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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비 벌기 위해 시작한 번역, 천직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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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인생환승샷(12) 공장 노동자에서 자막 번역가로, 양은심
인생에서 누구나 한번은 환승해야 할 때와 마주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직장이나 일터에서 퇴직해야 하죠. 나이와 상관없이 젊어서도 새로운 일, 새로운 세계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한번 실패한 뒤 다시 환승역으로 돌아올 수도 있겠지요. 인생 환승을 통해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생한 경험을 함께 나눕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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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현재, 한일자막번역가로서 자택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예능프로를 번역하고 있다. [사진 양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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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길에서의 환승은 어느 정도 계획이라는 것이 있지만, 인생에서의 환승은 타의이건 자의이건 위기의 순간에 이루어진다. 살아내기 위한 ‘절실한 마음’이 다른 길도 있다고 호소해 온다.

나의 첫 환승은 한국에서 일본으로 이주였다. 처음부터 일본에서 살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시작은 대학원 진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도쿄행 비행기에 탄 것이었다. 일본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없는 사람이 일본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대화가 필요 없는 단순한 일이었다. 인쇄회사 공장에 취직했다. 인쇄공장이라 일본어를 공부할 수 있는 교재가 널려 있었다. 나는 항상 작업복 주머니에 메모지와 볼펜을 넣고 다니며 일본어를 익혔다.

2년 후 귀국해 대학원 시험을 치렀으나 제대로 준비를 못해서인지 보기 좋게 떨어졌다. 대학원 진학을 포기했다. 그다음 목표는 일본에서 취득한 일본어를 이용한 일본어 관광가이드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또다시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지금 돌이켜 보면 ‘절실함’이 없었다. 결국 포기했다.

그러고 나서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 ‘결혼’으로 환승이었다. 일본에서 일하던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던 나보다 두 살 어린 친구가 있었다. 지금의 남편이다. 일본인과 결혼할 생각도, 더군다나 나보다 어린 남자와 결혼을 한다는 것은 꿈에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이야 연하 남편이라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 시대이지만 내가 결혼 한 1994년만 해도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가지 말고 결혼하자던 그의 말을 떠올렸고 결국 1994년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됐다.

결혼하고 일본으로 온 후 남편의 수입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남편의 조건을 하나도 따지지 않았었다. 그저 나와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있느냐가 중요한 사항이었다.

남편의 수입이 변변치 못하면 어찌해야 하는가? 내가 벌면 된다. 집 근처에 있는 편의점 유리창에 붙어있는 아르바이트 모집 광고를 보고 찾아갔다. 외국인은 쓰지 않는다고 했다. 2018년 지금은 외국인을 채용하는 편의점이 많지만, 1990년대에는 접객에 지장이 있다 해서 거절하는 시대였다. 편의점에서조차 나를 써주지 않는데 과연 일본에서 공장 이외에 나를 받아주는 곳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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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대학원 진학을 꿈꾸며 진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도쿄에 있는 인쇄공장에서 일을 하던 때이다. [사진 양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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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내 일생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일본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무기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한국어’였다.

한국어를 이용하는 직업으로 통역이 떠올랐다. 통역 학교는 찾았는데 도쿄교에는 한국어 코스가 없음을 알았다. 나는 어디서 오는 확신이었는지 언젠가는 도쿄에도 생길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일터는 대학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다녔던 인쇄공장이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공장에서 1년 정도 일했다. 면식이 있는 직원들이 따뜻하게 반겨주었다.

2년 뒤 나는 ‘인터 스쿨 도쿄교’에 입학했다. 내 예상대로 도쿄교에 한국어 코스가 생긴 것이다. 학생 모집 광고가 실린 전문 잡지를 들고 환희에 젖어 흥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정말 열심히 절실한 마음으로 공부했다. 그 학교는 일본에서 내가 비빌 수 있는 유일한 언덕이었다. 그 시절에 나는 든든한 작업 파트너를 만났다.

통역 학교에 다니던 중 별도로 다니던 통번역 교실 선생님으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받았다. 한국 방송을 방영하는 케이블 TV에서 한국어 네이티브 자막 번역가를 찾고 있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케이블 TV 담당자와의 면접이 끝나고 ‘옥이이모’라는 작품을 받았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수많은 작품을 번역해 왔지만, 이 작품만큼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자막 번역의 ‘자’자도 모르던 사람이,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 일본이라는 땅에서 한국 드라마를 일본어로 번역하는 자막 번역가로 환승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 준 튼튼한 동아줄을 힘껏 감아쥐었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천직이 됐다.

2018년 53세. 나는 또 다른 환승을 꿈꾸며 준비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삶, 에세이스트와 책 번역가로 살아가는 인생이다. 2015년에는 20년 가까운 일본에서의 삶을 풀어낸 ‘일본 남자여도 괜찮아’라는 책을 썼다. 그리고 2017년에는 ‘일상이 가뿐해지는 마음 정리 법’이란 책을 번역하기도 했다.

처음 하는 일은 서툴고 어설프다. 그러나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믿는다. 설사 실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해보고 납득하자.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는가. 지금 서 있는 곳이 불안하다면, 뭔가 허전하다면 다른 터미널에서 새로운 행선지를 찾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의 마지막을 후회 없이 맞이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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