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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윤호근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오페라극장 설립? 관객 발굴이 먼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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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올해는 한국에 오페라가 뿌리내린 지 70년이 되는 해다. 하지만 한국에서 오페라는 여전히 소수만 향유하는 고급 문화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 공연예술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16년 오페라 관객은 총 41만9664명으로 뮤지컬(1247만2150명)의 약 3%에 불과하다. 유료 관객 비중도 36.5%로 뮤지컬(60.3%)의 절반 수준이다.

지난 2월 취임 후 3개 작품을 연달아 올리며 쉴 새 없이 달려온 윤호근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51)은 70년 역사를 돌아보며 "오페라가 양적으로 정말 많이 성장했다"면서도 "그런데 여전히 '그 많은 돈을 들여 왜 만드냐'는 질문을 받는다. 이제는 관객과 공감대를 쌓아야 할 차례"라고 했다. 윤 예술감독 취임 후 국립오페라단이 선보인 작품에서도 이런 목표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최근 막을 내린 오페레타 '유쾌한 미망인'은 뮤지컬보다 더 재미있는 오페라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다. 하반기 엥겔베르트 훔퍼딩크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은 완성도 높은 음악과 더불어 아기자기한 무대로 어린아이와 부모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족 오페라다.

"어릴 때부터 오페라를 접하게 해 미래의 관객을 발굴해야 합니다. 쉽고, 재미있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오페라를 많이 선보일 겁니다. 오페라인만을 위한 오페라는 만들지 않겠습니다."

윤 예술감독은 이제껏 주로 독일에서 활동해 왔다. 그는 독일 만하임 국립음대를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하고 1999년부터 독일 기센 시립극장 부지휘자로 활동했다. 이후 독일 베를린 슈타츠오퍼 예술감독인 다니엘 바렌보임에게 발탁돼 역량을 인정받았다.

국립오페라단 취임 후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

▷캐스팅이다. 유럽에서는 모든 오페라가 2년 반 정도 미리 앞서 캐스팅된다. 하지만 국립오페라단은 극장이 없기 때문에 1년마다 대관 신청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좋은 성악가를 미리 선점하기 어렵다. 게다가 겨우 2주 대관 받아서 나흘은 무대를 설치하는데, 나흘은 공연하는데 쓰고 나면 연습할 시간은 5일 정도밖에 남지 않는 실정이다.

합창단, 배우, 오케스트라가 소속된 서양식 '오페라 극장' 모델이 필요한가.

▷그렇다. 오페라극장은 종일 돌아가는 오페라 공장이다. 준비, 연습, 그리고 실제 무대 심지어 휴게시간까지 체계적으로 돌아간다. 메트로폴리탄 극장은 3000명이 오페라 작품 하나를 위해 일한다. 그러니 완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취임 때 '서양식 오페라 극장은 아직 한국에는 시기상조'라고 말한 바 있다.

▷예산이 매년 수백 억원씩 든다. 서양인들에게 오페라는 '문화의 총체'로, 그들의 자존심이기 때문에 세금이 오페라에 쓰이는 데 거부감이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오페라가 그 정도 위치가 아니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오페라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쌓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서양 문화인 오페라에 한국인들이 서양인들 만큼 공감대를 느낄 수 있을까.

▷오페라를 단순히 서양의 노래가 아닌 무대, 연기, 연출, 의상, 음악이 다 들어 있는 '총체예술'로 이해해야 한다. 총체예술은 한 나라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장르로서 기능이 있기 때문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 오페라의 기능을 가지고 와야지 서양 오페라를 그대로 한국에 들여와서는 안 된다.

한국에서 만든 오페라, 즉 창작오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건가.

▷당연하다. 대한민국이 '한국' 오페라를 해야 하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다. 다만 창작오페라보다 K팝처럼 'K오페라'라고 부르고 싶다. 현재 국립오페라단은 3개 작곡가 작품을 심사 중이다. 2년 내에 대극장 작품 1개, 중극장 작품 2개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스 비극을 소재로 하되 우리 한국 사회가 현재 겪고 있는 세대 갈등을 보여주는 작품을 만들 거다. 또 일제강점기, 산업화 시대 등 우리 격변의 역사를 오페라 무대에서 다루고 싶다.

국립오페라단이 지속적으로 외국인 지휘자와 연출가를 캐스팅하는 데 비판이 많다.

▷솔직히 지휘자와 연출은 지금 상황에서는 외국 연출을 쓰는 게 불가피하다. 오페라 연출을 하려면 작품 속 언어와 문화를 완벽하게 이해해야 한다. 이탈리아 오페라를 이탈리아 지휘자보다 잘하기는 힘들다. 무엇보다 오페라는 총체예술이라 대학이나 공부로 학습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극장에서만 배울 수 있다. 훌륭한 성악가는 많은 데 비해 연출이랑 지휘자 층은 허약한 이유다. 결국 대한민국의 훌륭한 연출가 지휘를 키우려면 'K오페라'가 답이다.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오페라를 통해 지휘자와 연출을 길러내야 한다.

[김연주 기자 / 사진 =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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