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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삼촌, 돈 좀…” 카톡 피싱 설쳐도 손 놓은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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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사진ㆍ호칭 실제와 같아

전화로 확인 안하면 쉽게 속아

서울 보이스피싱 피해 200억↑

구속자 늘었지만 총책은 드물어

경찰 ‘성공 평가’에 비판 목소리

포털도 정보유출에 ‘나 몰라라’
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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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최모(31)씨는 최근 쏟아지는 친척들 전화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대체 무슨 일이냐’ ‘갑자기 돈을 입금해 달라니 무슨 일 있는 거냐’ 등 안부전화지만, 최씨는 통화 내내 어리둥절해야 했다.

전말은 이랬다. 최씨가 평소 네이버 주소록에 ‘삼촌’ ‘고모’ 등으로 기록해 전화번호를 저장해 둔 친척들에게 한꺼번에 ‘휴대폰 액정이 깨져서 이체를 못하고 있으니 94만원만 대신 입금해달라’는 카카오톡 메시지가 전달됐다. 프로필 사진도 최씨 얼굴이고, 호칭도 정확하게 사용돼 친척들로서는 미리 전화로 확인하지 않는 이상 그대로 속아 넘어가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였다. 실제 친척 한 명은 94만원을 보내고 나서야 연락을 해왔다. 최씨는 “30분도 되지 않았는데 이미 돈은 인출됐다고 하더라”고 혀를 내둘렀다.

고전적인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부터 국민메신저 카카오톡을 노린 ‘메신저피싱’까지 개인정보를 빼내 사기치는 피싱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사기 수법은 이러니 주의하세요’ 등 갖가지 예방 홍보가 이어지지만, ‘피싱이었다고요, 벌써 돈을 보냈는데 어떡해요’라면서 발을 동동 구르는 피해자 하소연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실제 올 상반기 서울 시내에서만 613억원의 보이스피싱 피해가 발생했는데, 지난해 같은 기간(405억원)보다 200억원 이상 증가한 수치다.

이 와중에 서울경찰청은 “지난 2월 전담팀을 꾸려 종합대책을 시행한 결과 올 상반기에만 보이스피싱 범죄자 4,345명을 검거하고 605명을 구속했다“고 11일 밝혔다. 작년 같은 기간대비 검거 인원은 61.8%, 구속 인원은 146.5% 증가했다”라며 “인출책 이상의 ‘적극 가담자에 대한 검거에 집중’한 결과”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범죄의 핵심, 즉 보이스피싱의 실질 주범을 상당수 검거하는데 성공했다는 얘기다.

이를 두고 경찰 안팎에서는 ‘자화자찬’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통계를 자세히 뜯어보면 총책과 모집책뿐 아니라, 심부름꾼 역할인 인출책과 송금책까지 ‘적극 가담자’로 통칭해 결과를 집계했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실질적인 총책 검거는 한 자릿수”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범죄는 해외에 근거지를 두고 계획을 짜는 총책이 핵심 역할을 하기 때문에 총책을 잡아야지 인출책과 송금책은 아무리 검거해도 범죄가 근절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범죄 피해가 늘면서 네이버, 카카오 등의 책임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를 통해 개인정보가 자주 유출되고, 카카오톡 등 메신저로 각종 피싱이 이뤄지고 있는데도 이들 업체들이 사실상 ‘나 몰라라’ 하는 태도로 일관한다는 것이다. 실제 네이버에서는 주소록 접근 보안 강화를 위해 ‘2단계 인증 서비스’(로그인할 때 모바일기기를 통해 이중으로 인증)를 도입하고 있지만, 사용자의 설정 사항이라 실효성은 떨어진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최근 피싱 피해를 당했다는 직장인 정모(52)씨는 “친구가 아닌 사람에게 메시지를 받을 경우 주의하라는 문구와 신고 버튼이 카카오톡에 있다고 하지만 이용자들이 눈을 씻고 찾아봐야 할 정도로 작게 써 있더라”고 했다.

피싱 등 사이버수사를 담당하는 한 경찰은 “네이버와 카카오는 사기업이라 수사 협조를 받는데도 한계가 있다“면서 “결국 이용자가 자주 비밀번호를 바꾸고 보안 수준을 강화해 범죄를 예방하는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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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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