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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수령 폐지→계엄령 검토, 탄핵 촛불 속 입장 바꾼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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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국면별 대비방안’ 문건에서 계엄선포 시 대비방안을 언급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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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기까지 132일, 서울 광화문을 비롯해 전국에서 토요일마다 촛불집회가 열렸습니다. 연인원 1,700만명이 참가한 대규모 군중집회는 평화롭게 진행됐지만, 정권을 지키려는 이들에게는 위협적인 규모였습니다.

첫 촛불집회가 열린 닷새 뒤부터,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이 내려지기 며칠 전까지 군은 정세를 분석하고 계획을 세우며 기민하게 움직였습니다. 그 일단을 보여주는 문건들이 최근 연달아 공개되며, 기무사의 정치 개입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요 문건을 공개한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방부에 요구한 '위수령 폐지' 관련 의정자료가 뒤섞이면서, 문건 생산 경위에 대한 진실공방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촛불집회와 맞물려 생산된 기무사 문건의 생산 경위와 주요 내용을 하나씩 짚어봅니다.

탄핵 촛불 켜진 132일…문건 속 기무사의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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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구 국방장관이 작성을 지시한 ‘군의 질서유지를 위한 병력 출동 관련 문제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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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現 시국 관련 국면별 고려사항〉(16.11.03~04)

국군기무사령부의 주 임무는 군사보안과 군 방첩 및 군에 관한 첩보 수집입니다.

그런데 첫 촛불집회를 목격한 뒤인 11월 3~4일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국면별 대비방안〉이라는 문건과 이를 발전시킨 〈現 시국 관련 국면별 고려사항〉이라는 문건을 작성합니다.

모두 기무사령관 보고용으로 추정됩니다.

기무사는 문건에서 ▲대통령 하야(탄핵)시, ▲대통령 유고 상황 발생시, ▲시위대 청와대 점거 시도시, ▲계엄 선포시로 각 국면을 나눈 뒤 과거 유사 사례 시 조치 결과와 현재 대비 상황, 법적인 절치 등을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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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점은 기무사가 촛불집회 초기 이미 '계엄'에 대비한 조치를 검토했다는 점입니다

일부에서는 계엄 선포 시 기무사령관이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기 때문에 관련 검토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통상 계엄사령관은 합참의장이 맡고 주무부서도 합참 계엄과입니다.

굳이 검토를 한다면 주무부서에서 하는 게 상식적이지 않느냐는 의문이 드는 대목입니다.

비슷한 시기 작성된 〈통수권자 안위를 위한 軍의 역할〉도 역시 계엄령 선포 상황에 대비한 기무사의 역할을 밝혀두고 있습니다.

기무사는 사이버 전문팀을 운용해 테러 및 시위 관련 첩보수집을 강화하고 계엄령 선포 시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한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문건에는 '시위대 청와대 진입 등 최악의 국면에 대비한 軍 조치사항'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어, 군이 촛불집회 초기부터 촛불시위대가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을 검토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문건이 이후 어떤 식으로 발전돼 누구에게 어떤 형식으로 보고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② 〈위수령에 대한 이해〉(17.02.17~18)
〈군의 질서유지를 위한 병력 출동 관련 문제 검토〉(17.02.24)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2017년 2월 〈위수령에 대한 이해〉와 〈군의 질서유지를 위한 병력 출동 관련 문제 검토〉라는 두 문건을 작성합니다. 두 문건은 온전히 법률 검토로만 채워져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의 '위수령 폐기 필요성' 질의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며 작성한 문건이라는 게 국방부 측 설명입니다.

촛불집회와 관련한 기무사의 움직임을 설명하면서 국방부의 이 문건을 언급하는 것은, 이것이 기무사의 최종 문건, 그리고 그 함의를 추정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위수령에 대한 이해〉 문건의 결론은 위수령이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이고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정치권의 요청으로 생산돼 국방부의 공식 입장으로 공개될 가능성이 높은 문건에서, 계엄이나 병력출동에 관해 언급한 대목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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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관련 검토 내용이 다시 등장한 것은 〈군의 질서유지를 위한 병력 출동 관련 문제 검토〉 문건입니다.

이 문건은 병력출동의 근거와 한계를 ▲비상계엄 ▲위수령 ▲부대직제령 ▲기타 규정으로 나누어 검토하고, 군의 문기 사용 가능 범위까지 살폈습니다.

이 문건은 이철희 의원이 질의한 '위수령'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이 의원 측은 "문건 작성자가 '국방부장관의 지시로 해당 문건을 작성했다. 왜 그런 지시를 내렸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해명했다"고 말했습니다.

국방부 측은 해당 문건이 문제가 되자, 답변 자료 작성을 위해 검토한 것일 뿐 실제 병력 출동을 검토하거나 준비했던 것은 아니라고 해명한 바 있습니다.

③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17.03 초)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 임박한 3월, 토요일마다 어김없이 광화문에는 100만 명이 운집해 촛불을 들었습니다.

18차례 넘게 진행된 촛불집회에서는 과격 시위대나 폭력행위가 전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무사는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이라는 문건을 작성했습니다.

헌재의 탄핵 여부 결정 이후 '촛불집회' 측이든 '태극기 집회' 측이든 결과에 불복한 대규모 시위대가 청와대나 헌재 진입을 시도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대비계획을 세웠습니다.

위수령 발령, 계엄 선포에 대한 구체적인 절차뿐 아니라 어떤 부대를 어떻게 움직일지까지 구체적인 계획이 나열됐습니다.

'사문화' 평가했던 위수령을 다시 검토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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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일 위수령에 대해 폐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국방부가 10여일 만에 계엄령 시행까지 입장을 다시 바꾼 겁니다.

문건은 '초기에는 위수령을 발령해 대응하고, 상황 악화 시 계엄 시행을 검토한다'고 적시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위수령'이 다시 등장합니다.

위수령만 발령되면 군은 청와대 '위수'를 명분으로 관할 외 부대, 그러니까 특전사나 공수부대까지도 청와대 인근으로 불러들일 수 있습니다.(위수령 8조, '(증원) 요청을 받은 부대장은 정당한 사유없이 거절할 수 없다')

문건은 심지어 위수령 발령 요청권을 갖고 있는 '시·도지사가 병력을 요청하지 않을 경우에도 군의 중요시설을 위주로 전담 방호할 수 있다'고 적었습니다. 이때 '중요시설'은 청와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문건은 이어 '시위대가 군 중요시설에 접근 시 경찰 협조 아래 외곽 경계선을 확장시켜 조기 접근통제할 수 있다'고 밝힙니다.

청와대 외곽에 광화문이 있습니다. '외곽 경계선 확장'을 명분으로 청와대 바로 인근인 광화문에까지 탱크나 장갑차를 배치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국방부 내부 검토에서 사문화됐고, 위헌소지가 있다고 결론내렸던 바로 그 '위수령'을 이용해서입니다.

기무사는 문건에서 위수령이 위헌소지가 있다고 자세히 설명하면서 별도의 '제한사항 해소방안'까지 적시했습니다. 이미 '위수령'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이를 이용해 촛불집회가 열리는 광화문까지 군 병력을 이동시킬 수 있는 방안을, 자세한 부대까지 거론하며 적시한 것입니다.

위수령 발령에도 혼란이 가라앉지 않으면, 시위대가 출동한 군에 항의하면, 다음 절차는 무엇일까요? 문건은 '계엄 선포'를 적시해놨습니다.

문건을 확보해 공개한 이철희 의원 측은 이같은 정황을 들어 "이 문건은 단순한 검토가 아니라 실제 군 부대 출동을 염두에 둔 계획"이라고 추정합니다. 기무사의 '문건'은 탄핵이 인용되고 시위대의 헌재나 청와대 습격 등 대규모 소요가 일어나지 않아 '문건'으로만 그쳤습니다.

위수령 폐지부터 계엄령 검토까지... 촛불집회 동안 오락가락한 국방부

촛불집회가 시작된 2016년 10월 19일부터 탄핵 결정이 내려진 2017년 3월 10일까지, 기무사를 중심으로 위수령에 대한 국방부의 입장은 극단을 오갔습니다.

처음에는 계엄 상황에 대한 행정 절차를 검토했고, 마지막에는 위수령과 계엄에 대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위수령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말입니다.

기무사의 첫 문건이 만들어진 2016년 10월부터 구체적인 병력 이동 계획이 담긴 문건이 생산된 2017년 3월까지 기무사의 움직임은 아직 물음표로 남아있습니다. 누구의 지시로 어떻게 발전돼 나갔는지는 이제 독립수사단이 밝힐 몫입니다.

조태흠기자 (jotem@kbs.co.kr)

구경하기자 (isegori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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