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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스포츠의 ‘역사’ 태릉선수촌, 철거 위기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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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지역 1966년 개촌…진천시대 이후 존치·철거 ‘팽팽’

문화재청, 상징성 큰 건물 3동·운동장 등 일부 보존 ‘타협안’

태릉선수촌이 철거 위기를 벗어나 제자리를 지키며 한국스포츠의 역사를 이어가게 됐다. 세계문화유산의 완전 복원과 우리 시대 삶의 소중한 유산인 태릉선수촌 존치를 둘러싼 난제는 선수촌 건물 일부 보존의 ‘타협안’으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지난 11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근대문화재분과, 사적분과, 세계유산분과 합동 회의를 열고 체육사적으로 상징성, 장소성이 있는 승리관, 월계관, 챔피언하우스 등 건물 3동과 운동장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 향후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의 의견을 듣고 이를 토대로 후속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다.

태릉선수촌은 1966년 6월31일 국가대표 훈련시설로 출범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 민관식 대한체육회장이 건립한 이곳은 엄연한 문화재터였다. 조선왕릉인 태릉, 강릉이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고 국가대표선수촌이 진천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선수촌 철거는 기정사실이 됐다.

한국 엘리트스포츠의 산실을 지키려는 노력은 체육회가 2015년 문화재청에 태릉선수촌을 근대문화재로 등록해줄 것을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태릉선수촌 존치를 위한 노력은 서바이벌 게임과도 같았다. 결정권을 쥐고 있는 문화재 위원들의 엄정한 잣대는 체육계의 애간장을 녹였다. 수백년 문화유산을 체육시설이 짓밟았다는 ‘원죄’가 곱지 않았고 세계문화유산 복원이라는 명분도 분명했다. 문화재위원회 3개 분과 중 호의적인 곳은 근대문화재분과뿐이었다.

2016년 문화재위원회가 태릉선수촌 문화재 지정 결정을 일차 보류하면서 대한체육회는 ‘살아남기’를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문화재 분야 권위자를 중심으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조언을 듣고, 문화재위원들의 태릉선수촌에 대한 인식제고를 위해 애썼다.

스포츠계에서 태릉선수촌 존치에 안도하는 것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한국스포츠사에 남을 굵직한 성과에 대한 기억과 기록을 증거할 현장을 보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곳에 서려 있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도전, 열정, 환희, 애환, 땀과 눈물 등 무형의 가치를 지키고자 했다.

“저는 지금도 국가대표다. 태릉선수촌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스포츠정신을 일깨우는 곳”(축구 차범근), “운동하는 여성, 독립된 여성으로 살아온 건 태릉선수촌이 있었기 때문”(농구 박찬숙), “유도는 제 종교이며, 태릉선수촌은 신성한 전당”(유도 하형주), “오로지 꿈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려가던 순간을 태릉선수촌은 기억하고 있을 것”(탁구 현정화),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양 1, 2 기술이 어떻게 나왔는지 개선관은 알고 있을 것”(체조 양학선).

영원한 마음의 고향 태릉선수촌에 남을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들의 목소리다.

<김경호 선임기자 jero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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