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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이 청년들을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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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인구 1000만명에 식당 숫자는 12만 개가 넘는다. 식당 한 개에 80여명의 인구가 물려 있다. 서울시에 그토록 식당이 많은 건 대부분 생계형 영세업의 숫자가 많기 때문이다. 떡볶이집, 김밥집, 분식집, 삼겹살집, 호프집, 치킨집이 다수를 차지한다. 알다시피 이런 집들이 오래 버티지 못한다. 레드오션의 절정이고, 이른바 ‘인테리어가게 돈 벌어주는’ 조기 폐업이 다수다. 흔히 도시 노동자들의 이동 순서가 회사-삼겹살집이나 치킨집-말단 노동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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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고용에서 밀려나면 더 가혹한 개인 경쟁상태로 내몰리고, 그마저 폐업하면 일당 노동자로 떨어진다는 얘기다. 월급생활자가 아닌 자영업자들이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던 전통적 업종들이 폐업하는 것도 이런 계층 하락의 주요 요인이다. 지물포, 페인트가게, 전기상, 세탁소, 슈퍼마켓, 문방구, 이발소 등은 이제 동네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어엿한 세탁소 사장님들은 대형 세탁체인의 말단으로 떨어지고, 슈퍼마켓 주인도 본사의 ‘현장 영업대행자’에 불과한 편의점 주인이 된다. 이마저도 이익이 안 나면 최저임금 수준의 경비원, 청소용역업의 파견직 노동자로 살아나간다. 버스나 지하철의 새벽 첫차가 얼마나 만원인지 안 본 사람은 모른다. 시내로 출근하는 말단 노동자들이 지하철을 가득 메운다. 이런 와중에 청년들 문제는 더 심각하다.

고용이 안되니 자영업으로 진출해야 하는데, 그 목표가 대개 카페와 술집, 식당이다(벤처는 아무나 하나). 망원동이니 연남동이니 하는 신흥 유흥지구의 가게를 가보라. 상당수가 생애의 첫 본격 직업으로 요식업을 택한 친구들이다. 소비 인구는 줄고, 시장에 진출하는 청년들까지 넘치면서 요식업 시장은 일대 격전지가 되었다. 어딘가 뜬다 싶으면 빚을 내서라도 가게를 얻고, 그렇게 영업을 열심히 하다보면 가겟세가 오른다. 가겟세, 즉 임대료는 곧 부동산(건물) 가치의 바로비터다. 그렇게 건물 가치를 올려주는 건 집안 돈 끌어대어 영업한 어린 친구들인데, 이익은 건물주가 획득하게 된다. 영업 실패로 종잣돈을 까먹고 물러나도 이미 올라간 임대료는 절대 내려가지 않는다. 건물 가치 하락을 바라지 않는 건물주가 임대료를 내려줄 리 만무하고, 법망을 피해 무리한 임대료 상승이나 요구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청년 창업에 애를 쓸 수밖에 없다. 고용이 늘지 않으니, 창업해서라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그 시장이 불행히도 가장 망하기 쉽다는 요식업이라는 건 그야말로 나라의 불행이 되고 만다. 아버지는 회사 다니다가 쫓겨나서 고깃집 하다가 폐업하면 경비원이 된다치고, 그 아버지의 종잣돈을 얻어서 호프집과 카페 열어서 문 닫은 청년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허망한 말 말고, 그들이 시민으로서 존엄성을 지키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장사가 안되는 건 그저 “너희들이 운이 나빴어”라고 하고 끝날 일인가.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은 청년들은 어찌할 것인가. 이 아이들을 정말 어찌할 것인가(칼럼 제목은 이오덕 선생의 산문집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에서 차용).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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