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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혈연 아닌 선택으로 이루어진 가족…그 평범한 웃음엔 ‘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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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어느 가족’ 국내 개봉 앞둬

가족 이야기에 천착해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변주 주목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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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딸이나 아들로 태어나는 것, 가족이 된다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우연 혹은 운명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56·아래 사진)는 “마음대로 내 인생을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부조리한 현실. 이게 아마 모든 문제의 시작점이 아닐까”(경향신문 2015년 10월9일자 보도)라고 말했다.

가족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왔던 감독의 신작이 이달 국내 개봉한다. 할머니의 연금과 훔친 물건으로 생활하는 이들이 주인공인 <어느 가족>이다. 가족을 다룬 전작들이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 안에서의 고뇌를 그렸던 것과 달리, 이번 작품은 스스로 가족 되기를 선택한 이들의 얘기다. 초기작에서 보여줬던 사회에 대한 서늘한 시선도 느껴진다. 영화는 올해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

도쿄 외곽으로 보이는 한 동네에 오래된 목조 주택이 있다. 할머니 하쓰에(기키 기린)와 그의 손녀딸로 보이는 아키(마쓰오카 미유), 아빠 오사무(릴리 프랭키), 엄마 노부요(안도 사쿠라), 아들 쇼타(조 가이리)가 산다. 여기에 오사무가 길거리에서 떨고 있던 소녀 유리(사사키 미유)를 데려와 이들은 모두 6명이 된다. 가족들은 처음 본 유리에게 먹을 것을 내주고 살뜰히 보살핀다. 가난하지만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다는 생각이 든다.

경향신문

불편한 생각이 스미는 것은 이들의 생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면서부터다. 할머니의 연금 외에 일정한 수입이 없는 이들은 도둑질로 생계를 꾸린다. 오사무는 쇼타에게 대형 마트, 문방구, 주차장에서 도둑질하는 법을 가르친다. 아키는 유흥업소에서 일한다. 노부요와 하쓰에는 모든 사실을 알지만 묵인한다. 진짜 가족이라면 가족의 도둑질이나 유흥업소 일을 부추길 리 없다. 평범해 보이는 이들의 따뜻한 미소는 위선이었던 걸까.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던 쇼타가 경찰에게 붙잡힌 뒤 드러나는 가족들의 비밀은 조금 더 충격적이다.

감독은 <걸어도 걸어도>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태풍이 지나가고> 등 다수의 전작에서 가족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왔다. 죽은 형의 그림자를 지고 살아야만 하는 동생이나, 이혼한 부모로 인해 서로 떨어져 살아야만 하는 형제, 헤어진 전 부인과의 관계를 어떻게든 이어가려고 애쓰는 남자 등이 등장한다.

중요한 것은 상황보다 이들을 둘러싼 어머니와 아버지 등 가족과의 관계다. 서로에게 힘이 될까 싶지만 골칫거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더욱 복잡해진다. 인물들이 가진 삶의 문제가 알고보니 이들에게서 기원한 것이기도 하다. 결국 가족은 가장 가까이 있지만, 가장 이해할 수 없는 타자로 남을 뿐이다.

<어느 가족>도 감독의 전작들처럼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영화가 전작들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은 ‘혈연을 통해 맺은 가족’이 아니라 ‘선택한’ 가족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초반 여느 가족과 비슷해 보이는 이들의 관계는 중반 이후 사실 남이나 다름없다고 밝혀진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서로를 선택한 것일까. 노부요는 하쓰에와 같이 살게 된 이유에 대해 자신이 그를 “주웠다”고 표현한다. <어느 가족>의 6명은 서로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었지만, 필요에 의해 서로에게 주워졌다. 필요는 할머니의 연금처럼 물질적인 것일 수도, 쇼타의 ‘아빠’라는 말속에 담긴 애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 것이 아니면 돌려줘야 하는 게 사회의 법칙이다. 도둑이 경찰에 잡히듯이 가족들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헤어져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감독은 최근 가족 소재 작품에서 평범한 서민 가정을 주로 그렸던 것과 달리 이번 영화에선 사회의 주변부에 머문 이들을 담았다. 카메라는 담담히 이들의 모습을 담아내는 데 전작 <아무도 모른다>가 떠오를 수 있다. <아무도 모른다>는 떠나버린 부모를 기다리며 지내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해체된 한 가족만의 얘기라고 볼 수 있지만, 약자를 방치하기만 하는 사회의 부조리를 다룬 작품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어느 가족>은 일본 작품으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우나기>(1997) 이후 21년 만에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가족이라는 소재를 다양하게 변주해가며 인간과 사회를 성찰하는 그의 작업에 대한 경의의 표현으로 보인다. 일부에선 ‘비슷한 이야기의 반복’ ‘크게 새로운 것을 내놓지는 못하지만, 실패하지도 못하는 감독’이라는 평이 나오기도 하지만, 현재 그가 아시아 영화계에서 가장 빛나는 감독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자국에서의 반응 역시 좋다. 지난달 초 일본에서 개봉한 <어느 가족>은 약 300만명에 가까운 관객을 불러들였다. 이는 올해 일본에서 개봉한 극영화 중 흥행 1위 기록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한국에서도 다수의 팬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오는 26일 개봉에 맞춰 29~30일 내한해 국내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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