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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가짜뉴스 또 기승…신고센터 무용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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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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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정지영 씨(27)는 최근 카카오톡에서 '종각역에서 이슬람인들이 '타하루시' 집단 성폭행을 모의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집단 성폭행으로 알려진 '타하루시'를 이슬람인들이 종각역에서 모의했다는 내용이었다. 정씨가 속한 봉사활동 단톡방에서 이 메시지가 퍼지자마자 단톡방은 난리가 났다. 사람들은 "끔찍하다" "충격이다"라면서 메시지를 퍼날랐다.

그러나 정작 정씨가 받은 것은 '가짜 뉴스'였다. 비슷한 시기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도 '이슬람 종교를 가진 외국인들이 서울 도심에서 집단 성폭행을 모의하고 있다'는 내용의 게시물이 올라와 있었다. 이 게시물은 외국 커뮤니티에 한 남성이 전 세계 165개 지역에서 강간 합법화 지지자 집회를 열 것이고 그중에는 종각역도 포함돼 있다는 기사를 인용하면서 '이슬람인들이 집단 강간을 모의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게시물은 사실이 아니었고 타하루시가 중동에서 자행되는 집단 강간 문화를 일컫는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었다. 정씨는 "이후 방송과 뉴스에서 '타하루시'는 이슬람 문화가 아니고 잘못 알려진 것임을 알게 됐지만 이미 친구들끼리 메시지를 많이 퍼나른 뒤여서 후회했다"고 했다.

6·13 지방선거 이후 잠잠했던 가짜 뉴스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가짜 뉴스'로 불리는 허위 정보가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블로그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메신저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가짜 뉴스는 대중에 의해 아무런 검증 없이 사실로 받아들여지거나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되고 있다. 특정 종교를 비하하고 모독하는 자극적인 발언이 손쉽게 SNS나 인터넷 게시판을 타고 확산하고 이 같은 사실이 또다시 포털 등에 의해 주요 뉴스로 취급되면서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고 증오를 증폭시키는 피해를 불러일으키지만 이를 막을 자율규제는 물론 법·제도가 없어 속수무책인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말 러시아 방문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문재인 대통령은 '가짜 뉴스'의 주인공이 됐다. 문 대통령이 병가를 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페이스북 유튜브 등 SNS에는 '문 대통령이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게시물이 퍼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근거 없는 소식은 확산됐다. "치매 증상을 보인다" "청와대가 침묵하는 것을 보니 수상하다" 등 낭설이 이어졌다. 이틀 뒤 문 대통령이 건강한 모습으로 공개 석상에 나타나자 낭설 확산은 잠잠해졌지만 이미 SNS는 유언비어로 출렁거린 뒤였다.

최근 제주 예멘 난민 수용 문제로 사회적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슬람인에 대한 유언비어를 담은 가짜 뉴스도 기승을 부렸다. 이슬람 문화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근거 없는 정보가 사실인 양 확산했다. 한 예는 제주 예멘 난민들이 해외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난민 지원이 형편없어 예멘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등의 불평을 했다는 글이었다. 이 글은 인터넷 게시판에 급속도로 확산됐는데 알고 보니 난민이 "예멘이 평화로워지면 가족들이 있는 고향에 가고 싶다"고 말한 게 불평한 것으로 왜곡된 것이다.

'무슬림 남성들에게 성폭행당한 영국 여성들'이란 사진도 SNS에서 퍼졌다. 그러나 해당 사진은 미국 한 경찰관이 여성 범죄자를 과잉 진압했다는 내용의 기사에 담긴 사진이었다.

이 같은 허위 정보는 대립이 첨예한 사회적 이슈나 정치적 이벤트가 발생할 때마다 일부 세력에 의해 악용되면서 여론을 왜곡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과 정부 모두 가짜 뉴스를 막을 방법을 못 찾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가짜 뉴스가 사회문제로 부각되면서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정보기술(IT) 기업들 주도로 가짜 뉴스 신고센터를 만들었는데도 실효성이 없는 실정이다.

지난 5월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IT 플랫폼으로 구성된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가 가짜 뉴스 신고센터를 개소했다. 그러나 KISO 관계자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가짜 뉴스 신고가 많지 않다"고 했다.

신고 대상인 가짜 뉴스에 대한 규정이 SNS에 떠도는 '메시지' 형식과 맞지 않는 구조적 문제도 있다. 신고 대상 가짜 뉴스는 '뉴스' 형식의 허위 사실로 판명된 게시물에 한정된다. 신고자는 신고 사유와 가짜 뉴스를 발견한 주소(URL)를 담은 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카카오톡 등 사적 메신저는 URL이 없다. 또 지라시 형태의 글은 뉴스 형식보다 단정적 표현의 문서다.

페이스북은 '여론을 호도할 목적으로 뉴스 형식을 띤 채 생산된 게시물'에 한해 가짜 뉴스를 규제하지만 이러한 형식을 벗어난 게시물은 제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카카오는 "카카오톡은 사적 메신저여서 내용을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에 '가짜 뉴스'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면서 어떠한 조치도 내놓지 않고 있다.

IT업계 관계자는 "가짜 뉴스는 단정적 표현으로 떠도는 메시지인데 '뉴스' 형식을 띠지 않았다고 버젓이 유통되는데도 막지 않는 것은 사회적 혼란을 부추길 뿐"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가짜 뉴스 규제는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카카오톡은 공적 성격의 SNS라기보다는 사적 메신저에 가깝다"며 "가짜 뉴스를 잡겠다고 이를 들여다보는 것은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일 수 있기에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고 가짜 뉴스를 막을 방법을 사회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이선희 기자 / 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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