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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꽉 막힌 특례상장…바이오 자금줄 끊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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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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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와 상장 특혜 논란, 금융감독원의 주요 바이오기업 테마감리 등 규제의 칼날이 바이오기업을 옥죄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실적이 가시화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제약·바이오기업 특성을 감안해 성장 잠재력만으로 상장할 수 있는 통로로 활용돼온 기술특례상장 요건까지 까다로워지면서 바이오기업 자금 조달에 빨간불이 켜졌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중 기술특례상장을 신청한 바이오기업 15여 곳 중 기술평가를 통과해 상장에 성공한 곳은 엔지켐생명과학과 이원다이애그노믹스 두 곳뿐이다. 신약 연구개발(R&D) 등에 투자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술특례상장을 시도하는 바이오기업은 매년 급격하게 늘고 있다. 하지만 2015년 10개 바이오기업이 기술특례상장에 성공한 데 반해 지난해에는 5개로 확 줄었고 올해 들어서는 2개에 불과하다.

특히 올 들어 업계에서 기술 경쟁력이 높고 성장 가능성이 유망한 바이오기업으로 꼽혔던 브릿지바이오·카이노스메드·바이오인프라생명과학 등이 연이어 탈락의 고배를 마시면서 업계에 충격을 줬다. 이처럼 기술특례상장 문이 좁아지다 보니 웬만한 비상장 바이오기업들은 상장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지난해 12월 벤처캐피털 등에서 138억원 규모 펀딩을 받을 만큼 업계의 관심을 받았던 브릿지바이오는 직접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는 대신 외부에서 신약후보물질을 사들여 자체적으로 임상시험을 한 뒤 신약 개발에 나서거나 신약 기술을 수출하는 NRDO(No Research Development Only) 사업 모델을 갖고 있다.

카이노스메드는 미국 파킨슨연구소와 함께 파킨슨병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한 글로벌 임상 2상을 추진하고 있다. 2001년 서울대 의대 교수 출신 김철우 대표가 설립한 바이오인프라생명과학은 혈액검사로 암을 진단하는 '스마트 암 검사' 서비스가 주력 사업으로 업계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동안 신약 개발에 천문학적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탓에 재무제표상 적자를 피하기 힘든 바이오기업들은 기술특례상장 제도를 자금 조달 창구로 활용해왔다. 그러나 이처럼 기술평가와 거래소 심사 등이 깐깐해지면서 신약 개발로 흘러가야 할 자금줄이 막힐 수 있다는 점에서 바이오업체들이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A바이오기업 관계자는 "연초 정부에서 코스닥시장 활성화 방안을 발표할 때만 해도 바이오업체들 기대감이 컸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 이후 분위기가 바뀌었다"며 "국내 상장 여건이 악화되면서 홍콩·미국 등 해외시장 상장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오업체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는 시류에 편승해 기술특례상장이 이유 없이 까다로워졌다는 업계 불만도 적지 않다.

B바이오벤처 관계자는 "바이오기업들은 세상에 없던 혁신 신약(First in class) 개발을 목표로 하는데 기술을 심사하는 위원들의 전문성과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구체적인 심사지표도 발표하지 않아 우리 회사가 어떤 면에서 미비한지,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고 꼬집었다.

기술특례상장 제도는 당장에는 수익을 낼 수 없지만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이 주식시장에 상장할 수 있도록 상장심사기준을 낮춰주는 제도다. 기술특례로 상장하려면 거래소가 지정한 전문평가기관 중 두 곳에 기술평가를 신청해 모두 BBB등급 이상을 받아야 하고 이 중 적어도 한 곳에서는 A등급 이상을 받아야 한다. 이후 거래소 상장 예비심사를 거쳐 증시에 입성하게 된다. 2005년 도입돼 올해로 13년째를 맞았는데 이를 통해 상장한 기업은 현재까지 50개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최근 벤처캐피털의 바이오·의료 분야 신규 투자도 감소하는 추세다. 지난 5월 벤처캐피털의 바이오·의료 분야 신규 투자액은 609억원으로 전월 1029억원에 비해 40.8% 감소했다.

C벤처캐피털 관계자는 "비상장기업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은 상장뿐인데 이 길이 막히면서 신규 투자를 주저하는 투자자가 많다"며 "최근에는 수익률을 다소 포기하더라도 안전한 상장기업에 대한 투자를 선호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고 말했다.

[김혜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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