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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설의 아시아 신화로 읽는 세상] (22) 자연의 금기 깬 남편 대신 해결 나선 영산 각시, 산천을 바로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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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선비와 영산 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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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산이 많고, 산마다 산신이 있다. 삼국시대 이래 고대국가들은 오악의 산신 숭배를 제도화하여 나라의 번영을 기원했고, 마을에서는 산신제를 지내 마을의 안녕을 발원했다. 그 오랜 전통이 오늘날에도 이어져 이제는 산악회 단위로 신년 산행을 할 때면 시산제를 지낸다. 등산로 곳곳에 쌓인 돌탑도 그 흔적이다. 그런데 팔도 명산의 산신령이 어디서 왔는지, 그 산신령의 신화적 메시지가 무엇인지 아는 등산객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함경도 지역에서 했던 망자천도굿을 망묵(이)굿이라고 한다. 망령(亡靈)이 좋은 곳으로 가기를 비는 굿인데, 남쪽에서는 오구굿, 새남굿 등으로도 불린다. 망묵굿에는 작은 굿거리가 여럿 포함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산천굿이라는 것이 있다. 죽은 사람을 산천에 묻을 때 다른 탈이 나지 말라고 비는 굿, 산 사람은 산천의 기운으로 운수대통하라고 드리는 굿이다. 이 굿을 할 때 부르는 노래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산천굿의 신화다. ‘영산 각시와 붉은 선비’ 이야기, 이 신화 안에 팔도 산신령의 기원과 산신령의 메시지가 숨어 있다.

붉은 선비와 영산 각시는 본래 옥황상제가 있는 선계의 주민이었다. 어느 날 붉은 선비는 옥황상제의 연적에 물을 붓다가 벼루를 인간 세상에 떨어뜨린다. 영산 각시는 아침마다 옥황상제에게 바쳐야 할 세숫대야를 떨어뜨린다. 말하자면 공무원이 직무상 실수를 저지른 셈인데, 그 죄로 둘은 지상에 유배를 간다. 이런 ‘귀양정배’의 상황은 망묵굿에서 불리는 또 다른 신화인 ‘바리데기’에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바리데기의 부모 수차랑 선비와 덕주아 부인도 동일 코스를 밟는다(11회 ‘함흥 바리공주의 비밀’ 참고). 함경도 망묵굿의 상투적이고 관습적인 인물 소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한데, 상투적 등장 뒤에 이어지는 상황은 상투적이지 않다. 수차랑 선비와 덕주아 부인이 결혼하여 막내 바리데기(수왕이)를 낳은 뒤에는 바리데기에 의해 사건이 전개되지만 붉은 선비와 영산 각시는 시종 자신들이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엮어간다. 둘은 열넷, 열여섯에 결혼을 하는데, 사건은 붉은 선비가 공부를 더 하겠다며 집을 떠나 ‘안헤산 금상절’로 들어가면서 벌어진다. 안헤산은 특정되지 않는 가상의 산이고, 금상절도 불교를 상징하는 가상의 절이다. 절을 공부의 거처로 삼은 까닭은 절의 스승에게 다음 역할을 부여하기 위한 서사적 장치다.

삼년 공부를 하던 어느 날 스승의 제안으로 산놀이를 간다. 붉은 선비는 나비가 꽃에서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제비 새끼가 어미를 따르는 것을 보고 각시와 부모가 그리워 집으로 가겠다고 선언한다. 스승은 오늘은 일진이 나쁘니 다른 날 가라고 하지만 선비는 고집을 꺾지 않는다. 스승의 말을 듣지 않는 선비,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고 신화는 이야기한다. 스승은 굳이 오늘 가겠다면 네 가지 금기를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산천굿은 그냥 ‘스승’이라고 했지만 절에 있는 스승이라면 ‘불승(佛僧)’이 아닌 다른 존재일 리가 없다. 함흥 바리공주의 서인대사가 부정적 역할을 수행했다면 금상절의 스승은 주인공한테 금기를 고지하는 긍정적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문제는 신화에 제시되는 금기가 늘 위반에 이른다는 데 있다. ‘뒤돌아보지 말라’면 반드시 뒤를 돌아본다. 이것이 다음 이야기를 가능케 하는 이야기하기의 비밀이다. 스승은 붉은 선비에게 어떤 금기를 주었는가?

첫째, 내려가다 목이 마르면 길 위의 맑은 물 말고 길 아래 흐린 물을 마셔야 한다. 둘째, 10리를 내려가다 보면 머루와 다래, 포도가 익어갈 터인데, 모른 척하고 지나가야 한다. 셋째, 5리를 내려가다 보면 창창한 날씨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질 테지만 피하지 말고 가야 한다. 넷째, 10리를 더 내려가다 보면 가지가 무성한 10년 묵은 나무 위에서 새파란 각시가 불을 꺼달라고 소리를 지를 것인데, 모르는 척하고 불을 꺼주지 말아야 한다. 참으로 이상한 금기지만 이 금기들은 우리를 이 신화의 비밀 속으로 이끄는 길잡이다.

당연하게도, 붉은 선비는 귀갓길에 네 가지 금기를 차례로 어긴다. 목이 마르자 “내가 맑고 정한 선비로다. 내가 속이 깨끗한 선빈데 무슨 일로 흐린 물을 마시겠나”라고 반문하며 맑은 물을 마신다. 먹음직스러운 다래, 포도가 보이자 그냥 갈 수 없다며 딴다. 폭우가 내리자 “나는 선비로다. 내가 왜 이 비를 맞고 가겠느냐”면서 비를 피한다. 나무 위에서 불이 붙은 색시가 불을 꺼달라고 소리치자 영산 각시가 마중 나왔는지 모른다며 도복을 벗어 불을 끈다.

왜 스승은 금기를 발부했고, 선비는 금기를 위반했을까? 그것은 산천굿의 또 다른 주인공인 대망신(大망神), 곧 이무기를 소환하기 위해서였다. 선비가 불을 꺼주자 색시는 서너 번 돌더니 대망신으로 변신한다. 변신한 이무기는 내가 먹고 승천할 것들을 네가 먹었으니 너라도 잡아 먹겠다고 위협한다. 그렇다. 이무기는 맑은 물을 마시고, 머루·다래·포도 등 청정한 과실을 먹은 뒤 온몸에 불이 붙은 상태에서 폭우를 타고 승천할 작정이었는데, 붉은 선비가 그걸 막은 셈이다. 스승이 금기를 준 까닭은 이무기의 승천을 막으면 안된다는 뜻이었다.

붉은 선비는 죽음의 위기에 처하지만 그에겐 위기를 벗어날 능력이 없다. 오대독자로 명분을 삼아 부모께 하직 인사를 하고 오겠다고 통사정을 한다. 대망신은 정해진 시각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구족을 멸하겠다고 대답한다. 임시변통으로 위기를 벗어난 선비는 영산 각시한테 자초지종을 전한다. 영산 각시는 칼을 품고 남편 대신 대망신한테 간다. 이 신화는 문제 해결능력이 여성에게 있다고 말한다. 각시는 대망신을 만나 ‘내가 낭군 없이 살려면 일평생 쓰고 입고 놀고 먹어야 할 것이 필요하니 그걸 주고 잡아먹으라’며 따진다. 대망신은 각시의 위력에 넘어가 ‘팔모야광주’를 뱉어 준다.

옥황상제 모시다 실수한 남녀

지상에 유배와 부부의 연 맺어

공부하러 절로 떠난 붉은 선비

귀향길에 네 가지 금기 어기며

‘대망신’ 이무기의 분노 불러

위기에 빠진 남편 구하는 각시

‘팔모야광주’로 이무기 죽이고

시신 화장해 조선 팔도에 던져

재 속에서 8대 명산들 탄생

자연 노하게 해 ‘동티’난 선비

우리도 개발 욕망만 따르다가

산천의 분노 불러 동티날 수도


대망신의 입에서 나온 팔모야광주는 무엇인가? 여덟모가 난 구슬인데, 각 모마다 특별한 기능이 있다. 영산 각시가 쓰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자 대망신은 이렇게 대답한다. 첫째 모는 하산(下山)이 명산(名山)이 되는 모, 둘째 모는 명산이 하산이 되는 모, 셋째 모는 없던 금전이 저절로 나오는 모, 넷째 모는 없던 사람도 저절로 나오는 모, 다섯째 모는 없던 집도 저절로 나오는 모, 일곱째 모는 없던 살림도 저절로 나오는 모다. 여섯째 모는 무녀 김복순이 구연과정에서 빠뜨렸다.

그런데 대망신은 마지막 모의 기능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마지막 모는 대망신의 아킬레스건이었기 때문이다. 각시는 대망신의 멱살을 잡고는 품에 품어 온 속새 칼(베 짤 때 쓰는 칼)을 꺼내들고 위협한다. 대망신은 눈물을 흘리며 실토한다. 미운 사람을 겨누어 던지면 절로 죽는 모라고. 각시는 대망신을 겨냥하여 곧바로 마지막 모를 던졌고, 결국 대망신은 승천도 못하고 죽는다.

대체 인간인 영산 각시한테 피살된 대망신의 정체는 무엇인가? 왜 산천굿을 하면서 ‘붉은 선비-영산 각시-대망신’이라는 삼각관계에 얽힌 신화를 구술하는가? 왜 문제는 붉은 선비가 일으키고 해결은 영산 각시가 하는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의문을 해소하려면 먼저 산천굿의 벼리에 해당하는 대망신의 정체를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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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신의 다른 이름은 이무기다. 이무기에 대한 일반적 관념은 용이 되기를 기다리는 큰 뱀이다. 그런데 산천굿에서 대망신은 이렇게 해석된다. 영산 각시는 나뭇가지 삼천 개를 우물 정자로 쌓아 죽은 대망신을 올려놓고 화장한다. 화장 뒤 남은 재를 봉지에 나눠 담아 조선 팔도에 던진다. 그러자 함경남도 백두산 신령, 평안도 모란봉 신령, 강원도 금강산 신령, 경기도 삼각산 신령, 황해도 구월산 신령, 전라도 지리산 신령, 충청도 계룡산 신령, 경상도 태백산 신령이 탄생한다. 한반도 8대 명산의 신령이 모두 대망신의 사체에서 태어났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나라의 산과 산신령은 다 태초에 승천하지 못한 대망신의 몸이라는 것이다. 대망신이 산천이고 산신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재를 사오방(四五方)에 뿌리자 사오방의 큰 신령이 되고, 나무에 뿌리자 꽃의 신령(木神, 花神)이 되고, 돌에 뿌리자 돌의 신령(石神)이 된다. 마지막으로 물에 뿌리자 각종 짐승이 된다. 대망신이 팔도 명산의 산신령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산천에 거하는 나무와 꽃과 돌의 신령이 되고, 산천에 거주하는 짐승들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대망신은 자연 자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대망신의 사체를 통해 자연을 빚어낸 영산 각시는 어떤 존재일까? 무엇을 가지고 무엇을 만드는 일은 창조신의 고유한 능력이다. 그래서 나는 영산 각시 안에 창조여신의 자질이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영산 각시의 창조행위 이후에도 사건은 종료되지 않는다. 붉은 선비가 죽을병에 걸렸다고 하면서 원인을 알기 위해 점을 친다. 점복의 결과는 ‘산천 동티가 났다’는 것. 산천 동티를 낫게 하려고 산신령에게 기도를 드리는 산천굿을 한다. 그 결과 붉은 선비의 병이 나았고, 이때부터 산천 동티가 났을 때 산천굿을 했다고 말한다. 산천굿의 기원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상한 대목이 있다. 산천굿 신화는 붉은 선비의 죽음이라는 문제적 상황을 영산 각시가 해결하는 과정이 마무리되었는데도 마무리되지 않는다. 붉은 선비의 발병이라는 새로운 사건을 제시하고 산천굿의 기원까지 이야기한다. 이 신화가 굳이 신천굿의 기원담을 덧붙인 것은 전후의 두 이야기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 신화는 산천 동티에 따른 붉은 선비의 발병과 금기 위반에 따른 붉은 선비의 위기 상황을 동일시하고 있다. 둘을 은유적 관계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두 사건을 동일시한다는 것은 ‘산천 동티는 붉은 선비의 금기 위반의 결과’라고 읽어도 좋다는 뜻이다. 해서는 안될 일을 해서 신을 노하게 하는 것이 동티다. 붉은 선비는 스승이 하지 말라고 한 일을 해서 대망신을 노하게 한 셈이다. 나는 앞에서 대망신이 자연 자체라고 해석했다. 결국 붉은 선비는 선비라는 명분 때문에, 과실을 먹고 싶고 각시를 보고 싶다는 욕망, 다시 말해 식색(食色)이라는 생물학적 욕망 때문에 자연이라는 신을 노하게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대망신의 분노를 누가 잠재울 것인가? 그런 능력을 지닌 존재라면 창조신밖에 없다. 영산 각시는 대망신을 재로 만들어 산천을 재구성한다. 마고할미·설문대할망·노고할미 등이 산천을 형성하는 데 관여한 창세여신들이라면 선도산 성모·운제산 성모·지리산 정견모주·치술령 신모 등은 여산신들이다. 이들 사이에서 여산신이면서 동시에 창세여신의 역할도 보여주는 여신이 영산 각시다. 선비를 규정하는 ‘붉은’이라는 빛깔이 대망신의 분노를 표상하는 것이면서 불량한 산의 상태(下山)를 암시하는 것이라면 ‘영산(靈山)’이라는 여신의 이름은 산천을 다시 창조해 주는, 하산을 명산으로 만들어 주는 여산신의 뜻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만큼 등산객이 많은 나라가 있는지 모르겠다. 등산객이 지나간 산길은 붉어진다. 등산객이 버리고 온 쓰레기는 산을 더 붉게 만든다. 등산객들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산을 깎아 내고 케이블카를 건설하는 행위도 그렇다. 대망신의 분노를 부른 붉은 선비의 명분이나 욕망과 다르지 않은 만행이다. 산천 동티를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산천굿의 신화는 우리에게 말한다. 영산 각시한테는 팔모야광주가 있음을 기억하라! 시산제의 막걸리를 따를 때 이 산천굿의 복음도 음미해 주었으면 좋겠다.

▶필자 조현설

한국 고전문학·구비문학을 전공했다. 서울대 교수(국문학)로 한국 신화를 포함한 동아시아 신화와 서사문학을 탐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동아시아 건국신화의 역사와 논리>(2004),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2006), <마고할미신화 연구>(2013) 등이 있다. 논문으로 ‘해골, 삶과 죽음의 매개자’(2013), ‘천재지변, 그 정치적 욕망과 노모스’(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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