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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휴가철 ‘바가지’ 못 잡나 안 잡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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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이 시작됐다. 전국 곳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각자 가는 곳은 다른데, 같은 경험을 한다. 피서지의 얼토당토않은 바가지요금이다. 펜션 등 숙박 장소를 예약할 때부터 평소보다 2, 3배 높은 가격에 한숨을 내쉰다. 간신히 화를 누르며 예약을 한다. 휴가지를 향해 출발해도 한동안 ‘고속도로 주차장’에서 시간을 보낸다. 힘겹게 목적지에 이른 후엔 서울보다 비싼 음식값과 각종 비용에 혀를 내두른다. 더 억울한 건 돈을 평소보다 많이 쓰지만, 사람이 몰려 대접은 못 받는다는 것이다. ‘여기로 사람들이 다 몰렸네’, ‘서울보다 더 비싸’란 말을 수없이 되뇐다. 짜증이 폭발 직전까지 갔다가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하는 휴간데’하며 이를 악물고 참는다. 휴가를 보낸 뒤 돌아오는 ‘고속도로 주차장’에서 가족들에게 내년 휴가 얘기를 슬쩍 꺼낸다. “피서지에서 돈 쓴 것 생각하면 내년엔 일본이나 동남아시아로 나가는 건 어때?”

‘국내로 휴가 떠난다’고 쓰고 ‘바가지 쓰러 간다’ 또는 ‘사람 구경하러 간다’로 이해한다. 매년 되풀이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선 바가지요금 단속을 하고, 지역 상인회에서는 결의대회를 연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내가 가는 곳이 아닌 다른 상점만 단속하는 것 같고, 결의대회를 연 지역 상인회는 소속 회원 수가 거의 없는 모임일 듯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해마다 되풀이되는 이 현상을 이해하기 힘들다.

세계일보

이귀전 문화체육부 차장

당국의 단속 의지에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지난겨울 열린 평창동계올림픽을 보면 더욱 그렇다. 하루 숙박에 100만원이 넘는 등 바가지요금이 기승을 부리자, 정부와 지자체는 그야말로 모든 방법을 동원해 가격 안정에 나섰다. 바가지 업소에 대해서는 세무조사를 의뢰하거나, 위생·건축·소방·교통·농정 등 관련 규정 준수 여부를 살피는 방식으로 지도에 나섰다. 30년 만에 열린 올림픽 때 ‘전쟁’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단속을 하자, 휴가철엔 어떤 수를 써도 잡히지 않던 바가지요금이 사라지는 효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정부는 국민이 매번 겪는 불편에 대해선 사실상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지난 11일 열린 국가관광전략회의의 문화체육관광부 자료를 보면 바가지요금과 관련한 대책은 근절 캠페인과 관련 교육을 실시한다는 것 외에는 내용이 없다. 수년째 반복되는 대책에도 나아지는 게 없는데, 내놓는 대책은 해마다 똑같다.

정부가 직접적인 단속권 등을 행사할 수 없다면, 지자체가 움직이게 해야 한다. 정부 보조금 등이 지원되는 지자체 축제, 관광 관련 평가 시 바가지요금 단속 성과 등에 대한 점수 비중을 대폭 높이는 것이 대표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문체부의 축제 선정이나, 지역관광발전지수 등의 평가 기준 등엔 이런 점이 거의 반영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관광지출액 등만 따지니, 외부인이 어떤 방식으로든 돈을 많이 쓰면 평가가 좋아진다. 현재 1등급 지역만 공개하는 지역관광발전지수에선 바가지요금 등에 대한 평가항목을 만들어 관광객 불만이 많거나, 단속하지 않아 점수가 낮은 지자체를 대외 공개하면 된다. 정부나 지자체 공무원들이 서로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바가지요금에 대한 껄끄러운 행정을 피하는 동안 국민만 ‘봉’이 되고 있다.

이귀전 문화체육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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