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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임산부석에 앉는 청년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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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자주 이용하는 전철이 제게는 관찰과 사색의 공간입니다. 신부지만 성당에 앉아 성찰하는 것보다 어떤 때는 전철이나 버스에서 더 많은 묵상과 성찰을 하게 됩니다. 왜 그럴까? 늘 보던 것은 주의를 끌지 못하고 새로운 풍경이 주의를 끌고 생각을 하게 하기 때문일까요? 예를 들어 외국에 나가면 늘 보던 우리의 풍경과 다른 모습이 우리의 시선을 끌며 그래서 타성과 익숙함에 젖어 있는 우리의 시선과 생각을 새롭게 하잖습니까? 어떤 경우에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게도 하는데 저의 경우 인도를 가면 지금까지 형성된 상식과 사고방식을 완전히 뒤집어엎는 일이나 모습 때문에 충격을 받고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많은 사람이 그래서 인도를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런 비슷한 것을 저는 전철에서 경험하는데 얼마 전에는 일하러 가는 새벽 전철에서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새벽 전철, 정확히 얘기하면 첫 번째 전철은 저같이 건설 노동을 하는 사람이나 다른 사람들의 출근 전에 청소를 하러 가는 분들이나 아무튼 일찍 일터로 가는 사람들로 꽉 차는데 전철을 타서 자리를 잡으니 젊은 여성이 앉아 있는 자리 바로 앞이었습니다. 그 앞에 서서 근자에 선물한 분의 시를 읽으며 가고 있는데 얼마 안 가 그 젊은 여성이 내리기에 제가 그 자리에 앉으려니 분홍색 자리였습니다. 표시가 나지 않는 임산부가 않도록 임산부 자리라는 표시를 한 자리였지요. 그래서 저는 앉으려다 앉지 않고 있는데 잽싸게 어떤 청년이 앉는 거였습니다.

순간 ‘어, 나이 먹은 나도 안 앉는데 젊은 사람이!’ 이런 생각이 들다가 이내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하는 분노의 감정이 이는 거였습니다. 전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지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웬만하면 나이든 사람들에게 자리 양보치 않고, 양보는커녕 자리가 나면 동작이 굼뜬 노인네보다 잽싼 젊은이가 먼저 앉곤 하는 것을 봤는데 바로 그런 거였지요. 그런데 제가 사실 더 분노한 것은 나이든 저보다 젊은 사람이 앉았다는 그것 때문이 아니라 어찌 약자들을 위한 자리를 건장한 젊은이가 앉는가 하는 거였습니다.

순간 그런 젊은이가 꼴도 보기 싫고, 무엇보다 계속 거기 젊은이 앞에 있으면 아침부터 분노의 감정에 계속 머물 것 같아서 다른 곳으로 자리를 피하려다가 마음을 바꿨습니다. ‘피하면 내가 지는 거다’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속 그 앞에서 있으면서도, 다시 말해서 계속 그 젊은이를 보면서도 분노의 감정이 일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었던 거지요. 그래서 그 젊은이는 제가 자신에 대해서 분노했는지도 모르고, 그리고 이런 생각으로 자기를 보고 있는지도 모르고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보고 있음에도 저는 그 젊은이를 내내 보며 갔습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 다르다니!

아무튼 그렇게 서로 달리 보면서 가는데 시간이 지나니 역시 분노의 감정이 가라앉으며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였습니다. 어찌 이 젊은이는 내가 보는 것을 보지 못하고, 어찌 이 분홍자리를 보지 못하고, 이 자리를 비워 달라는 방송을 듣지 못할꼬! 더 나아가서 이 젊은이가 결혼을 하면 결혼생활이 어떻게 될까? 자기 아내가 임신을 해도 그 힘든 것이 보이지 않고, 힘들다고 하소연해도 들리지 않으면 그 결혼생활이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을 하니 이 젊은이가 걱정이 되면서 이런 것을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젊은이에게 연민이 가기 시작했고, 이내 이 젊은이가 빨리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기를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분노의 감정에서 걱정과 연민과 기도로 바뀌는 저를 보면서 그리고 앞으로는 다른 경우에도 이렇게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이런 것을 가능케 한 전철과 젊은이에게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김찬선 신부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