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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돋보기]죽은 볼을 조심하라…치명적인 한 방의 무기 ‘세트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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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이 죽어 있을 때를 조심하라. 토너먼트 무대에서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세트피스 골이다.

프랑스는 11일 열린 러시아 월드컵 4강전에서 사뮈엘 움티티의 헤딩슛 한 방으로 벨기에를 1-0으로 물리치고 결승에 오르면서 세트피스가 얼마나 치명적인 무기인지를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나온 158골 중 69골(43.7%)이 세트피스를 통해 완성됐다. 이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의 36%를 넘어서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축구는 한두 골을 위해 90분간 죽어라 뛰어다녀야 한다. 본질적으로 비효율적인 스포츠다. ‘선수비 후공격’이 유행하는 월드컵 같은 무대에선 골을 넣기가 더 어려워진다. 실수와 우연, 불확실성, 비효율성이 지배하는 축구에서 그나마 효율성을 가장 극대화할 수 있는 게 바로 세트피스다. 약속된 플레이를 통해 상대의 방어벽을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다. 수비보다 먼저 움직임을 일으켜 가속도를 높이면 알고도 막기 힘들다. 움티티의 골이 그랬다. 움티티는 키가 182㎝, 그를 막아선 벨기에 마루안 펠라이니는 194㎝로 펠라이니가 12㎝ 더 컸다. 펠라이니는 키가 컸음에도 움티티를 막지 못했다. 움직임의 주도권이 움티티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찰나의 차이가 두 팀의 운명을 갈랐다.

세트피스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약팀에는 재능의 격차를 줄여주는 회심의 무기가 된다. 강팀을 더욱 위험하게 만드는 것도 세트피스다.

신태용 한국 대표팀 감독도 약팀의 믿는 구석인 이 세트피스의 유용성에 주목했지만 말뿐이었다. 20세 이하 월드컵에서도, 이번 월드컵에서도 세트피스를 활용해 한 골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한국의 세트피스는 단순했고, 그나마 손발이 잘 맞지도 않았다.

잉글랜드는 달랐다. 잉글랜드는 8강전까지 5경기에서 세트피스를 통해 22개의 찬스를 만들었다. 파나마전에선 4번 이상 이어지는 약속된 플레이로 골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축구에서 세트피스는 이제 생존을 위한 무기가 되고 있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플레이, 대지를 가르는 스루패스, 묘기 같은 드리블을 통한 환상적인 골을 기대하는 순수주의자들의 눈에는 달갑지 않은 소식일지도 모른다. 세트피스에는 뭔가 상대를 속이는 암살자 같은 느낌이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월드컵은 세트피스가 지배하고 있다. 죽은 볼을 조심하라.

<류형열 선임기자 r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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