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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4차혁명 시대, 사회과학 진보는 실용적 진보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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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짬] 성공회대 새 총장 김기석 신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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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1일 성공회대 8대 총장에 취임하는 김기석 신부(59)는 ‘실용적 진보’란 표현을 썼다. “성공회대가 그간 추구해 온 민주와 인권, 평화의 가치가 사회에 분명히 긍정적 기여를 했어요. 하지만 거기에 머물러선 안 됩니다. 비판적 사고 능력을 키운 졸업생들이 기업과 기관에 가서도 실무 역량을 인정받아야죠.” 인문학적 성찰에 더해 실용적 가치도 입증할 수 있는 인재 양성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6일 서울 구로구 항동 성공회대 연구실에서 김 신부를 만났다.

“4차 산업혁명과 기후변화와 같은 큰 시대적 의제 앞에서 과거 사회과학 진보가 다 답을 줄 순 없어요. 유연하고 다양한 관점, 경쟁력 있는 진보가 필요해요.” 평화와 생태를 예로 들었다. “남·북, 남·남 갈등을 극복하고 평화로 이끌 수 있는 실무 능력이 필요해요. 남북 협력 시대에 북 공동체를 개발할 수 있는 능력도 키워야겠죠. 기후변화 시대엔 탄소절감이 과제입니다. 인공지능이나 사물인터넷 기술을 가지고 지속가능한 친환경 공동체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스마트-에코 캠퍼스’ 조성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가급적이면 건물까지 포함해 대학 캠퍼스를 생태학과 아이티(IT)가 결합한 첨단 생태공원으로 만들고 싶어요.” 또 “사회적 가치를 위해 기업과 정부, 지자체와 협력해 ‘더불어숲’을 가꾸어가고 싶다”는 얘기도 했다.

‘진보의 성채’로 여겨지는 대학이지만 총장 선출 방식은 그다지 진보적이지 않다. 이사회에서 총장추천위를 꾸려 후보를 정한 뒤 이사 3분의 2 찬성으로 뽑는다. 후보 자격도 성공회 사제에게만 준다. 이 대학 정규 교수 90여 명 중 사제는 5명 정도다. “교수회는 성직자만 후보가 되는 규정을 바꿔야 한다고 해요. 저도 이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말을 이었다. “교단은 대학의 정체성 유지에 일차적 관심이 있어요. (교단은) 그동안 교수 채용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어요. 사제 아닌 총장에 걱정하는 이유죠. (교단과 구성원이) 서로 신뢰가 있다면 제한을 푸는 게 가능하겠죠. 아직은 신뢰가 충분하지 않아요. 저는 양쪽 입장을 절충해 소통하도록 해야겠죠.” 이런 말도 했다. “성공회가 일제 강점기 때 진명(혹은 신명)이란 이름의 학교를 여러 곳에 세웠어요. 교회가 사회로 환원시킨 이 학교들이 나중엔 다 사유화되어 사라져버렸어요.” 교단이 대학 운영에 책임감을 느끼는 데는 이런 역사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얘기다.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흙수저’도 아닌 ‘무수저’로 표현했다. “충주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어머니가 돌아가셨죠. 그리고 생존의 맨 밑바닥까지 내려갔어요. 초등학교를 나온 뒤 5년 동안 공장에서 일하고 장사도 했어요. 주물 공장 시다로 맨홀 뚜껑도 만들었죠. 누나 도움으로 중·고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쳤어요.” 기독교는? “누나 도움으로 대입을 준비하고 있을 때 갑자기 누님이 아파 돌아가셨어요. 그때 누님 영혼을 위해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음달 1일 4년 임기 시작
“인문학 성찰 더해 실무능력
입증할 수 있는 졸업생 키울터


스마트-에코 캠퍼스가 꿈”

초등 마치고 5년동안 공장 일해
의지하던 누나 별세 뒤 ‘예수’ 만나


1980년 항공대에 들어갔지만 1년만 다녔다. 당시 대학 선배를 따라 성공회 성당에 갔다가 “은혜를 느꼈다”고 했다. “(성공회) 신앙이 편협하지 않더군요. 합리적 사고를 신앙에서 긍정적으로 수용하더군요. 매력을 느꼈죠.” 그는 성공회 신학의 특징을 이렇게 풀었다. “성공회는 뱀이 아담과 하와를 선악과로 유혹했다는 성경 내용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아요. 이를 인간의 실존이란 맥락에서 성찰합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고통과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소외된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로 받아들이죠.”

군을 마치고 1984년 천신 신학대(성공회대 전신)에 들어갔다. 사제 서품은 1990년에 받았다. 8년 뒤엔 영국 버밍엄대로 유학 가 ‘과학과 종교 사이 관계’를 주제로 박사를 땄다. 그리고 2004년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영국에서 처음엔 선교학을 공부하려 했어요. 그런데 버밍엄대 도서관에서 과학과 종교 사이 관계를 깊이 있게 다룬 책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서가 몇 칸에 그 분야 책이 빼곡했어요. 검정고시를 준비할 때부터 과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는 영국의 이런 학문 축적을 근대 과학의 탄생 이후 역사 속에서 설명했다. “영국은 근대 과학을 탄생시킨 나라이면서 2천년 동안 기독교 문화권에 있었죠. 근대 과학 이론을 하나씩 정립할 때마다 지식인들은 신앙에 비쳐 그 의미를 음미하고 성찰했죠. 지식인 대다수는 성직자였어요. 심지어 19세기까지도 영국 과학을 이끈 지도자들 대부분이 성직자였죠. 1859년 진화론이 나온 그다음 해 있었던 유명한 창조-진화론 논쟁을 이끈 영국과학진흥협회 회장도 성공회 옥스퍼드 교구 부주교인 새뮤얼 윌버포스였어요. 당시 성공회 주류는 진화론을 찬성했죠. (진화론을) 하나님의 ‘계속된 창조’로 보고 다윈이 잘 밝혔다고 했어요.”

그는 과학과 종교는 상호 보완 관계라고 했다. “핵무기에서 보듯 과학은 인간에게 위기도 가져옵니다. 이를 극복하고 문명을 유지하려면 윤리 능력이 필요해요. 이 점에서 종교는 시대에 뒤떨어진 유물이 아니죠.” 그럼 과학은 종교에 무엇? “우리가 우주 기원이나 생명의 역사를 알게 된 게 불과 100년 전입니다. 종교는 과학을 통해 하느님의 선물인 자연과 우주의 신비를 더 깊이 깨닫고 경외감을 느낄 수 있어요. 더 겸손해지도록 하죠.”

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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