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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이동준의 일본은 지금] 평생 자녀 없는 여성 30%…“아이가 여성의 행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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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고령화가 심각한 일본에서 자녀 없이 평생을 사는 여성이 향후 30%에 이를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왔다.

이들이 출산하지 않는 배경에는 고용불안과 급속한 만혼화로 출산 시기를 놓치는 등 결혼 외에도 많은 이유가 있다.

일본 정부와 사회는 여성의 사회진출을 독려하며 ‘일하면서 육아하기 좋은 환경 만들기’에 노력을 기울이지만 버블경제 붕괴 후 이어진 장기불황 속 등장한 문제가 20여년이 지난 지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일보

■ 아이 없이 맞벌이하는 ‘DINKs(딩크)족’의 등장

1990년대 초반 연평균 4.6%의 경제성장을 기록한 일본경제에 거품이 빠지면서 무려 10년간 장기불황이 발생하고, 그 후 2008년 리먼 사태의 발발로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는 ‘실업 쇼크’가 일본 열도를 덮쳤다.

그 과정에서 아이 없이 맞벌이하는 딩크족이 슬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만 해도 여성이 결혼해서 아이를 갖지 않으면 매우 큰 문제로 인식되며 여성의 시부모는 물론 친부모인 친정어머니로부터 따가운 질책을 받았다.

남성의 경우도 결혼하지 않으면 책임감이 부족한 것으로 인식돼 중요업무나 승진기회가 줄어드는 등 결혼과 출산은 남녀 모두가 반드시 수행해야 할 임무와도 같았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인 리먼 사태로 살인적인 구조조정이 진행되어 직원의 20%가 해고되며, ‘출산휴가=퇴직휴가‘라는 인식이 컸던 상황, 앞선 압력과 따가운 눈초리에도 부부의 미래, 자신의 미래, 더 나가 자녀의 미래가 불투명한 안타까운 현실이 딩크족 증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영향은 지금 40대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근무하는 한 여성(47)은 남편(46)과 결혼한 후 부부가 함께 외식하고 1년에도 여러 번 해외여행을 다니는 등 여유로운 생활을 하면서도 자녀를 두지 않는다.

이들의 주변 역시 자녀가 없는 부부가 대부분으로, 사정이 비슷한 이들끼리 모여 파티나 여행을 즐기며 산다. 반면 불임 치료에 힘쓰고 있는 커플도 있는데 40대 중반을 넘어선 지금 치료가 쉽지만은 않은 게 현실이다.

여성은 "리먼 구조조정 당시 굳게 마음먹고 아이를 낳는 상상을 할 때도 분명 있었고, 세간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는 게 무서웠다“며 “자녀를 낳는 건 각자 생각하고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 가까운 미래 평생 자녀 없이 사는 여성 30%

이러한 문제는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 연구소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1955년생인 여성 중 자녀가 없는 비율은 12.6%였지만, 1970년대 태어난 이들은 두 배가 넘는 28.2%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소는 합계 출산율이 1.4명인 지금 추세가 계속 이어지면 전체 여성의 약 30%는 평생 자녀 없는 삶을 살게 된다고 지적했다.

■ 출산하지 않는 이유

자녀가 없는 28세~61세 여성을 대상으로 ‘출산하지 않는 이유(못한 이유)’를 묻자 복수응답으로 시기를 놓쳤다는 응답이 34.1%로 가장 많았다. 이어 질병·건강문제 29.3%, 육아가 자신 없다는 의견이 24.7%로 그 뒤를 이었다. 반면 처음부터 출산을 계획하지 않은 여성은 단 8.2%에 그쳤다.

시기를 놓쳤다고 응답한 여성들은 만혼으로 출산이 어려웠던 이유가 컸는데, 고령 임신이 대부분인 이들은 앞선 설문의 ‘질병·건강문제’가 더해져 출산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성들은 “아이를 원치 않는다”는 생각보다 결혼 시기, 건강 그리고 직장 문제 등 다양한 개인사가 얽혀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임신과 출산은 여자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이란 말에 ‘반기(反旗)’

신문에는 결혼과 무관하게 ‘출산할 수 없었던 이유’가 구구절절 늘어졌다.

남편의 사망, 암 등의 질병, 이혼 등 이유는 평생 자녀를 두지 못한 여성들의 숫자만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소셜 미디어(SNS)에는 ‘아이가 없는 삶을 생각하는 모임‘이 구성돼 1000여명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있을 정도다.

반면 이러한 사정은 뒷전으로 한 채 여성을 향한 비판은 지금도 이어져, 일본의 한 정치인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젊은 층이 많다”는 말로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왜 자녀를 낳지 않았나”라는 질문이 누군가에게는 배려가 부족한 가슴 아픈 말이 될 수 있다. 출산률을 높이기 위한 대책이 진행되는 가운데 ‘아이가 없는 인생’도 존중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일보

불임으로 자녀를 포기한 한 여성은 "아이 도시락을 만들 수 없는 게 가장 아쉽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게는 자녀의 도시락을 챙기는 평범한 일이 평생 이루고 싶은 소원일지 모른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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