동안 정책 조율이 미흡했던 것은 부연 설명할 필요도 없다. 제대로 조율된 정책을 가지고 북한의 변화를 견인해야 한다.

실무회담의 기회 요인을 살리는 것도 우리의 철저한 준비가 뒤따를 때 가능한 일이다. 하루빨리 북한의 의도 파악에서부터 공동 대응 방안까지 우리 입장을 가다듬어야 한다. 돌아보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오는데 김 위원장의 전략적 결단을 성급히 예단했던 우리의 잘못도 크다. 앞으로 중국을 어떻게 견인해 북한 비핵화에 긍정적 역할을 하도록 할 것인지 한·미 공동의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이 경우 김 위원장을 직접 설득할 수 있는 3차 남북 정상회담은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를 거부할 경우 어떠한 압박을 할 것인지도 한·미 간 사전 조율이 필요하다. 군사적 긴장이 지나치게 고조되지 않으면서도 김 위원장을 심리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여러 상황에 맞춰 준비해야 한다. 북한이 끝내 ‘핵을 보유한 평화’를 추구한다면 우리도 그럴 수 있다고 경고해야 한다. 그래야 미국과 중국이 이 문제를 쉽게 보지 않는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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