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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정동칼럼]회의론과 장기적 관점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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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2일, 북·미의 정상들이 70년 묵은 적대관계를 변화시킬 새로운 시작을 선언했다. 세계는 이전에 보기 힘들었던 모습을 경이로이 바라보면서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회의론과 부정적 여론이 지배했다.

경향신문

필자는 싱가포르 현장 가까이서 관찰한 후 곧바로 독일, 미국, 일본, 그리고 중국을 돌면서 각국의 정부 관계자들 및 한반도 전문가들과 관련 대화를 나누었다. 결론은 다음과 같이 냉소적으로 표현될 수 있겠다. 세계에서 트럼프를 믿는 국가는 한국과 이스라엘뿐이고, 트럼프와 김정은을 동시에 믿는 국가는 한국뿐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 외에는 모두가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라는 목표 달성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회의론자들은 줄곧 트럼프와 폼페이오의 긍정적 평가와 자화자찬에 의심의 눈을 거두지 않다가, 회담 이후 3주간의 소강 상태와 이후 폼페이오의 3차 방북 결과를 놓고 기다렸다는 듯이 비판적 견해들을 쏟아내고 있는 형국이다. 트럼프의 허장성세였을 줄 알았다는 반응과, 북한은 얻을 것을 이미 얻었고, 비핵화의 진정성은 원래부터 없었으며, 따라서 과거의 반복일 뿐이라는 반응이 가장 많다. 센토사 회담의 성패 여부를 후속 조치를 위한 북·미 고위급회담으로 미뤘던 셈인데 이마저 성과가 없이 끝났으니 정상회담도 실패라는 논리다.

그런데 회의론자들은 북·미 정상이 구체적 합의를 했다고 하더라도 믿지 않거나 실행과정 국면마다 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다. 회의론의 장점은 섣부른 기대를 만들어 실패할 때 더 큰 상실감을 가지게 되는 낙관론의 함정을 피할 수 있고, 예상치 못한 성공이 가져다주는 행복 배가의 가능성이 크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회의론은 성공이나 변화에 대해 전적인 우연에 의존한 장점보다 훨씬 더 치명적 함정을 지닌다.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특히 현재 벌어지는 전혀 다른 비핵화 게임에는 매우 부적합하다. 북한의 핵무기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회의론으로 접근해도 검증이나 제재를 통해 비핵화를 끌어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북한의 자발적 핵폐기 없이는, 그리고 그 핵폐기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비핵화는 영원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회의론자들은 믿지 않을 것이기에 비핵화의 성공에 도달할 수 없다. 바뀐 게임의 핵심은 신뢰라는 것을 그나마 트럼프는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계약을 지킬 것이고 더 중요하게는 그때 한 악수를 지킬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함으로써 회의론을 반박했다.

비핵화 프로세스에 대한 전적인 부정은 아니지만, 단기간에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상당히 많다. 대표적으로 중국이 그렇다. 중국은 사실 비핵화와 북·미관계 개선에 대해 양가적 감정을 가진다. 북핵이 그동안 미국의 지속적인 대중 압박의 빌미였기에 비핵화 과정을 지지하지만, 동시에 이 과정에서 미국의 한반도 영향력이 커지거나 북한이 지나친 대미 접근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우려한다. 그래서 중국은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천천히 가기를 원한다. 트럼프까지 반복적으로 중국의 배후에서의 훼방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지만, 중국으로서는 억울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이 합리적이며 현실적으로 보이지만 북핵 문제 해결에는 회의론 못지않은 깊은 함정이 존재한다. 가장 큰 이유는 지난 25년간 북한핵 문제 해결에 실패의 주요 이유 중 하나가 시간제한이 없었다는 것이고, 또한 현재 미국 조야의 지배적인 반대 분위기를 트럼프와 폼페이오 두 사람이 막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장기적 관점은 현재보다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속도전이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북·미 협상의 소강국면, 회의론, 그리고 장기적 관점으로 인한 첫 장애물에 직면한 가운데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때가 왔다. 북한은 자신들이 포기한 것에 비해 미국이 정치적 종전선언마저 거부한다면 대미 신뢰가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록 북한이 선제적으로 더 많이 포기해야 하는 것을 인지하고 하더라도 제재완화는커녕 정치적 종전선언까지 받아낼 수 없다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비핵화 이전에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면 그것은 용어만 사용하지 않았을 뿐 ‘선 비핵화, 후 보상’의 리비아모델 재현이다. 한국이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에 대한 ‘교차보증’에 나섬으로써 막힌 혈로를 뚫어 평화 프로세스를 ‘촉진’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미국을 움직여야 한다. 지금은 조심할 때가 아니라 나설 때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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