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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실존의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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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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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았다’를 지배하는 힘은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서스펜스다. 영화는 아들 줄리앙의 양육권을 두고 공판을 벌이는 부부의 모습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줄리앙은 등장하지 않고 그의 진술서만 판사로부터 읽힌다. 줄리앙은 아버지 앙투안에게 가고 싶지 않다면서, 아버지는 엄마에 대한 폭력이 심했고, 부모의 이혼이 기쁘다고까지 했다. 줄리앙은 앙투안을 아버지가 아닌 '그 사람'이라 칭하는데, 이것만으로도 둘 사이의 거리감이 확연히 느껴진다.

결국 줄리앙은 2주를 간격으로 주말마다 앙투안과 시간을 보내게 된다. 줄리앙에게 있어, 앙투안과 보내는 시간은 그야말로 생지옥과 다름 아니다. 아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앙투안의 노력이 엿보이긴 하지만, 여전히 줄리앙은 아버지가 싫다. 아니나 다를까, 시간이 흐를수록 앙투안의 폭력성은 심각해지고, 가족을 보호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줄리앙은 이사 간 집 주소와 엄마의 바뀐 연락처를 숨기기 위해 거짓말까지 해댄다. 이에 앙투안의 분노는 점점 끓어오르고, 그럴수록 줄리앙은 가족을 지켜야만 한다는 의무감에 나름의 투쟁을 벌인다.

줄리앙의 비밀스러운 태도가 쌓일수록 앙투안의 분노도 증폭된다. 영화는 이 둘의 위태로운 줄타기를 통해 관객들의 감정선을 긴장과 불안에 가둔다. 줄리앙이라는 인물은 시종일관 스크린 안팎의 사람들을 위협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은 줄리앙에 감정 이입하게 된다. 줄리앙의 불안과 불만 섞인 표정과 행동은 관객의 거울이다. 그래서 우리는 줄리앙에게 큰 연민을 느끼게 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현명한 영화다. 상상 이상의 끔찍한 행동을 저지르는 앙투안의 행동은, 공포 영화를 방불케 한다. 그로 인한 충격과 여운은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이어진다. 영화 감상 전, 해외 언론(Telerama)의 '당신을 좌석에 못 박아버릴 영화'라는 한 줄 평을 봤는데, 정말이었다. 함께 영화를 본 관객들은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그 누구도 좌석을 뜨지 않았다. 아니 뜨지 '못했다'가 더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나같은 경우엔, 영화관에서 걸어나갈 때 다리가 후들거리기까지 했다.

앙투안은 인간의 탈을 쓴 괴물과 다름 아니다. 끔찍한 사실은, 그가 특별한 캐릭터가 아니라는 점이다. 도처에 있을법한 '아버지'라는 대명사의 인물이다. 같은 강도는 아니겠지만, 앙투안과 비슷한 성향을 지닌 아버지는 생각보다 많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괴물은 가정 밖에서 쉽게 드러나진 않는다(줄리앙이 판사에게 내비친 가식을 보라). 그렇기에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누군가에겐 현실감 가득한 공포물일 것이다. 그 누군가는 현실, 혹은 과거를 들킨 것 같은 느낌일 것이며, 지금도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일 것이다.

무엇이든 실황은 당사자들만이 아는 법이다. 특히, 폭력을 중심에 둔 사건에서는 더욱 그렇다. 직접적인 폭력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는 피해자들을 24시간 내내 따라다니면서 그들을 그늘 아래 가두지만, 가해자는 자신이 가한 폭력의 무게를 덜어내기에 급급하다.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폭력은 근절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폭력의 역사는 끊임없이 되풀이될 것이다.

이렇듯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한 가정의 공포를 날것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소외되고 간과된, 하지만 구제되어야만 하는 사회적 일면을 알려준다. 절재된 연출을 통해 폭력과 광기, 고립과 소외를 보여준 이 영화는 다르덴 형제의 연출 방식과 닮아있다. 작위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사건을 담담하게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지금도 가정 폭력에 시달리고 있을 가족과 이웃을 돌아보고, 도움을 건넬 수 있기를 바라본다.

[최다함(최따미) 광고대행사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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