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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한창완의 문화로 내일만들기]실험적 교육모델 ‘만화지옥캠프’가 주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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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같은 학과에서 강의하시던 <머털도사> <임꺽정> 등의 명작을 그려내신 이두호 교수님께서 특별한 제안을 하셨다. 본인이 만화를 배울 때는 대개 도제식 과정을 거쳐서 7~8년 이상 만화수업을 하고 작가로 연재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씀하시며, 그러한 도제식 과정은 하루 20시간 이상 작화테이블에 앉아 작업을 할 수 있는 집중력 훈련이었다고 회상하셨다. 하지만 이제 만화를 배우기 위해 대학교 만화관련학과에 입학한 학생들은 그러한 도제식 과정이 아닌 대학의 커리큘럼을 따라 공부하다보니 교양과목, 아르바이트, 동아리, 학생회, 축제, 소개팅 등 도대체 언제 만화에 전념하며 작업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걱정이셨다. 그러면서 본인이 여름방학이 되면 만화전공 학생들 30여명을 데리고 산속 폐교에 들어가 9박10일 정도 도제식 만화교육의 진수를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제안을 하셨다.

경향신문

당시 동료교수로서 필자는 그러한 교육방식이 지금 학생들에게 가능하겠냐는 기우와 그러한 과정의 운영, 예산, 안전문제 등을 걱정했다. 하지만 당시 이두호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참가비를 본인부터 각출하며 참여를 독려하셨다. 6월 말 충청도 산골에 있는 폐교를 기도원으로 사용하던 목사님에게 허락을 얻어내고 학부학생 30여명을 데리고 시작했던 캠프가 일명 ‘만화지옥캠프’로 명명된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의 하계만화창작캠프다.

방충망도 없던 교실에는 모기떼가 득실대고 제대로 된 화장실과 샤워실도 없던 공간에서 학생들은 난생처음 하루 20시간 이상 고강도 작업을 경험하게 된다. 자신들과 똑같이 작화를 하시는 이두호 교수님의 솔선수범에 딴청을 피울 수도 없었고, 9박10일 내에 30페이지 이상의 단편작품을 완성해야 하는 미션이 학생들에게 오기를 발동시켰다. 이렇게 작품을 완성시킨 학생들을 마지막 9일째 위로방문했던 필자는 어딘가 다른 기운에 놀라게 된다. 학교담벽에 붙여진 학생들의 완성작품을 평가받는 시간, 학생들은 자신들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성취감에 이미 어떠한 교육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성숙한 눈빛을 내뿜고 있었다.

이렇게 10여년 지옥캠프전통이 무르익을 무렵, 이두호 교수님에 이어 <공포의 외인구단>의 이현세 교수님이 캠프촌장을 맡았고, 이때부터 네이버웹툰의 편집장이 위로방문을 시작한다. 국내 유력 웹툰앱이었던 네이버웹툰에서는 학생들 작품에서 새로운 시도를 확인하기 시작했고, 우수 단편들을 선정하여 연재하기 시작한다. 작품의 수준이 확인되면서 여타 다른 포털사이트의 웹툰앱 편집장도 방문하게 되었고, 결국 2013년에는 20여개의 웹툰앱과 만화잡지사 편집장들이 우수작가를 선점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게 된다. 이런 성과를 지켜보던 네이버웹툰은 새로운 기획을 제안한다.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학생 이외에도 이런 캠프에 참가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고 전국 모든 웹툰앱 편집장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공론화하자는 것이었다. 물론 캠프경비는 네이버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여유 있게 충당되었다.

2014년부터 5개년 계획으로 시도된 이러한 만화지옥캠프는 2018년인 올해, 장래 웹툰작가를 꿈꾸는 총 100명의 전국 대학생들과 이미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웹툰작가가 된 15명의 멘토들이 함께 참가하여 명실상부한 작가양성 만화캠프가 되었다. 이제는 쾌적한 대형연수원 시설에서 에어컨과 수세식 화장실, 샤워실, 개인침실 및 작업실 공간을 배정받으며 무료로 캠프에 참가할 수 있고, 전국 40여개의 웹툰앱 편집장들이 마지막 평가 당일 참석해 바로 연재계약까지 가능한 협의를 진행한다. 캠프촌장인 이현세 교수는 좋은 시설의 안정된 작업환경을 보장하면서도 이렇게 강조한다. “이제 이처럼 천당 같은 시설에서 작업을 하니, 실제 더 어려울 수 있다.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도 멋진 작품의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게 지옥이지!”

대학의 실험적인 교육모델이 대기업의 사회적 후원을 이끌어내고, 그러한 후원의 발판으로 전국의 대학생들이 산업계와 직결된 맞춤형 교육과 취업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 아직도 우리에겐 도전할 때 희망이 있음을 보여준다. 여전히 은퇴하셨음에도 18년째 이두호 교수님은 캠프에 동참해서 손자 같은 학생들 작품을 묵묵히 지켜보시며 어린 작가들과 눈을 맞추고 격려하신다. 가슴에 남겨지는 원로의 모습이다.

<한창완 세종대 교수 만화애니메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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