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거절하기 어려운 외부활동. 스타트업 대표의 현재와 미래 시간 가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스타트업 Scene-14] 그에게 낯선 이메일이 도착했다. 처음 들어보는 한 사단법인으로부터의 이메일이었다. 이메일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안녕하세요. ○○○ 대표님. ○○법인에 ○○팀장입니다. 스타트업 CEO를 모시고 창업스토리, 현재까지의 성과, 시행착오 과정, 창업계 동향 등에 대한 강연을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대표님께서 후배 창업자를 위한 조언을 이야기해주시면 됩니다. 바쁘시겠지만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소중한 시간을 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휘몰아치게 열띤 내부 미팅을 마치고 자리에 돌아온 그는 한동안 멍하게 이메일을 바라봤다. 이런 이메일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몇 차례 창업자들을 위한 강의에 나선 적이 있었지만 사업 성과와는 크게 관련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막무가내로 거절할 수도 없었다. 자신이 창업을 결심하기 전까지 선배 창업자들의 강연을 들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괜히 거절했다가 업계 평판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봐 조심스러웠다.

◆스타트업 대표의 4가지 시간 분류

매일경제

/사진 제공=QUARTZ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자동차 정비 관련 미국 스타트업인 CarDash의 이넌 와이즈(Yinon Weiss) 대표는 스타트업 대표의 시간을 4가지로 분류했습니다. 저도 일정 부분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 공유해봅니다.

1. 팀 빌딩 : 좋은 팀을 꾸린다는 것은 훌륭한 인재를 채용하고 이들을 성장시키며 오랫동안 회사에 남아 있게 하는 것입니다. 특히 팀 빌딩은 단순히 좋은 인재를 '영입'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최초 10명의 직원은 '슈퍼스타'급(어려운 건 사실입니다)으로 뽑고, 이들과 함께 회사를 성장시켜 외부에서도 이 팀의 매력이 철철 넘치도록 보여야 합니다.

2. 확고한 전략과 비전 수립 : 돈도 생기고, 인재도 모았지만 잘못된 전략과 비전을 가지고 있다면 회사는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사업 초반부터 확고한 전략과 비전을 수립하는 것은 시간과 인력의 한계로 어렵습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급한 불을 꺼야 하는 상황이 빈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팀 빌딩이 더 중요해집니다. 팀 빌딩이 완료되고 회사가 커질수록 대표는 자신의 업무를 팀원들에게 위임하고, 회사와 직원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3. 투자 유치 및 수익 창출 : 좋은 팀과 전략을 가지고 있다고 우리 회사 자금이 여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대표는 좋은 팀과 전략을 바탕으로 자금을 끌어모으기 위한 노력도 필요합니다. 물론 펀딩뿐만 아니라 사업 내 수익을 통해서도 자금을 늘릴 수 있습니다.

4. 기타 : 스타트업 대표에게는 '기타' 시간이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이 시간은 스타트업 대표가 누구에게 딱히 말할 수도 없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시간일 수 있습니다. 아무도 대신 해줄 수 없는 일도 많습니다. 회사 초기에는 회계 처리, 계약서 검토, 사무실 찾기, 심지어 쓰레기 버리기까지 다양한 잡일을 대표들이 해야 합니다. 그에게 왔던 이메일처럼 강연 요청 건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이 강연을 수락할지 거절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기타' 시간에 포함됩니다. 이런 시간에 대해 링크트인 창업자인 리드 호프먼은 자신이 운영하는 팟캐스트 '마스터스 오브 스케일(Masters of Scale)'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모든 불을 끄려고 한다면 당신 스스로가 불에 타버릴 것입니다. 훌륭한 창업자는 그 불을 타게 놔두는 것입니다. 풀기 어려운 문제를 알아내는 것이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를 아는 것만큼 중요합니다."

◆성장 단계별 스타트업 대표의 시간 배분

매일경제

/사진 제공=CarDash 블로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성장 단계별 대표들의 시간 배분에는 몇 가지 패턴이 보입니다. 일단 시간이 지날수록 스타트업 대표는 조직 정비에 힘을 쏟습니다. 저는 단순히 팀 빌딩의 수준을 넘어 회사의 문화와 가치를 만드는 시간까지도 '팀'이라는 카테고리에 넣을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반면 투자 유치 비중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듭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만큼 스타트업 성장에서 투자금 확보는 중요한 요인이 아니게 됩니다. 반면 '기타' 시간은 현저히 줄어들 수 있습니다. 회사 내에서 진행하는 잡일도 줄어들 뿐만 아니라 강연 등 외부 행사를 거절하거나 선별할 수 있는 경험과 능력도 올라가지 않나 싶습니다. 반면 전략과 비전을 세우는 일은 크게 늘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회사가 더욱 커지고 있는데 말이죠. 그 이유는 좋은 팀이 꾸려지면 이들이 팀의 전략을 세우고 대표는 최종 의사결정만 하는 단계에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 대표의 현재와 미래 시간 가치는

스타트업 대표의 현재와 미래 시간 가치는 얼마가 될까요. 우리는 종종 현재 일을 내일이나 몇 달 뒤로 미루면서 다른 일을 지금 진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 코빗 교수와 스티브 유 영국 런던대 교수는 스타트업 대표의 현재 시간 가치가 어느 누구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스타트업이 성장한다는 전제를 한다면 오늘의 시간 가치(Net Present Value·NPV)보다 내일 혹은 1년 뒤 스타트업 대표의 시간 가치는 더욱 커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스타트업 대표의 오늘 시간 가치가 10만원이라고 생각해봅시다. 이 10만원은 오늘 우리 회사의 매출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회사가 1년 뒤 50% 성장했다면 1년 뒤 나의 하루 시간 가치는 15만원이 될 것입니다. 2년 뒤에는 25만원이 될 수 있습니다. 반면 일반 직장인들의 시간 가치는 올해나 내년이나 크게 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스타트업 대표의 시간은 현재도 중요하고, 미래는 더욱 중요해집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기타' 시간에 대한 할애는 아까워지는 것입니다.

매일경제

/사진 제공=일러스트레이터 Nina Aubert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

4가지 시간 분류 중 '기타' 시간을 줄여보는 노력을 해보는 것은 어떨지요. 물론 스타트업 초기에는 자신이 처한 상황으로 인해 외부 요청을 거절하거나 다른 이에게 자신의 일을 넘기는 것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기타' 시간을 하루 회사 일과의 30% 이하로 유지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또 회사가 성장할수록 그 비중을 10% 이하로 떨어뜨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메일을 받은 '그'에게 강연에 나섰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강연을 거절하는 이메일을 썼다고 합니다.

[이가윤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 사업운영 매니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